<고도를 기다리며> 살아있는 순간 만들기
약 50일 동안 아프리카를 육로로 종단했다. 에티오피아에서부터 남아공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여정이었다. 짧은 시간 안에 드넓은 대륙을 이동하다 보니 하루가 멀다 하고 짐을 싸 버스나 기차에 올라타야 했다. 적게는 10시간 정도 버스를 탔고, 길게는 3일간 화물 트럭에 타서 사막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 이동의 연속은 내게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무언가를 기다렸다. 다음 끼니를 기다렸고, 어서 새로운 장소에 도착하기를 기다렸고, 도착하고 나서는 그다음 목적지를 기다렸다.
기다림의 절정은 탄자니아의 다르에리살람에서 잠비아의 루사카까지 3박 4일 동안의 타자라 기차 안에서였다. 나를 포함한 4명의 일행은 몸만 겨우 뉘일 수 있는 이층 침대 두 개가 놓여 있는 객실 안에서 몸 한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채 내리는 그 순간만을 기다려야 했다. 처음에는 서로 장난도 치고 수다도 떨고 하였지만 곧 모든 것이 지루해졌다. 물리적 한계를 넘어서고자 나는 준비해온 이북을 꺼내 들었다. 핸드폰 속의 서재에는 각기 다른 시대의 저자들의 대표작으로 들어차 있었다.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고도를 기다리며>였다.
배경이 어디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 이 희곡에는 두 부랑자가 등장한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무려 50여 년 동안이나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고도가 누구인지는 읽는 내내 알 수 없으며, 대체 언제 온 다는 것인지, 실체가 있는 인물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은 이 두 인물이 고도를 기다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것뿐이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대화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이 읽는 나에게 까지 전해졌을 때쯤, 잊히지 않는 장면을 마주했다.
에스트라공은 자신의 발보다 약간 더 작은 신발을 반복해서 벗고, 또 신는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라는 듯이 말이다. 힘들게 벗은 신발에 또다시 발을 욱여넣으면서 에스트라공은 말한다.
“언제나 우리가 살아있다는 인상을 주는 그 무엇을 찾아내기 마련이거든.”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블라디미르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결정한 목표에서 벗어나지는 말자고”.
이 장면은 내게 삶에 대한 은유 같았다. 내게는 에스트라공이 그 신발을 신고 벗는 모습이 전혀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를 쓰고 문자로 기록을 남기고 있는 내 모습을 바라봤다. 절대로 잊고 싶지 않은 이 순간들을 맞이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글로 남기는 것이었다. 나 또한 남들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러운 기록일지는 몰라도 살아있다는 인상을 느끼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글로 써 남기고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누군가는 미라클 모닝을 하고, 누군가는 운동을 하며, 누군가는 부캐를 만든다. 코로나 종식을 기다리며, 경제적 자유를 기다리며, 언젠가 올 미래를 기다리며 말이다. 이 모든 시고는 생의 거대한 흐름 한가운데서 휩쓸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살아있다는 인상을 주는 그 무엇을 찾아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면서 블라디미르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그 무엇이 가고자 하는 목표에서 벗어나지는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의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