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또를 내 돈 주고 샀던 적이 없었다. 항상 말로는 로또에 당첨돼서 당장 내일부터 꿈에 그리던 백수가 되어 적성을 살리고 싶다고 말하지만 정작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크게 들지 않았다.
나는 쉽게 돈을 벌 생각이 없다고 선언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의 시간을 쓰고 몸뚱이를 움직이는 노동을 통해 예측 가능한 수입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번 달의 다음 달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그 안에서 내가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끊기지않는 수입으로 나를 먹이고 입혀나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일을 해 왔다. 이제는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이후로 나는 꾸준히 아르바이트와 같은 경제 활동을 해 왔다. 나에게 근로 소득이 주는 자유는 딱 하나였다. 더 이상의 경제 활동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자유. 나는 매달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그 외의 시간은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었다. 남는 시간에 내가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내든, 자기만의 방에서 글을 쓰든 그 모든 선택의 과정은 자유로웠다.
부동산이나 주식 등을 통해 돈을 굴리고 불리는데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내 일상에 쏟고 싶었기에 그 흔한 주식 투자 한 번 하지 않았다. (하지만 꼭 시간을 들여 배우고 투자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도하려고 하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렸을 뿐이다.) 나의 투자 성향 테스트를 한다면 아마도 안정형이 99% 일 것이다. 큰 수익을 위해 리스크를 감당할 야수의 심장도 없고, 경제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현재의 순간만을 즐길 배짱도 없다.
그러니 이렇게 근로 소득에 기대어 근근이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 예상하였는데, 결국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날 로또를 사고 말았다. 이 여유로운 순간들이 타의에 의해 중단될 위기라 생각하니 도저히 일터로 복귀할 용기가 나지 않아 큰맘 먹고 연금 복권 5장과 동행 복권 5장을 샀다. 지방에서 로또를 사면 당첨 확률이 높아진 다는 말도 어디선가 들었으니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었다.
일하는 시간 말고는 자유롭다 생각하고 살기에 일하는 시간이 좀 길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시 다음 주부터 브런치에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당첨된 거라고 생각해줘도 좋다. 그러니 이번엔 제발, 내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