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태기ing
요새는 글태기가 분명하다. 글자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잡고 읽다가도 몇 페이지 넘기지 못하고 덮어버린다. 출퇴근길에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겠다고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니는데도 영 읽기 힘들다. 아 그냥 집에서 집중해서 읽어볼까? 책상에 앉았는데 너무 너저분해서 책이 눈에 안 들어온다. 책상의 위치를 바꾸고, 올려진 물건들을 보이지 않게 정리해 보았다. 잠깐 만족스러웠으나 옆에 안락한 침대가 눈에 들어온다. 잠깐, 누워볼까…?
퇴근하고 방에 들어오면 눕기 급급하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방 한편에 쌓여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이 그 용도를 다하지 못하고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시야에 들어오면 아무래도 신경 쓰이니까 시선을 핸드폰으로 옮긴다. 유튜브 영상부터 네이버 메인 화면까지 하염없이 뒤지며 누워있는다. 그렇게 네이버 블로그에서 쇼핑후기를 보고 있다 보니 생각난다. 아빠가 만든 블로그 잘 있나…?
올해 초 아빠가 블로그를 개설했다. 블로그 개설한다고 책을 빌려오셨었다. 배너 설정에서 게시판 만드는 것까지 하나하나가 쉽지 않은 미션이셨던 것 같다. 잔뜩 귀찮은 티를 내면서 게시글에 사진 넣는 법을 알려드리고 나서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아빠에게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오래간만에 들어간 아빠의 블로그에는 129개의 글이 있었다. 1월 10일에 처음 개설했으니 지금이 딱 130여 일 된 시점이다. 가족들 모르게 130여 개의 글을 매일 올려왔던 것이다. 아니 대체 언제 글을 쓴 거지? 책을 읽는 아빠의 모습은 봤어도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는 아빠의 모습은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놀란 마음에 물어보니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올린다고 하신다.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줄 알고 있었던 그때 아빠는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만들어 들었던 게시글 제목들이 조금씩 바뀐 거 보니 아빠가 나름대로 다시 수정을 한 것 같다. 책 리뷰가 메인인데, 벌써 67권의 리뷰글이 올라와 있다.
손글씨로 책을 요약 정리한 노트 필기 사진도 같이 첨부되어 있다. 내내 올리면서 사진 한번 첨부한 적 없는 내 브런치보다도 시각적이다. 사람을의 댓글에도 하나하나 대댓글을 달았다. 검색을 통해 들어왔다면 아빠의 블로그라고 생각 못했을 것 같은 운영 솜씨다.
블로그 글을 읽다 보니 흥미로워 보이는 책이 눈에 들어온다. 저 책부터 다시 글태기를 극복해 볼까? 저 책이 어느 책장에 있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할 텐데, 역시나 몸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다. 이번 글태기, 좀 오래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