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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J Jul 12. 2024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 2화

외로움에 대한 작은 소고 (4)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건 마음 한자락에 자리집은 위안이나 다름없다. 케언즈는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비록 한국에서 비행기로 10시간이나 넘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지만 인생이 힘들어지고 답답할 때 나는 케언즈에서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곤 한다.



그 추억 속에서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한 장소가 있다. 바로 어학원이다. 처음 '제대로' 영어를 배우고, 처음 외국인들을 사귀었던 그 곳 말이다. 나는 일종의 꿈이 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고선, 어학원에 다시 돌아가 그 때 그 당시의 선생님들께 인사도 하고 후일담도 풀어보는 일종의 금의환향을.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과거를 다시 찾고 싶은 건 아닐 것이다. 어학원에서 만났던 일본인 친구들에게 내가 다시 케언즈에 돌아가 여행을 하려고 한다고 했더니 썩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현실에 바쁘기도 하고, 굳이 오랜 시간을 보낸 케언즈보다는 다른 곳을 가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도 있었고.


하지만 나의 금의환향 프로젝트는 결국 이루어졌다. 시드니에서 대학을 마치고 괜찮은 직장에도 입사했다. 이제 다시 고향의 학교에 가는 길인데, 내 추억 한자락의 그 선생님들이 아직 계실지?



그 당시 나는 어학원 학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리셉셔니스트의 안내를 받아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어학원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빛 바랜 벽지의 교실은 물론이고 심지어 소파나 액자 등 인테리어도 모두 내 기억속 상상과 동일했다. 오히려 난 그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둘러보던 중 굉장히 낯익은 얼굴의 나이드신 선생님과 마주치게 되었다. 물론 나는 그녀의 얼굴을 기억한다. 바로 Gale 이었다. Gale은 내가 학원에 다닐때도 헤드티처 급이었는데 지금은 학원의 원장이 되었다. Gale의 클래스에는 딱 한번 있어봤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녀가 어렴풋이 나를 기억했다.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학원을 졸업한 이후의 내 행적들, 지금은 뭘 하고 지내는지, 그런 주제들이었다. 머나먼 타지에서 누군가가 날 기억해 준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전에 내가 거쳐갔던 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중에 놀랍게도 내 담임 선생님 중 하나였던 Mark의 아내가 여전히 학원에서 근무를 하던 중이었고, 실제로 인사도 하게 되었다. 그녀도 내 얼굴을 알아보며 말했다.


"Oh, I remember you. I guess I've been working here too long"


나는 Mark의 아내를 만난 게 너무 반가워서 Gale에게 Mark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Mark는 정말 유머러스하고 내가 제일 좋아하던 선생님이라고, 그리고 그가 어디있는지 궁금하다는 말도. 그런데 Gale의 표정이 갑자기 매우 어두워지며 나에게 말했다.


"You don't know what happened to him, do you?"


영문 모르는 표정을 짓는 나에게 Gale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Mark는 내가 어학원에 있던 당시 자기 집에 일본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홈스테이를 했었다. 홈스테이를 한 학생 중 나와 상당히 친한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는 자기의 친척과 함께 어학원에 왔었는데... 알고보니 Mark가 그 친척과 재혼을 한 것이었다.  


Mark는 어학원에서 아내와 함께 오랫동안 일했었고, 그의 자식들도 학원 내외에서 교류가 매우 잦았었다. 난 그의 재혼 사실이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이야기는 더 있었다. Mark는 그 후 이혼을 하고 일본으로 넘어가 결혼생활을 이어갔는데 거기서 무언가가 매우 꼬였던 것 같다. 재혼한 일본 여성과 다시 이혼을 하고 술 중독에 빠져있다가,


사망했다는 것이다.


나는 Gale에게 Mark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굳이 물어보진 않았다. 하지만 Gale의 이야기를 들어봐서는 정황 상 자살이었다. 그의 유해가 다시 호주로 돌아왔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무덤은 없었고 유해는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고 한다.


좋은 추억은 다시 들추지 말고 그대로 묻어두는 게 좋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랬던 걸까? 그렇다면 나는 케언즈에 왜 다시 온 걸까? 여행 거의 막바지에 이런 소식을 들은 나의 마음에는 감정의 소용돌이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는 한동안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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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언즈를 재방문하고 몇년 뒤. 나는 우연히 인터넷 검색 중 케언즈에서 활동하던 사진 작가의 케언즈 사진책자를 구입하게 되었다. 구입하는 이메일을 작성하면서 나는 작가에게,


"I revisited Cairns a few years ago. Nothing had changed much, and that's why I like that city."


이렇게 보냈더니, 돌아온 작가의 회신이 기억에 남는다.


"I've lived in Cairns for 30 years. Many things have changed, and I'm glad you liked it."


그렇다. 변하지 않은 건 나 하나 뿐일지도 모른다.


Rest in peace, Mark Mcken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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