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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초등학교(그 당시 '국민학교') 시절엔
어린이 신문이란 게 있었다.
무가지처럼 학급에 무료 배포되는 것이 아닌,
일정 구독료를 내고 학급 친구들 중 일부만 보는
정말 구독자,스러움을 잔뜩 주는 신문이었다.
돈을 내고 일부만 본다는 특권의식과
'신문'이라는 오브제가 주는 지적 허영심을 국민학생으로서
알량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도 했다.
나도 그 당시 어린이 신문의 구독자였다.
(우리집이 그다지 부유하지도 않았건만)
국어를 좋아하여 글 읽기를 무지 즐겨했던 나였기 때문에
아마 엄마가 배려 차원으로 구독 신청을 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이 신문의 주 내용들은 서울시 내 국민학교들의
큰 행사에 대한 것, 국민학생들을 위한 칼럼, 그리고 (그 신문에도!) 광고가 있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는 광고가 있으니,
그것은 '어린이 탐정 모집' 광고였다.
꽤 여러 번에 걸쳐서 광고가 게재됐었기 때문에 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거라 생각하고 주변에 물어보면
이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첫째, 어린이 탐정에 관심이 없었거나
둘째, 어린 나이라 기억이 나지 않거나
(초등학교 시절이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놀라운 점)
그 어린 시절 나에게 묘한 환상적 쾌감을 주고
호기심을 마구 끌어올려주던 그 광고...
가입비 3~4만원을 내면 (지금 생각해보니 그 시절 물가로선 꽤 비쌌다)
어린이 탐정 신분 자격을 부여하며
탐정 신분증과 수첩, 탐정 가이드북과 망원경,
그리고 무엇보다 구미가 당기던 워키토키를 준다고 했다.
나는 그 어린이 탐정이 무척이나 되고 싶었다.
가장 탐나던 워키토키도 손에 넣고 싶었다.
하지만 가입비를 엄마에게 달라고 손 벌리는 건 할 수가 없었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맞벌이를 하며 잦은 야근에 지쳐 돌아오던
엄마와 아빠를 가장 가까이에서 보던 첫째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그 어린이 탐정 모집광고를
가위로 곱게 오려서 나의 비밀 수첩에 오래도록 껴놨었다.
물론 그 비밀수첩은 몇 번의 이사와 함께 사라졌고,
그 탐정 모집광고에 대한 기억도 흐려져 갔다.
시간이 무진장 흘러 내 딸이 동화책과 과학책들을 접하며
'탐정'이야기가 있는 책을 들고 와 나에게 탐정이 뭐냐고 묻는 순간
나의 기억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는 듯
순간 3학년 그 시절의 어린이 신문 앞으로 나를 데려다줬다.
그 기억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나는 영원히 기록하기로 했다.
어린이 탐정셋트를 소재로 하여 습작으로 단편 동화를 쓰기로 했다.
그리고 추석 명절동안 남편과 아이가 잠든
새벽을 이용하여 몇 컷의 그림과 함께 단편 탐정소설 초안을 완성했다.
물론 끝은 아니다.
동화창작 수업을 하는 지망생 선생님들과
지난한 합평을 거치며 다듬고 또 다듬어서 완성작을 향해 가야 한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질 뻔했던
과거의 오브제를 글 속에서 살려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희미하게 죽어가던 기억에 생명을 집어넣은 것 같은 희열,
이것이 글쓰기의 묘미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