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아티스트의 협업 - 추수 작가 인터뷰
새로운 창작의 시대
2022년 말 Chat GPT의 등장 이후, AI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기술이 아닌 일상의 영역이 되었습니다. 특히 Midjourney, DALL-E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의 발전은 예술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AI는 예술가가 될 수 있는가?, AI 시대에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도구적 변화를 넘어, 예술 창작의 본질과 인간 창의성의 의미를 재고하게 합니다. 2023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AI로 제작된 작품이 처음으로 낙찰된 사례나, 생성형 인공지능 플랫폼인 Invoke를 통해 만든 이미지가 미국 저작권 사무소에서 저작권을 인정받은 사례를 보면, 변화는 이미 현실이 되어 새로운 시대로의 물결을 보여주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AI가 단순한 도구를 넘어 공동 창작자의 위치로 올라오고 있다는 점입니다. 예술가들은 AI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의 창작 방식으로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표현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데요, 이는 인간과 기계의 이분법을 넘어선 포스트 휴먼 시대의 새로운 예술적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포스트 휴먼 미학은 인간과 기술의 융합을 통해 새롭게 창출되는 미적 경험을 탐구하며, AI는 아티스트에게 단순한 도구 이상의 협업 파트너로 등장합니다. 철학자 캐서린 헤일스가 제시한 ‘정보 패턴과 물질적 실체의 혼합체’라는 관점처럼, AI는 기존 예술 작품들의 패턴을 학습·재조합하여 ‘학습된 창의성’을 발휘하고, 작가와 기계, 관객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예술적 표현의 범위를 확장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혁신은 예술의 본질과 창작 주체성에 대한 근본적 재고찰을 요구하는 동시에, 저작권, 예술적 진정성, 윤리적 책임 등의 과제들을 수반합니다. 이번 TOPICS에서는 이러한 논의 속에서 AI 시대를 살아가는 아티스트의 목소리를 통해,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이슈와 해결해야 할 도전 과제를 살펴보고, 이 과정을 통해 포스트 휴먼 시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추수 작가 인터뷰
추수 작가는 서울과 베를린을 오가며 활동하며, 판화, 설치, 조각, 영상, 3D 그래픽, AI까지 다양한 매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추수 작가의 작업은 ‘혼종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특히 ‘에이미’라는 버추얼 액티비스트 캐릭터를 통해 나이, 인종, 젠더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작가는 이미지 생성 AI를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요, AI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표현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생일 전 날 스토킹 문제로 경찰을 부르고 난리가 아닌 밤을 보냈습니다. 12월 3일 생일 아침 침대에서 긴장으로 꽁꽁 언 어깨를 펴고 꾸물꾸물 눈을 떠 받은 편지함을 열었더니, MMCA 전시 최종 3인 후보 선정 이메일이 마치 선물처럼 들어있는 거예요. 오전부터 팀추수 매니저인 모나Mona와 스눕독을 크게 틀고 샴페인을 땄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계엄령이 터지더군요. 축하하러 온 독일 친구들은 어리둥절해 한국 안부를 묻고.. 롤러코스터 같은 삶과 예술의 나날입니다.
이후 신작 구상으로 몇 주 동안 밤 잠을 설치고, 불안한 밤에는 친구들을 불러 리허설을 하며 전시 제안서를 몇 번이고 뜯어고쳤습니다. Zoom으로 열 분 정도의 심사위원들과 최종 면접을 보고는 쓰러져 단잠을 잤네요.
개인전 선정 후에는, 6개월간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팀추수 멤버 전원을 소집하여 곧바로 신작 제작에 돌입하였습니다.
저는 AI 아티스트는 아니지만 성심껏 답변해 보겠습니다.
들뢰즈에게는 인간도 기계인지라.
‘AI는 그저 인간이 만들어 낸 이미지들을 공부하고 조합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낼 뿐이다’라는 의견을 들으면요, ‘그거랑 인간이 다른게 뭔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창작자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예술작품들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어떻게 한 발짝 나아간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것일까?
답은 ‘모른다’ 입니다.
AI가 나보다 더 골 때리는 에이미를 계속해서 그려낼 때.
그런데 DALL-E 2가 보여줬던 기이함은 DALL-E 3에게는 없습니다.
오픈 AI는 이미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얼굴을 공부해버렸어요.
그래서 저는 DALL-E 3를 작업에 사용하지 않습니다. 재미가 없거든요.
DALL-E 4 업데이트를 기다려 봅니다.
사실 저는 AI에 특별히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인간의 유구한 역사가 여태까지 쌓아온 유산들에 매료되는 겁니다. 그래서 3D 소프트웨어인 블렌더를 사용하면서도 그 안의 코드를 만든 프로그래머들을 찾아가 밤새 술을 마시며 떠드는 걸 좋아하죠. 그들이 오늘 짠 코드가 내일의 내 작품을 어떻게 바꾸는지 보여주면 박사님들은 물개박수를 치며 행복해합니다.
그렇게 저는 전자음악을 하는 음악가들, 스크린을 구부리기 시작한 연구자들, 그리고 인간 기술의 최전선인 임신과 출산을 하고 있는 여성들과 동료로서 살아갑니다.
AI도 그 친구 중 하나죠.
우리는 새로운 걸 창조해 돌보며 즐거워하는 존재들입니다.
저는 AI가 만들어낸 이미지에 따로 손을 대진 않습니다. 그저 재미있는 이미지가 나올 때까지 수십 번 프롬프트를 고치죠. DALL-E 2의 워터마크도 그대로 남깁니다.
그 위에 유리 네온사인으로 드로잉을 하는 게 끝.
마치 DALL-E와 내가 하이파이브를 하듯이.
예외적으로 인천공항 설치 작업의 중앙에 위치한 “달리의 에이미 #24”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레퍼런스 삼아 두 이미지를 합쳤습니다.
하루하루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라 반성적 성찰은 결코 쉽지 않지만, 저는 관련 담론들을 예민하게 좇고 있습니다. e-flux에 실리는 히토 슈타이얼(Hito Steyerl)이나 보리스 그로이(Boris Groys)같은 이론가들의 글을 따라가며 읽고요.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Caroline Criado Perez)의「보이지 않는 여자들Invisible Women」같이 해당 이슈를 다루는 책들에서 많은 관점을 빚집니다.
챗 GPT를 음성으로 켜놓고 사적인 것들까지 상의하는 제 습관을, 동료 작가들은 반대합니다. 저는 데이터 보호를 포기한지 오래에요. 그렇게 그냥 현상이 되어버리니까, 더 잘 보이는 문제들도 있습니다. 문제를 직접 겪으면, 나은 방향에 대해 즉각적으로 고민하게 됩니다.
제 작품 중 유일하게 AI를 다루는 “달리의 에이미” 시리즈도 여성 이미지에 대한 알고리즘 편향성에 대한 작업입니다.
해당 인터뷰는 2023년이었고, 지금도 제 알고리즘은 매일매일 새로운 AI 영상들을 보여줍니다. 그 기발함에 뇌가 미쳐버리는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제 태도는 같습니다. 인간의 손은 그 속도를 못 따라갑니다.
그런데 AI로 이미지를 생성하고 선택하여 인스타그램에 포스팅하거나 작품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어쨌든 결국 인간입니다. 원래 ‘예술’이란 인간의 허구적 상상이에요. 예술은 ‘누가누가 빨리 하나’ 대회가 아닙니다. 빠르고 창의적인 툴이 생겼으니, 이걸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야죠. 제 학생들 세대는 이미 AI를 전 시대의 포토샵처럼 사용합니다. 이미지, 영상, 사진, 사운드, 텍스트 등 모든 분야를 통틀어 다양한 AI 툴을 사용하면서, AI를 사용했다고 언급하지도 않는 지경입니다.
근미래에 AI가 스스로 만든 작품에 상을 주고, 비트코인으로 사고팔며, 서사를 더해 감동까지 줄 겁니다. 그땐 이야기가 아주 재밌어지겠죠.
저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냥 하고 싶은 걸 합니다. 내 눈에 안 좋으면 머리를 쥐어뜯고 줄담배를 피웁니다. 내 체취를 지독하게 풍기는 작품들을 계속 합니다.
이번 MMCA X LG OLED 시리즈에서는 AI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AI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카운터펀치를 날릴 것입니다.
이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좋은’것이 무엇일까 고민합시다.
‘쾌’를 찾읍시다.
‘미’를 좇읍시다.
※ Artist : 추수 (@tzusoo) ※Editor : NINE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