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페스트

by 나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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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균은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사실,
페스트균은 방, 지하실, 트렁크, 손수건,
서류더미에서 끈질기게 기다린다는 사실
그리고 아마도 인간들에게
불행과 교훈을 주기 위해
페스트가 죽음의 숙주인 쥐들을 깨워
행복한 도시로 보낼 날이
다시 오리라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다.
- 367쪽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했습니다.



책 『페스트』는 페스트가 언제고 다시 부활할 것이라 예언하며 끝난다. 카뮈가 쓴 대로 페스트는 결코 끝난 적이 없었다. 보이지 않는 병이 도시를 봉쇄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흔들리며, 죽음이 일상의 언어로 떠오르는 시대. 우리 모두가 몇 년 전 몸소 겪었던 현실이다.


카뮈는 21세기에 벌어진 일을 1947년에 문학 안에 정확히 담아내며 고전이 그저 옛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있다. 고전은 인간의 보편성을 다루고 있기에 인류사에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의 예언서이기도 하다.




페스트가 닥친 오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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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배경은 알제리의 오랑이라는 가상의 도시다. 한두 마리 쥐의 죽음이 페스트의 창궐을 알리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죽기 시작한다. 점점 늘어가는 감염자 숫자를 확인하면서도 오랑 정부는 안일하게 대응하다가 끝내 중앙정부의 명령으로 도시의 문이 폐쇄되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고립된 공간 안에서 여러 인물이 등장 한다. 환자를 살리는 의사 리외, 자발적으로 방역 활동에 참여한 타루, 취재차 오랑에 들렀다가 갇혀버린 기자 랑베르, 그리고 한 문장을 붙들고 매일 고쳐 쓰는 작가 지망생이자 계약직 공무원 그랑까지. 이들은 모두 갑자기 닥친 전염병이라는 부조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고민한다.





한국어로 살아난 카뮈의 메시지


페스트의 화자는 본인을 ‘서술자’라고 밝힌다. 그는 본인이 아마추어 역사가로써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상황을 묘사할 것이라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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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대기의 서술자는 이런 시도를 할 만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리라. 그가 역사가의 역할을 떠맡게 된 데는 이런 사정이 있었다. 역사가란 아마추어라 할지라도 자료를 확보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 이야기의 서술자도 자료를 확보했다.
-17쪽


카뮈는 이 책'소설'이 아닌 '연대기'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만큼 감정이 배제된 간결하고 건조한 문체로 쓰였다. 르포를 읽는 듯 한 느낌이었다. 카뮈에 대해 아는게 별로 없는 독자인 내가 카뮈가 어떻게 쓰고 싶었겠다는걸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던 것은 번역 덕분이다.



현대 지성 클래식의 63번째 작품 『페스트』는 프랑스 문학 전문가 유기환 명예교수가 번역했다. 현대 지성은 "카뮈의 간결한 문체부터 접속사 하나까지 세심하게 옮겨 원어로 읽는 느낌을 살려준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고전 작품들을 접할 때 내가 원문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이번 작품은 원문을 읽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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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환 교수님의 해제도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쉽게 쓰여 있어서 친절한 카뮈 페스트 수업같다. 카뮈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 해제 때문에라도 카뮈 이방인도 유기환 교수 번역으로 읽어고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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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챕터 사이사이에 등장하는 회화 작품들은 각 장의 분위기와 주제를 시각적으로 이어준다. 철학적 문장을 따라가다가 피로해질 즈음 한 컷의 그림이 잠시 쉼표가 되어주고 느낌을 정리하게 돕는다. 이 책은 ‘읽는 책’이자 ‘보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 전체가 삶의 부조리를 담은 작품이라면, 『페스트』안에서 그 부조리는 4부 3장, 아무 죄도 없는 어린아이의 죽음을 통해 정면으로 제시된다. 늘 감정을 배제하고 의사로서 소임에 집중하던 '리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정을 터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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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어린아이. 적어도 저 어린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었습니다. 신부님도 잘 아시잖아요!
-259쪽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아이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페스트라는 병 때문에 온몸을 비틀며 괴롭게 죽어간다. 삶은 이런 부조리투성이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입장을 취할 수 있을까?


작품 속에 등장하는 리외와 타루, 그랑 등 다양한 인물들은 일종의 보기처럼 제시된다. 누구처럼 살고 싶은가, 누구처럼 죽고 싶은가.



카뮈는 삶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삶 앞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를 묻는다.


삶은 부조리하다. 받아들여라.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일상. 노동. 충실. 선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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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카뮈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다.


확실한 것은 거기에. 일상의 노동 속에 있었다. 나머지는 무의미한 몸짓과 가느다란 실에 매달려 있었는데, 우리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것이었다.
- 60쪽



한때 나는 리외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실천적이고 의무 앞에 흔들리지 않고 옳고 중요한 일을 묵묵히 해 내는 사람.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현실의 나는 '그랑'에 더 가깝다.



딱 먹고 살 만큼만 버는 직장, 특별히 잘하는 것도, 눈에 띄는 재능도 없는 평범함. 한 줄의 글조차 완성하지 못한 채, 언젠가는 위대한 작가가 될 거라는 말만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 나의 이상은 '리외'였지만 나의 현실을 그랑이었다. 그 간극은 오래도록 나를 불만족스럽게 여기게 했다.



그래서일까. 특별할 것 없는 어쩌면 한심해 보기까지 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그랑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 작품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왔다.



카뮈는 법이나 규칙, 대가없이 선의를 동기 삼아 행동하는 그랑과 같은 소시민의 존재와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일상을 노동으로 채우며 충실히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선의로 연대하몆 끔찍한 시간을 견뎌낼 수 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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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보건대에 생기를 불어넣은 조용한 미덕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이 리외나 타루 이상으로 그랑이라고 평가한다. 그랑은 타고난 선의로 주저 없이 그 일을 맡겠다고 했다.
- 166쪽



보잘것없어 보여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사람. 그런 그랑을 페스트 종식의 문을 여는 사람으로 설정했다는 것이 카뮈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 아니었을까.







위험한 영웅주의


IMG_4067.JPG <알프스를 넘는 보나파르도> 자크 루이 다비드



카뮈는 페스트 사태 속에서 "영웅"이 탄생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거창한 서사나 구세주의 등장을 거부하고, 일상의 윤리와 반복되는 선택에 주목한다. 카뮈는 『페스트』 속 서술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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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결국 간접적일지언정 악의 힘을 지나치게 경의하는 데까지 이를 것이라고 서술자는 믿는다. 선행이 그토록 큰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은 선행이 그만큼 보기 드문 일이며, 결국 악의와 무관심이 인간 행위에서 훨씬 더 흔한 동인임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악은 거의 언제나 무지에서 비롯되며, 선의도 명확히 이해되지 않으면 악의처럼 피해를 입힐 수 있다.
- 163쪽




이러한 인식은 『페스트』 가 '질병'에 대한 서사가 아니라, 나치 전체주의에 대한 은유적 비판임을 상기시킨다.



히틀러는 1차 세계 대전의 후유증으로 신음하던 독일 시민들의 분노와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연설로 유명 인사가 되기 시작해 총통의 자리에 올랐다. 영웅처럼 추앙받았지만, 결국 희대의 학살자로 기록되었다.



그의 영웅화는 질문과 의심을 허락하지 않았다. 과도한 열광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지만 그 에너지는 무지에 관용적이며 의심을 허용하지 않는 힘이 있다. 누군가가 "영웅"으로 불리기 시작하면, 그 사람에게 씌워진 신화와 후광은 도덕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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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웅주의를 믿지 않아요. 제가 아는 한 영웅주의는 실천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인간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 199쪽



카뮈는 작품 내내 이러한 영웅주의를 비판한다. 그는 위대한 지도자보다도, 매일의 선택을 조용히 책임지는 사람을 더 신뢰한다. 그리고 『페스트』는 그 믿음을 문학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여성들은 왜 말이 없었을까


카뮈는 『페스트』를 통해 인간이 겪는 부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윤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인간'의 범주 안에 여성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 리외의 아내는 도시 밖 요양원에 있고, 랑베르의 연인은 떠나고 싶은 이유로만 존재하며, 리외의 어머니는 별다른 의견을 내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는 책 안에서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IMG_4051.jpg 왜 그러셨나요 궁금합니다


카뮈가 그려 놓은 인물들이 모두 남성이기보다는 무성(無性)에 가까운, 카뮈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삶의 선택지를 대표하는 상징 같은 존재처럼 그려진다. 딱히 남성성이 부각되지 않는다. 남성이라기 보다 한 인간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삶의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 절반의 인류가 서사에서 완전히 지워져 있다니. 지워진 절반에 속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퍽 섭섭하다. 이런 설정은 1940년대에 살았던 인간 카뮈의 한계였을까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에필로그

카뮈는 나치의 '전체주의'를 페스트에 빗대었다. 80년이 흐른 뒤 전체주의를 상징했던 페스트는 진짜 세균으로 코로나19라는 이름으로 부활했다. 카뮈는 '페스트균은 절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라고 했다. 어떤 형태로든 페스트가 다시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어떤 삶을, 어떤 태도를 선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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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고전소설 #세계문학 #알베르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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