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르치기
원제 『Teaching with your mouth shut』이 더 와닿는 『침묵으로 가르치기』는 미국 에버그린 주립대에서 20년간 진보 교육을 실천한 도널드 L. 핀켈 교수가 쓴 교육 철학서이자 실용서다.
핀켈 교수는 전통적인 '강의'중심 수업에서 벗어나, 말하지 않고도 가르칠 수 있는 7가지 수업 방식을 제안한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라기보다 "독자에게 교육을 논하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p.15) 쓰였다고 밝히고 있다.
입시 예능이 대세가 되고 일타강사가 연예인 못지않은 스타가 되는 한국 사회. 독서 토론의 주제로 '교육'을 설정하면 토론 시간 간내 내 침묵이 지배할까 봐 걱정할 일은 없을 것이다.
특히 체험과 성찰을 통한 배움을 제안하고 있는 이 책은 내란 사태 시민들이 민주주의에 대해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혼자 읽기보다는 생각 나누는 마중물로 삼기 적합하다. 교육과 민주주의를 함께 논할 수 있는 독서토론을 원하는 이들이게 『침묵으로 가르치기』를 추천한다.
총 8장으로 구성되며, 1장은 침묵의 교수법이 필요한 이유를, 2~6장은 구체적인 실천 방법을, 7장은 교육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마지막 8장은 전체 내용을 정리하며 마무리된다.
그중 7장은 교육의 정치성을 되짚은 중요한 장으로, 교육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주목할 만하다.
책이 출간된 해는 2000년,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다. 그 시간 동안 핀켈 교수가 소개한 '침묵으로 가르치기' 방식은 당시보다 훨씬 널리 퍼졌다.
한국에서도 '프로젝트 수업'이라는 명칭으로 과정과 토론 중심 평가가 논의되고 있고, 사고력의 깊이를 평가하는 IB(국제 바칼로레아) 커리큘럼도 교육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제주도에 자리매김한 IB 스쿨은 입학을 위해 찾아오는 외지인들이 많아져서 현지 학생조차 입학이 어려운 상황이 문제제기가 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그래서 책에서 소개고 있는 다양한 방법론들은 여전히 유익하지만, 오늘날의 독자에게는 크게 새롭지 않다.
따라서 평소 교육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구체적인 시런 사례보다도, '교육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는 '7장 민주주적인 선생님이 되어라'에 더 주목하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와 교육을 함께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되고 있다. 대한민국 교사들이 '정치적'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된 것은 1963년 박정희 군부 독재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정권은 교사들의 ‘교육의 정치적 중립의 의무’를 내세워 교사들의 정치적 시민권을 박탈했다.
이후 1989년 노태우 정부 시기, 각성한 교사들의 주도 하에 '전교조'가 결성되고 교육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자 정부는 이를 탄압하기 시작한다. 선생님들이 구속되고 일자리를 잃었다.
언론은 '전교조'와 '빨갱이'를 연결시켰고 사람들은 세뇌당했다. 80년대생인 나 역시 '선생님'과 '정치'가 연결되는 것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껴왔다. 그러나 7장을 읽고 나면, 교육이 정치권의 지배를 받는 것이 왜 민주주의를 해칠 수 있는지 보다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의 신성한 권력'이 현실이던 환경에서 의식을 형성했기 때문에 권력과 권위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이론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나타난다. 자유롭게 자기를 통제하고 넓은 범위든 좁은 범위든 민주적 공동체를 만들려면 권력을 행사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권력을 행사할 영역을 마련해 주는 권위 있는 기관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정치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무수한 혁명이 실패하는 이유는 권력을 무너뜨리듯 권위가 나오는 원천까지도 함부로 파괴하기 때문이다. 반란세력은 권력을 손에 넣은 뒤 귄위가 추락한 상황에서 권력을 행사하려 든다. 결국에는 또 다른 독재가 등장할 뿐이다.
- p. 236
저자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 인간은 본능적으로 권위자에게 의존하고 싶어 한다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 각인된 의존성 자각하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스스로 선택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귄위자가 행사하는 권력이 원래 내 것임을 알지 못하는 되기 쉽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헌법 조항이 괜히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가장 앞부분에 배치된 것이 아니다.
핀켈 교수는 본능에 가까운 권력을 향한 의존성이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제어될 수 있다고 말한다. 권위자인 교수가가 동석한 상황에서 학생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해 보는 경험을 통해서다. 민주주의는 권위와 권력을 명확히 구별하는 데서 출발하며, 이 구별이 흐려진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
포드 박사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건을 내걸었다. 첫째, 하나의 규칙(희곡을 토론하기 위해 모였다). 둘째, 하나의 제약("여러분에게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지 않겠다"). 셋째 일반적이고 모호한 방향("여러분이 토론 주제와 토론 방식을 알아내야 한다."). 넷째, 최소한의 지원 약속("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말하겠지만 되도록 말을 아낄 것이다"). 다섯째, 토론에 진지하게 임하는 자세 ("여러분의 말을 듣겠다 여러분의 토론에서 배우겠다").
그러고는 학생들끼리 우왕좌왕하면서 진땀을 빼도록 내버려두었다. 포드 박사는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을 끝까지 지켜보기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실제로 아무리 보잘것없는 결과가 나와도 아무리 지루한 토론이 이어져도, 아무리 학생들이 강력히 요청해도 다시 수업의 주도권을 쥐려는 유혹에 휘둘리지 않았다. 포드 박사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유일한 교육 방법은 바로 민주주의다."라는 어느 작가의 말을 굳게 믿는 자세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
- p.229
핀켈 교수가 설정한 가상의 인물 포드 박사는 학생들이 권위자가 설정한 규칙을 존중하면서도 교수에게 주눅 들지 않고 스스로 계획하고 발언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수업 환경을 설계했다.
이러한 환경은 교사가 자신의 권위를 '휘두룰 수 있는 권력'착각한다면 조성되기 어렵다. 규칙이 있고, 권위자(교수)가 있으며, 권력자(시민)가 활동하는 공간이 되는 교실은 작은 민주주의 무대가 된다.
독자들은 7장을 통해 독자는 왜 권력과 귄위가 분리되어야 하는지, 왜 이 구별이 교육 안에서 시작되어야 하는지를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독재 군부 정권 시기 고등교육을 받으며 체제에 아무런 저항 없이 편입된 '엘리트 카르텔'은, 권위와 권력의 차이 배우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사람들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이 내란 세력이 된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결국 교실은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니라,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하는 리허설 무대다. 한 공간에 권위자(선생님)과 시민(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는 학교는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다. 그것이 본질이기에, 정치와 교실을 분리하고자 교사의 권위를 억제한다고 해서 정치적 성격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정치적 환경일 수밖에 없는 학교에서 정치적 상황을 인위적으로 제거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교육의 자연스러운 진화를 막고 왜곡을 초래한다.
생성형 AI라는 산업혁명급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지금, 우리의 중고등 교육, 대학입시, 대학교육은 30년 전과 비교해도 놀라울 만큼 바뀌지 않았다. 반면 초등교육은 진보 교육의 영향을 받아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니다.
여전히 최종 목표는 '5지 선다' 객관식 문제지를 잘 풀어 '서열' 높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초등 교육에서는 '서열'을 없애고 '학생인권'을 강조하고 무리한 학습을 지양한다.
그 결과 한국의 한생들은 12년 동안 전혀 다른 교육 철학을 오가며 혼란을 겪고 있다. 좋고 나쁨을 떠나 앞뒤가 맞지 않는 12년 교육으로 구성의 배경에는 어쩌면 '정치 없는 교육'이라는 환상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의 급진적 변화는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권위자로서 교사의 의견과 권한을 무시한 채,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결과다. '공정성'을 명분 삼아 여전히 '5지 선다'문제와 서열화를 고집하는 교육 방식은 독재 군부의 잔재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정치적 성향을 떠나 권력과 귄위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의사결정들이 쌓여 오늘날의 교육 현실을 만든 게 아닐까.
정치와 교육을 논하면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정치교육'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 교육 환경이지 정치 교육이 아니다. 교육 현장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교사들의 주권, 학생들에게 스스로 사유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정치적인 교육'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교육이다.
이 책은 저자의 의도대로 다양한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교육의 본질에 대해 묻고, 전통적인 강의 방식과는 다른 침묵으로 가르칠 수 있는 실질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교육과 민주주의의 관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저자의 모든 주장은 그의 개인 경험에 기반한다. 20년간 재직한 에버그린 주립대는 미국 내에서도 특수한 사례로, 인문학 중심의 대안적 교육기관이다. "학과 구분이 없고, 교수의 종신 재직권도 없고, 학문적 서열도 없고, 성과급도 없으며, 출판이나 연구에 대한 요구도 없고, 학생이 지켜야 할 요건도 없고, 전공도 없고, 학점도 없"(p.308)다. 재직하는 교수들은 대안교육에 가까운 방식에 기꺼이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았을 것이고 학생들은 에버그린의 특성을 알고 지원하고 입학했을 것이다. 즉, 책에 실린 것은 진보적인 교육방식을 선호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나온 통찰이다. 일반화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그의 제안은 이상적이지만, 구조화된 논증보다는 성찰과 관찰의 기록에 가깝다. 그래서 이 책을 훌륭한 비문학 사회과학 저작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회고록'에 가까운 성격을 지닌 텍스트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어나가야 할 것이다.
교육학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정량화하거나, 해당 수업을 받은 졸업생들의 성장을 추적하는 연구가 함께 제시되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핀켈 교수는 말한다. 배움의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면 교사는 일단 Mouth를 Shut 해보라고. 나는 배워야 할 것이 많은 학생에 가까운 입장이니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써야 하겠다. '침묵으로 가르치기'가 교사에게 요구된다면, 학생에게는 '주눅 들지 않고 마음껏 떠들기'가 필요할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침묵은 교사가 권위자로서 휘두르고 싶은 권력의 욕망을 제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한발 물러나 학생이라는 시민의 존재를 존중하는 데서 완성된다.
이 같은 논리는 부모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거리를 제공한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땐, 부모가 권위와 권력을 함께 쥐고 있지만 점점 그 권력을 지혜롭게 이양할 줄 알아야 한다. '아이를 존중한다'는 말이 말뿐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여러모로 이 책은 입 다물고 있기 어려운 책이다. 독자는 조용히 읽다가도 자꾸 뭔가 말하고 싶어질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이 책을 읽고, 실컷 떠들며, 저자 말한 진짜 '배움'을 직접 경험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