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 디코딩 #009: 왕가위가 스크린에 가두어 둔 1994년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은 왕가위 감독하면 떠오르는 대표 영화 중 하나다. 두 개로 나뉜 이야기가 같은 시공간에서 펼쳐지며, 등장인물들이 한 화면에 겹쳐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서사가 직접적으로 이어지지 않는 옴니버스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왕가위 감독은 시간에 대한 그의 관심을 짙게 드러낸다. 자주 등장하는 시계, 유통기한이 임박한 통조림 소품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주요 인물이 마치 다른 시간을 경유하는 듯한 스텝 프린팅 연출도 그렇다. 그런데 정작 영화 속 시계의 날짜와 요일에는 오류가 있다.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많은 시네필들이 죽기 전에 봐야 하는 것으로 주저 없이 꼽는 이 영화, 감독이 관심이 많다는 시간이란 화두와 함께 새롭게 읽어보자.
영화는 시간을 가두는 예술이다.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는 것은, 끝없이 반복될 시작과 끝의 우주가 세계의 다른 층위에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영화는 오늘을 가둬서 내일로 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간의 이동은 공간의 이동이기도 하다.
『슈퍼맨(Superman, 1978)』에서 지구의 시간을 돌리는 일을 생각해 보자. 지구의 자전은 거꾸로 되돌렸지만, 공전은 그대로 진행됐다. 달리 말하자면 지구의 오늘이 공전 궤도 상의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고 할 수 있다. 태양도, 우리의 은하도 움직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슈퍼맨이 되돌린 지구의 현재는 이 우주의 어딘가로 이동한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금발의 가발에 선글라스를 쓴 여자(임청하), 비도 오지 않는 날에 레인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팝아트에서 튀어나온 듯한 특이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독특한 설정으로 왕가위 감독은 그녀를 영화 그 자체의 은유로 사용한다. 그래서 그녀는 어디론가 끊임없이 이동한다. 영화는 현재를 가두어 미래로 보내며, 이는 오늘을 이 우주의 어딘가로 계속 이동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비가 올지도 모른다며 레인코트를 입고, 언제 화창할지 모른다며 선글라스를 쓰고 다닌다. 영화가 옮겨 다니는 시공간, 언제 어디에서건 화창하거나 비는 올 것이다. 그래서 시대를 가로지르는 걸작은 마치 그녀처럼 특이한 생김새들을 지녔는지도 모른다. 비가 오지 않는 날의 레인코트나 한밤의 선글라스처럼 말이다.
왕가위 감독이 이전 작품인 『동사서독(1994)』을 촬영하느라 힘들어했고, 휴식과 이완을 위해 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이 경찰 223 하지무(금성무)는 그런 감독을 투영한 존재로 영화 안에서 움직인다. 마치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컷을 배분하듯, 57시간 후에 선글라스의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말, 6시간 후 페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말은 작가나 감독이 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무와 금발 가발의 그녀가 호텔에서 쉬는 것은, 이 영화 자체에 대한 재귀적 은유이다. 고작 광둥어 영화를 보며 셰프 샐러드를 먹는 것 같은 사소한 일일지라도, 감독에겐 이 영화와 함께 있는 것 자체가 휴식이 된다.
그래서 그는 30년 넘게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세련된 영상으로 영화를 가득 채운다. 아름다운 영화에 몰두하는 그 자체가 힐링이라는 담담한 고백이, 넥타이로 구두를 닦는 하지무의 모습에 담겨 있다.
영화의 필름은 끝없이 태초로 되감길 수 있다지만,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다. 영화라는 하나의 완결된 우주를 만들고 감상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현실의 시간을 소모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스를 수 없는 물리학 법칙, 영화를 창조하고 향유하는 일조차 결국 현실의 에너지를 태우는 일이다. 그래서 금발의 그녀가 프레임 안을 쉴 새 없이 움직일 때, 그 궤적의 뒤로 엔트로피의 증가를 상징하듯 죽음들이 뒤따른다.
1990년대 반환을 앞둔 홍콩인들만큼 시간이 유한한 자원이란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 또 있었을까. 이 영화에선 금발 그녀의 서사만이 누아르로 칠해진다. 영화라는 도피처에 시간을 가두려 했던 홍콩인들, 그 절박함의 만개가 누아르였다. 그 찬란했던 도피가 곧 멈추게 되는 현실이 그녀에게 투영된다. 영화든 세계든 언젠간 끝난다. 그녀 또한 건네진 통조림을 보며, 자신의 유통기한이 얼마 안 남았음을 자각한다.
이 유한성은 하지무가 수집하는 파인애플 통조림의 유통기한이기도 하다. 금발 가발의 그녀가 영화라는 초현실의 화신이라면, 이 통조림들은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작품의 물성으로서의 은유다. 하지무는 그녀에게 파인애플을 좋아하냐고 여러 차례 되묻는다. 이 장면에선 마치 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가 그만의 미학 기준에 맞는지 스스로 되묻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무는 땀을 흘려 수분을 뽑아내면 눈물이 나지 않는다며 이른 새벽에 조깅을 한다. 그가 치르는 옛 연인과의 쿨한 절연의 의례이다. 여기에 지난 영화 『동사서독』과의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왕가위 감독의 모습이 겹쳐질 때, 금발의 그녀는 하지무에게 잊기 싫은 기억을 남긴다.
기억의 유통기한을 만년으로 하고 싶다는 고백, 기억과 영화는 시간을 가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래서 이 고백에는 보다 오랜 시간을 이동하며, 보다 많은 시간을 가두고 싶어 하는 감독의 바람이 담긴다.
그리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이 영화에서 사랑에 빠지는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있다. 하지무와 페이(왕페이).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 대상이 되는 금발의 그녀와 경찰 663(양조위)은 실명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이 익명성은 허구로서의 영화를 나타낸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금발의 그녀가 독특한 외양의 신비한 아름다움으로 등장했다면, 경찰 663은 모자를 벗고 단정하게 정돈된 머리로 자신의 미(美)를 드러내며 화면 안으로 들어온다. 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감독을 대리하는 것은 이 남자를 사랑하게 된 페이다.
그녀는 이 남자의 집에 몰래 침입하여 방을 청소하고, 소품을 바꾼다. 보기엔 따라선 심각한 범죄와도 다름없는 행위를 영화는 꿈이라는 말한다. 페이는 스스로를 깰 수 없는 꿈에 빠진 몽유병 환자로 취급한다. 꿈 또한 시간을 가두며, 현실과 다른 층위의 표상 세계를 만든다는 점에서 영화와 같다.
영화는 페이가 경찰 663의 집을 처음 침입하는 일을 꿈으로 포장하여, 허구의 상징임을 드러낸다. 그 뒤에 페이가 몰래 들어가 비누를 바꾸고, 인형을 교체하고, 어항에 물고기를 채워 넣는 행위는 감독이 프레임 안의 '미장센을 세팅하고 편집하는 과정'과 동일하다. 허구의 세계를 창조하고 통제하며 자신만의 리듬으로 재배치하는 창작자의 즐거움을 그녀는 온전히 누린다.
집 안에서의 경찰 663의 행동은 독특하다. 사물이 헤어진 그녀를 그리워한다며, 말을 걸고 위로하고, 때로는 격려하며 타박한다. 그런데 영화라는 세계는 원래 이렇게 작동한다. 영화는 배우의 연기로만 말하지 않는다. 때론 영상의 사물들이 의미를 가지고 관객에게 이를 전달하기도 한다. 언어로 다하지 못하는 것, 말보다 효과적인 전달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 사물과 공간의 배치, 우린 그것을 미장센이라 부른다. 화면 안에서 이것들이 배우의 연기와 함께 조화와 서사를 펼치는 일, 그것이 영화다.
마침내 그녀의 연출은 최종 완성 단계에 이른다. 데이트를 신청한 후, 경찰 663은 페이가 옷장에 넣어둔 체크무늬 셔츠로 멋을 내고 캘리포니아 바에서 그녀를 기다린다. 하지만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보던 페이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페이는 진짜 미국 '캘리포니아'로 떠나고, 경찰 663은 술집 '캘리포니아'에 남는다. 이 두 공간의 시차는 영화의 시간과 감독의 현실 시간의 차이다.
영화의 완성은 프레임 안에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미 감독은 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도 첫 번째 것처럼 현실의 엔트로피 증가를 잊지 않고 묘사했다. 이 달콤한 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페이가 현실의 에너지를 갉아먹은 대가로, 삼촌의 가게는 단전되고 말았다. 현실 세계의 엔트로피 증가, 즉 영화의 완성에는 시간의 흐름이 필요하다.
경찰 663과 페이의 1년 간의 이별, 첫 번째 이야기 속 시계의 요일이 맞지 않는 비밀이 여기서 풀린다. 영화의 1994년 4월 28일은 금요일이지만, 현실에선 목요일이었다. 4월 28일이 금요일인 건 1995년이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이 지연이 필요했던 작품이다. 그래서 페이는 캘리포니아로 떠나서 1년을 보낸다. 작품이 감독의 손을 떠나 얼마 간 이동해서 현실의 시공간에 맞춰질 때, 조금은 낯설어진 영화를 다시 만나는 그 설렘을 감독은 기대하지 않았을까. 하지무의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는 쿨함, 심리적 거리 두기는 이렇게 설명된다.
감독은 이미 촬영과 편집을 끝내고 현실의 시간으로 넘어갔지만, 프레임 안의 세상은 감독을 기다린다. 결국 영화라는 예술은 1년이라는 물리적 시간을 통과한 뒤에야 비로소 창작자와 영화가 같은 주파수에서 만날 수 있는 지연된 소통이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로소 레인코트가 어울리게 비가 내리는 날, 페이는 캘리포니아 바에 앉아 있다. 그간 현실의 흐름을 말하듯, 그녀 주변 사람들의 실루엣이 빠르게 움직인다.
흥미롭게도 마지막 모습에서의 페이는 앞서 영화를 은유하는 인물들의 상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첫 이야기에서 금발 가발의 그녀는 마지막에 가발을 벗어던지며, 검은 긴 머리를 드러냈었다. 지금 페이는 긴 머리에 선글라스를 쓴 모습이다. 거기에 더해 그녀는 경찰 663의 상징이었던 제복을 입고 있다.
결말부, 경찰 663이 페이 삼촌의 가게를 인수해 기다린다. 허구의 세계가 제복을 벗고 현실을 점유하고, 현실 감독의 대리인 페이는 영화를 은유하던 인물들의 상징을 모두 입고 있다. 현실과 환상이 교류하는 창작의 공간, 영화는 현실이 되고, 현실은 다시 영화가 된다. 그곳에서 영화는 번져버린 비행기 티켓, 즉 '어디로든 갈 수 있는 티켓'을 쥐고 다시 한번 새로운 목적지로 떠날 준비를 마친다.
그리하여 왕가위 감독이 가두어 둔 1994년의 시간은 그렇게 스크린이라는 우주를 넘어, 매번 새로운 내일로 당도하고 있다. 그 시절 아름다웠던 홍콩의 야경을 가득 담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