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의 성장을 믿지 않는 출판계, 그리고 유튜브의 승리
내가 무거운 원고 뭉치를 들고 서 있는 테레사라면, 내 원고를 거절한 출판사들은 토마스였다.
나는 테레사처럼 운명적인 떨림을 안고 그들의 문을 두드렸다. "보세요, 당신들이 찾던 진심이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문을 열어준 토마스의 시선은 나에게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가 사랑하는 연인들, 그가 기꺼이 지면을 내어주는 그들의 목록을 훑어보았을 때, 나는 그곳에서 사비나의 얼굴을 보았다.
나의 질투는 '사비나'에게 꽂혔다
출판사의 리스트를 채우고 있는 건 두 종류뿐이었다.
해외 혹은 국내 유명 대학의 졸업장과 유력한 직업을 가진 권위자의 책, 아니면 검증된 해외 거장의 번역서.
그들은 사비나였다. 그들은 멋있고, 세련되며, 무엇보다 '안전'했다. 토마스는 나의 무거운 진심(원고)보다는, 사비나가 가진 권위(스펙)와 매혹적인 간판(이름값)을 사랑했다.
나의 질투는 정확히 그 지점에 꽂혔다. 이건 미움이 아니다. 나도 사비나를 사랑한다. 어쩌면 동경하고 있다.
다만, 나를 바라보지 않는 토마스가 미울 뿐이다.
나는 당신들(토마스)이 펴낸 그 사비나들의 책을 읽으며 자랐다. 이사를 다닐 때마다 가장 번거롭고 힘든 일인 책을 싸고, 나르고, 풀어헤치고, 정리하는 것이었다. 책은 꽤나 무게가 많이 나가는 물건이고, 가끔 이삿짐센터의 인부들이 불평을 터뜨릴 정도로 책이 많았다. 이 책들을 살 땐 그들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이 책을 읽으면 너의 삶이 풍요로워질 거야. 너는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넓게 보게 될 거야."
나는 지금도 그 풍요의 약속이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들이 소개한 사비나의 책을 읽고 내 삶을 버무려, 마침내 나만의 사유를 담은 새로운 글을 써냈다. 그런데 막상 그 결과물을 들고 찾아가니, 당신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묻는다.
"당신의 학위는 무엇입니까? 당신의 이력은 무엇입니까?"
이건 기만이다.
내가 이 책들을 읽고도 새로운 글을 쓸 역량을 키울 수 없다고 전제한다면, 애초에 그들은 나에게 무엇을 판 것인가? 내 영혼을 살 찌운 줄 알았던 그 독서가, 사실은 그저 '영원한 소비자'로 남으라는 가스라이팅이었단 말인가?
토마스는 사비나의 가벼움을 사랑하면서도, 테레사에게는 무거움을 강요한다. 독자에게는 인문학적 깊이를 요구하면서, 정작 작가를 뽑을 때는 가장 가볍고 안전한 스펙만을 좇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텍스트의 시대가 가고 유튜브의 시대가 왔느냐고. 답은 간단하다. 유튜브는 사비나를 편애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묻지 않는다.
"당신의 학력은 무엇입니까?"
대신 이렇게 말한다.
"재밌죠? 당신도 할 수 있어요. Broadcast Yourself."
유튜브는 시청자를 잠재적 크리에이터(생산자)로 대우한다. 누구나 카메라를 켜면 화자가 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의 판매'가 유튜브를 제국으로 만들었다.
반면 출판사는 여전히 묻는다. "당신의 자격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독자를 영원히 객석에 앉혀두려 한다. 무대 위에는 오직 그들이 간택한 사비나들만이 올라갈 수 있다. 독자가 생산자가 되려 할 때, 그들은 카르텔의 높은 벽을 세우고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한다.
테레사는 토마스의 바람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통받았다. 하지만 나는 울면서 기다리는 테레사가 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토마스를 떠나, 스스로 무대를 만들기로 했다.
1인 출판, 나는 이곳에 남아, 내 무거운 짐 가방을 풀고 가벼워질 것이다.
소비자로 남기를 거부하는 순간, 비로소 진짜 독서가 완성된다고 믿습니다. 유튜브보다 더 열려 있는 책의 세계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