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나의 '그래야만 한다'에 대하여
책을 처음 쓸 때, 나는 어떤 확고한 기운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첫 소절이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빠바바 밤! (Es muss sein!) 그래야만 한다!"
이 원고는 세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움베르토 에코와 인공지능의 결합이라니, 이건 내가 아니면 누구도 쓸 수 없는, 필연적인 아이디어였다. 나는 모니터 앞에서 전율했고,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계약서를 내밀 것이라는 미래를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토마스를 처음 만나러 간 테레사였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테레사는 토마스를 운명이라 믿는다. 그녀가 그를 운명으로 점지한 근거는 '여섯 번의 우연'이었다. 그가 그녀의 마을에 나타난 시각, 방 번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베토벤의 음악...
그녀는 그 우연들을 필연의 징표로 해석하고, 겨드랑이에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낀 채 토마스를 찾아간다. 그녀에게 그 책은 단순한 소설책이 아니었다. 비루한 현실과 자신을 구분 짓는 유일한 '입장권'이자, 당신과 나는 같은 영혼의 결을 가졌다는 '신분증'이었다.
나에게도 내 원고는 『안나 카레니나』였다.
나는 이 원고를 들고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다. "보세요, 여기 당신들이 찾던 답이 있습니다. 이 책은 운명입니다." 내 마음속에선 베토벤의 현악 4중주가 장중하게 연주되고 있었다.
"그래야만 한다! (Es muss sein!)"
하지만 나의 세계는, 그리고 출판사의 세계는 테레사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토마스 같았다.
토마스에게 테레사와의 만남은 그저 수많은 연애 사건 중 하나, 무거운 의미가 제거된 '가벼운 우연'일 뿐이었다. 그는 테레사의 겨드랑이에 끼워진 책이 얼마나 무거운 의미인지, 그녀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운명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혹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던 날, 나는 내 귀에 울리던 운명 교향곡이 나 혼자만의 환청이었음을 깨달았다.
세상은 내 책을 '필연'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내 책은 수만 권의 투고 중 하나, 스크롤을 내리다 우연히 마주친 텍스트 덩어리일 뿐이었다.
나의 '무거움(진심)'이 세상의 '가벼움(무관심)'에 부딪혀 산산조각 나는 소리. 쿤데라가 말한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바로 내 원고지 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테레사는 토마스를 운명이라 믿게 만든 여섯 가지 우연에 인생을 걸었다. 하지만 나의 운명은 베토벤의 음악처럼 장엄하게 찾아오지 않았다.
출판사들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은 날, 나는 편의점 진열대에서 기묘한 물건을 발견했다. 포장지에는 굵은 고딕체로 익숙한 로고가 박혀 있었다.
'교보문고맛 생크림빵'
호기심이 일었다. 나는 그 빵을 집어 들었다. 한 입 베어 문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기름지고 다디단 크림의 맛. 그것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보다 훨씬 강력하게 내 혀를 때렸다.
"저 빵도 '교보문고'의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왔는데, 교보문고의 한 켠에 내 책을 올리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이 엉뚱하고 가벼운 우연을 나의 계시로 삼기로 결심했다.
그날 이후 나는 1인 출판사를 차렸다.
나의 '그래야만 한다(Es muss sein)'는 숭고한 예술혼이 아니라, 편의점 빵 봉지 뜯는 소리와 함께 완성되었다.
이제 내 겨드랑이에는 『안나 카레니나』 대신, 내가 선택한 가벼운 계시, 달고 기름진 교보문고 빵이 끼워져 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맛볼 수 있는 달콤함. 기왕에 필요했던 계시였다면, 이 달콤함이 나의 이 여정을 좀 더 달게 해주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참을 수 없이 가벼운, 그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진짜 운명이다.
"Es muss sein. 빵을 먹었으니, 책을 내야만 한다."
운명은 때로 거창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라, "1+1 행사 상품입니다"라는 점원의 목소리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가벼움을 무거운 운명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