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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말랑떡 Nov 13. 2024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남의 편이야기

    ♪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날 울려 놓고 가는 바람 ♪


이 노래는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씩은 들어봤던 가수 김범룡의 '바람 바람 바람'의 가사이다.

TV, 라디오에서건 언제 어디서든 이 노래를 들으면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분은 ‘남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지우면 님,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찍으면 남이 된’ 다는 나의 남편이다.

(단, 여기서 하나! 짚고 가실게요. 남편이 불륜과 같이 바람을 핀 것은 절대 아니어유. 바람까지 피웠다면 캭! )

건축일을 하는 남편은 직업상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닌다.

막 결혼소식을 알리려 할 때 내가 다닌 원의 어머님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씀하셨더랬다.


“어머~선생님, 조상님이 복을 정말 많이 쌓으셨나 봐요. 주말부부는 신이 내려야 한다던데 오복 중에 하나라는 주말부부라니. 좋으시겠어요. 진짜 부러워요.”

하, 하, 하. 그냥 웃지요.

사실 처음 주말부부를 할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연애 때와 마찬가지로 주말마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일상이었으니. 오히려 신혼 때는 애틋함이 있었다. 더 같이 있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헤어져야만 하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다고 할까?  하지만 내가 예상 못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바로 육아. 사실 육아 또한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아이의 울음소리도 짜증도 다 받아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엄마’와는 자리와 어디 감히 이 세상의 무엇과 비교할 수 있으랴?

아이를 낳아보니 생각지도 못한 서스펜스급 반전이 계속 생겨났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어디 안드로메다로 가셨고 육아에 허덕이는 다크서클이 바닥까지 내려온 ‘무늬만 엄마만 있었다. 조리원에서 오자마자 남의 편은 나를 위한 커다란 배려심으로(?) 안방이 아닌 작은방으로 처서를 옮기셨고 나는 집에 온 첫날부터 홀로 잠을 자지 않는 아이를 안고 집안 곳곳을 군대 행군마냥 걷고 또 걸으며 끝이 없는 엄마라는 삶으로 스며들었다. 남편은 마누라가 그러든가 말든가 서울에서 지방까지 긴 시간 운전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부부젤라 저리 뺨치듯 코를 골며 ‘그냥 아빠’가 되었다.

주말 부부라고 하지만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열나흘 부부 거의 보름부부인셈이다. 2주 만에 토요일에 왔다가 남편이 하는 거라곤 “우리 똥강아지~”하며 아이와는 눈 한번 깜박, TV와 물아일체 되는 것이 일상이고 아이가 울 낌새가 보이면 저절로 나에게 패스~각이다. 그래도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힘든 남편 생각에 삼시 세끼 밥 차려내고 치우는 일까지 평소보다 일이 배가 되지만 아내로서 당연히 해야 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게 한 달 두 달 계속 쌓아가니 육아에 무관심인 남편이 눈엣가시처럼 박혀버렸다. 아이는 저절로 큰다나 뭐라나? 참다 참다못해 울분을 토해버리면 남편의 18번 곡조가 흘러나온다. 내가 바람을 피나, 돈을 못 벌어다 주냐, 뭐가 문제냐. 여기서 덧붙여 내가 우울하다, 힘들다고 말하면 자기도 우울증이 걸렸다나 뭐라나 진짜 개풀 뜯어먹는 소리 하네! 참고로 남편의 MBTI를 해보지 않았지만 T가 확실하다. 공감능력 제로.


일요일이 되면 갈 길이 멀어 차가 막힌다며 아침 일찍 처자식을 두고 바람처럼 가버린 당신.

그대에게 만해 한용운 님의 시를 빗대어 소녀 한 곡조 올리겠나이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며 닭똥 같은 눈물로 사랑을 외치던 그 님은 동굴 속의 곰이 되어 사라져 버렸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사랑한다 끝까지 책임질게 하고 호언장담 했던 빛나는 옛 맹세는 물거품 된 지 오래 그는 나에게 외로움과 독박육아 만을 남기고 갔습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 멀은 나는 내 눈과 귀를 다시 그 시절로 고이 돌려놓고 싶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어떻게 될지를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독박육아는 뜻밖의 일이 되고 힘든 가슴은 응어리가 되어 바위가 되어 쌓여만 갑니다.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울고 웃고 함께 하며 시간이라는 약을 처방받아 남편에 대한 원망, 서운함으로부터 마음도 조금씩 치료받고 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도, 남편도 불안해서가 아니었을까? 엄마도 아빠도 처음이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의 육아에 대한 태도는 변함이 없지만 달라졌다면 나의 달라진 시각이다. 활화산처럼 타오르기도, 속 끓일 시간도 부질없음을 새삼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남이 안 바뀌면 내가 바뀌면 될 것 아니냐. 더불어 이건 소중한 내 아이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는 엄마보단 광년이처럼 웃고 있는 엄마가 훨씬 나으니까.

평생 다른 삶을 살아온 남녀가 부부가 된다고 해서 단연 부부일심동체가 되는 건 결코 아니다. 소위 잉꼬부부라는 사람들을 보아도 서로를 위한 이해와 배려심이 기본값이지 않은가. 부부는 무촌이듯 그처럼 허물이 없고 서로서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다. 가끔 필요할 때 없고 필요 없을 때 있음으로 인해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이 또한 삶의 시간으로 기록되고 지나가리라. 군대를 가보진 않았다만 전우애를 가지고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함을 스스로 알게 된다.  


그대 이름은 바람 바람 바람. 하지만 흔적은 남기고 간다.

짝을 잃은 양말 한 짝, 먹다 남은 과자 봉지, 꽈배기처럼 꼬아놓은 수건, 냉장고에 있는 일센치 남은 콜라병, 사람이 들었나 싶을 정도의 허물 벗은 바지. 오늘도 우리 사랑스러운 바람이 다녀갔구나.

오로지 나의 편이 되어줄 줄 알았던 남의 편 님. 남은 평생 전우애로 멋지게 살아갑시다.

앞으로 행군하라! 으쌰라으쌰!

이건 왜 냉장고에 넣어두는지 아시는 분? 손~~


p.s 근데 그거 아니? 늙고 병들면 옆에 마누라밖에 없다는 거~ 쩜 잘해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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