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기준에 대한 이야기, 호소다 다카히로의 ‘컨셉 수업’
인생은 의미를 찾는 과정의 연속인 것 같다.
일도, 우정도, 사랑도 결국은 ‘이게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비즈니스 역시 다르지 않다. AI, DX, 블록체인, 웹3, 양자컴퓨터까지 새로운 기술이 쏟아지는 시대지만, 그 화려한 키워드들 아래에서 끝까지 남는 질문은 늘 같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만들고 있는가. 내가 『컨셉 수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붙잡은 문장도 결국 이 질문이었다. 이 책이 말하는 본질은 바로 그 질문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 데 있고, 그 질문을 붙잡아두는 도구가 컨셉이다.
호소다 다카히로의 『컨셉 수업』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안다고 착각해온 ‘컨셉’이라는 단어를 처음부터 다시 정의한다. 책 소개를 훑어보면 세계적인 광고 대행사에서 오랫동안 크리에이티브를 맡아온 저자가 ‘컨셉’ 강의를 10년 가까이 해왔고,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피드백을 받아 커리큘럼을 다듬어 왔다고 한다. 그런 배경을 알고 읽어서일까. 이 책은 컨셉을 ‘감각’이나 ‘재능’의 영역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오히려 컨셉은 모든 창작과 비즈니스의 출발점이자, 가장 기본적인 사고 훈련에 가깝다고 말한다. 컨셉을 어느 정도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 절반만 알고 있었구나 하는 순간이 몇 번이나 찾아왔다.
컨셉을 ‘가치의 설계도’라고 정의하는 대목에서는 이 책이 무엇을 하려는지가 분명해진다. 컨셉은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고, 전체에 일관성을 부여하며, 고객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즉 컨셉은 잘 보이는 문장이 아니라, 말이 스스로 일하게 만드는 구조다. 그래서 컨셉이 명확한 조직은 설명이 줄어들고 판단이 빨라진다.
반대로 컨셉이 흐릿하면 회의는 길어지고, 선택의 순간에는 감에 의존하게 된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막상 실무에서 컨셉이 ‘결정을 돕는 구조’가 아니라 ‘발표를 위한 문장’으로 소비되는 순간을 우리는 자주 경험한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초반이 특히 좋았다. 컨셉이 무엇인지보다 먼저, 컨셉이 무엇을 하게 만드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책 전반에 흐르는 메시지는 일관된다. 기술이나 유행어는 결국 만드는 사람에게만 편한 말이 되기 쉽고, 고객의 언어로 번역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 컨셉을 만드는 사람의 실력은 바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자기만족으로 끝나는 말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고객의 행동을 바꾸는 말을 만들 것인가. 『컨셉 수업』은 쉬운 언어로 아주 은근하게, 그러나 꽤 집요하게 그 차이를 만드는 사고의 틀을 훈련시킨다. 읽는 내내 내가 실제로 하고 있던 것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그동안 컨셉을 ‘관통하는 새로움’ 정도로 이해해왔다. 브랜드를 한 단어로 요약하는 일, 혹은 기획서 첫 장에 들어가는 그럴듯한 문장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니, 이미 존재하던 것들을 어떻게 묶고, 어떤 관계로 다시 보이게 하느냐에 따라 새로움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관점이 이후의 선택들을 설명해주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컨셉을 다시 보게 됐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이 따라왔다. 나에게 좋은 컨셉을 가진 브랜드는 무엇일까. 에르메스, 모나미, 무인양품. 이 브랜드들의 공통점은 설명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는 점이다. 색이나 질감, 대표적인 제품만 떠올려도 브랜드의 태도가 함께 따라온다.
유행을 적극적으로 좇기보다는, 자기 속도로 가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 단단해 보인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이 브랜드들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컨셉이란 결국 그 브랜드가 세상에 있는 이유를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주는 말이니까.
애플의 아이팟 개발 이야기를 읽으며 그 기준이라는 말이 무엇인지 조금 더 선명해졌다. 아이팟의 클릭휠은 사용자가 음악을 탐색하는 경험을 가장 직관적으로 만들기 위해 설계된 결과물이다. 컨셉을 먼저 세우고, 그 컨셉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자 경험을 끝까지 설계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기능을 나열하기보다 경험을 중심에 두는 선택. 컨셉이 명확하면 디테일의 방향도 이렇게 명확해진다는 사실이 와닿았다.
스타벅스의 ‘제3의 장소’ 사례를 읽을 때도 비슷한 감정이 들었다. 이탈리아의 카페 문화를 미국에 들여오고 싶다는 아이디어는 그 자체로는 멋지지만, 고객이 돈을 지불할 이유는 아니다. 그것을 집도 직장도 아닌, 머물 수 있는 또 하나의 공간으로 재구성했을 때 비로소 컨셉이 된다.
이 장면에서 나는 브랜드를 분석하고 있다기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의 테마는 무엇일까. 나의 컨셉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경험을 만들고 싶은 사람일까. 마케터는 결국 ‘의미를 설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같은 기능이라도 다른 의미로 읽히게 만드는 것, 같은 제품이라도 다른 경험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 그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게 컨셉이라면, 컨셉을 공부한다는 건 ‘브랜드를 공부한다’기보다 ‘사람이 의미를 느끼는 방식을 공부한다’는 말이 된다.
IDEO의 이야기를 하며 빌 모그리지가 '명사가 아니라 동사를 디자인하라'고 말한 대목도 오래 남았다. 사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설계한다는 관점. 이 문장은 컨셉을 정의나 문장이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과 선택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마케터로서 무엇을 말할지 고민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이끌고 싶은지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컨셉이 살아 있는 브랜드는 말보다 먼저 행동이 떠오른다는 문장을 나는 계속 마음속에서 굴렸다. 브랜드를 기억시키는 건 로고가 아니라 경험이고, 경험은 결국 행동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팩트, 메리트, 베네핏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부분도 인상 깊었다. 단순히 정의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자신의 사례를 자연스럽게 대입해볼 수 있도록 풀어낸다. 생각보다 많은 프로덕트와 비즈니스가 이런 요소들을 명확히 정리하지 않은 채 출발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오히려 우리는 일을 오래 할수록 더 쉬운 것들을 당연하게 넘기고, 그 당연함이 쌓여 어느 순간 모호함이 된다.
그래서 나는 이 페이지를 읽으며 모든 비즈니스가 이 과정을 진지하게 시도하고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의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실행이 빨라지는 건, 방향 없이 속도만 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후반부에서 미션과 비전, 그리고 컨셉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한 방식은 이 책을 더 오래 기억하게 만들었다. 미션은 사명이며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고, 비전은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컨셉은 그 사이에서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최선을 말로 고정한다. 창업, 현재, 미래를 하나의 이야기로 잇는 구조. 컨셉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시간을 연결하는 언어라는 점이 선명해졌다. 특히 나는 ‘과거와 미래를 말로 연결하라’는 결의 메시지가 좋았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일시적인 캠페인이나 단기 성과로 끝나지 않으려면, 결국 시간의 서사가 필요하다는 뜻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그 브랜드가 기능을 제공해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의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모호하게 쓰이던 개념들을 구체적이고 쉽게 설명한다는 것이다. 니즈와 인사이트를 구분해 설명한 부분은 특히 인상 깊었다.
두 개념이 완전히 상충된다고 보지는 않지만, 인사이트를 ‘아직 충족되지 않은 숨겨진 욕구’로 명확히 정의하여 분리해준다.
이런 서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개념을 정말로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는 뜻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일할까. 한 번쯤은 이런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은 어떤 환경일까. 부럽기도 했다.
컨셉을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으로 다루는 것 또한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 책은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를 들고 와서 멋있게 포장하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대신 아이디어가 어떻게 질문이 되고, 질문이 어떻게 구조가 되며, 구조가 어떻게 언어로 고정되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저자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직접 컨셉을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며 쌓아온 경험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저 사례들을 나열하기보다, 왜 그 컨셉이 작동했는지를 해체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책은 친절한 설명서다. 무엇보다도 그 과정이 ‘따라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감각이 아니라 구조를 배우는 느낌이 드니까, 읽는 사람의 손에도 도구가 쥐어진다.
마지막으로 강하게 인상 깊었던 점은, 컨셉을 혼자만의 만족으로 남겨두지 않는다는 태도다. 컨셉은 읽고 고개를 끄덕이기 위함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목표와 계속해서 대조되고 검증되어야 하는 도구다.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질문을 만드는 법, 인사이트를 포착하는 방식, 경쟁 관계를 재정의하는 시선, 그리고 결국 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하는 방법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낸다. 마치 커리큘럼이 잘 짜인 수업을 따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제목이 ‘수업’인 것에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 읽고 끝낼 게 아니라 실제로 해봐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함께 적어내려갔다.
책에서 '흔들림 없는 왜가 컨셉으로서 경영의 중심에 자리해야 한다'는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사실 브랜드보다 먼저 나 자신을 떠올렸다. 나만의 흔들림 없는 왜는 무엇일까. 나는 왜 마케팅을 하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이 질문을 충분히 오래 붙잡고 있었던 적은 없었다. 프로젝트 단위의 목표, 성과 지표, 일정과 마감 속에서 ‘왜’는 늘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컨셉이 기준이 되지 않으면, 모든 선택은 그때그때의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걸 이 책은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컨셉은 설명을 위한 문장이 아니라, 결정을 위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의 업을 다시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나는 어떤 연결을 해줄 수 있을까. 질문들이 계속 따라왔다.
나 역시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며 컨셉 하나로 일이 풀리기도 했고, 반대로 컨셉이 흐릿해 고생하기도 했다. 컨셉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절반만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 책은 그 반쪽짜리 이해를 정리해주며, 왜 어떤 시도는 반짝이고 끝났는지, 왜 어떤 기획은 오래 가지 못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그래서 『컨셉 수업』 은 막 시작한 사람들뿐 아니라, 오래 일해 온 사람에게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오래한 사람일수록 자신만의 습관이 생기고, 그 습관이 언젠가는 사고를 좁히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언젠가 문구점을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꿈을 떠올렸고,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이 책은 지금 당장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좋지만, 아직 비즈니스나 꿈의 형태가 갖춰지지 않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된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이 수단이라면, 그 너머의 목적은 무엇인지 계속 묻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이나 논의의 폭이 좁아진 듯한 느낌이 들 때 이건 수단인가,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다시 질문해보라는 문장은 지금의 나에게도 꼭 필요한 말처럼 느껴졌다. 결국 컨셉은 비즈니스만의 언어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만들며 살 것인가에 대한 언어이기도 하니까.
다 읽고 나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보다 그 아이디어를 끝까지 남길 수 있는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내 것을 나답게, 그리고 시장에서 통하는 언어로 풀어내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업가든, 기획자든, 마케터든, 디자이너든, 그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컨셉을 제대로 이해하고 써먹을 수 있게 된다면, 적어도 더 이상 반쪽짜리 무기로 싸우지는 않게 될 것이다.
안녕하세요! 마케터 닌닌입니다 :)
퍼포먼스 마케팅을 메인으로 B2B, B2C 마케팅을 경험했으며, 여전히 즐겁게 마케팅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AI를 활용한 콘텐츠 실험과 AI로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성과를 개선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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