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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raiano Jan 27. 2020

가토 요코 -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역사의 Why와 '역사서를 읽음'에 관하여

 역사서를 읽을때마다 드는 생각은, 왜 이런 사건들이 발생했었는지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서를 서술하는 방향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서술하는 방향과, 서술자가 사건의 발생과정과 이유를 임의로 작성하는 방향이다. ('있는 그대로'라 하지만, 취사 선택이라는 점에서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서술자의 의도는 명백히 다르다) 전자의 경우 사건의 발생과정을 독자가 재구성해야 한다. 이는 읽는 과정에서 꽤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고, 대체로 불완전하다. 비전공자의 입장에서 사건의 발생원인들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은, 중간 과정을 간과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마의 쇠퇴원인에 대하여 일반인들은 단순히 게르만 족의 침입, 그리스도교의 발흥으로 단정지으나, 이외에도 지중해로 인한 국경의 연장, 다키아 원정 이후 확장경제의 한계 등 주요한 원인들이 남아있고, 이러한 원인들의 원인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사실만을 서술하는 역사서에서 독자는 항상 방어적으로 글을 읽을 수 밖에 없고, 책을 읽은 이후에도 엄밀히 알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후자의 경우는 어떠한가? 역사서가 독자에게 사건의 발생과정과 원인들을 치밀하게 분석해주는 것이 전자의 해결이 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역사서의 독자가 언제 역사서를 '온전히' 읽었다고 느끼는지를 보아야 한다. '책을 온전히 읽음'의 개념은 보통 비판적 사고가 독자 스스로 가능한 경우를 일컫는다. 책에 사실, 주장, 원인 등 모든 내용이 읽혀진 후, 독자는 책의 주제의식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의견을 내게 된다. 스스로 책에 질문을 던질 수 있음의 여부가 '온전한 독서'를 결정 짓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이를 역사서의 독서에 대입하자. 사건의 발생원인과 과정을 서술하였다면, 그에 대해 독자는 수긍할 수도, 의문적일 수도 있다. 여기서 핵심은 '독자가 주체적으로 원인들을 취합하여 책에 주제 의식에 수긍하는지, 의문적인지의 여부'이다. 그런데 서술자가 독자에게 사건의 발생과정과 원인들을 직접 보여주는 경우, 독자가 '주체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가능성이 적어진다. 서술자가 짜놓은 역사서는 온갖 세계의 불확실성에 열린 세계관이 아닌, 닫힌 세계관이다. 독자는 여기서 또다른 원인의 가능성과 시사점을 찾을 수 없다.


 '역사서를 읽음'은 그래서 힘들다. 왜곡된 세계를 받아들일 위험성과, 혼자서 일을 그르칠 위험성 사이에서 독자는 표류하고, 대개 그 중 하나로 침잠한다. 이는 서술자의 친절성과 엄밀함과는 관계가 적다. 결국 서술자가 어떠한 구조와 요소를 짜놓아도, 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불완전하기 그지 없다.


 역사서에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들은 어떠한가? 이 또한 두 부류인듯 하다. 전자는 '역사서를 읽음'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책이다. 이들은 독자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의도하기 위해 작성되는 책이다. 서술자의 사건 선택과 배치, 원인의 나열이 치밀하게 한 방향을 특정하며, 치밀하기에 고전으로 남을 가치를 부여받은 책이다.  계몽주의 시대의 역사서, 예를 들어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가 있다. 기번은 작품을 통틀어 관통하는 그리스로의 회귀, 계몽주의 가치관을 미사여구 등의 방식으로 작품에 표현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여 이 부류의 책들은 역사서의 정의보다는 역사를 활용한 수필이나 논설에 가까울 것이다.


 나머지는 최대한 다양한 사실을 보여주고, 이 사실들이 특정할 수 있는 다양한 역학관계와 사건의 진행을 서술하여 독자가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게 유도하는 책이다. 이견이 있을 수도 있으나(나의 판단에선) 몸젠의 로마사가 이러한 부류가 아닌가 싶다. 이들은 얼핏 보면 사실의 나열이나 주제의식이 보이지 않는 책으로 비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가 서술자의 의도이다. 역사서는 목적을 일부러 특정하지 않는 한, 책이 읽음을 주도하지 않는다. 역사서는 타 장르보다 더 서술자의 의도대로 독자가 움직일 가능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역사서는 어떠한 책보다 더 독자를 위한 사상적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드디어 이 책으로 넘어가자. 단도직입적으로 이 책은 다양한 독자의 주도적 판단의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는다. 내용만 놓고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책이 나에게 주도적 판단의 가능성을 제공한 이유는, '읽음'의 바탕에 독자의 통념이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왜 제국주의 국가 중에서도 군부 중심적으로 정치를 하였고, 왜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킨 것인가? 기존의 세계사 지식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를 제압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제국주의를 채택하고, 기존의 제국주의 기득권 국가와 충돌하여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던 중 승산이 보여 미국을 기습하였다."가 전부이다.(나의 부족함일 수 있다) 그러나 왜 일본이 이들을 최선의 선택으로 생각하였는지는 항상 불완전하게 서술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발생원인과 과정을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다양하게 조망하는 것이 이 책이다.


 다음은 새로이 알게 된 일본의 메이지유신 후 대략적인 역사 서술이다. 미국과의 개전 원인을 밝히는게 목표이기에 이 또한 온전한 역사의 나열은 아니다.


 조선을 최우선으로 장악하나, 그 방식은 청의 헤게모니를 덜 자극하도록. - 청의 헤게모니가 이홍장을 중심으

로 근대화가 진행되어 강력하였음 - 갑신정변 실패 - 청의 헤게모니 내에서 움직이지 않고, 제국주의 열강의 방

식으로 재편 의지 - 조선에 병력을 증강하여 청일전쟁 - 승리 - 제국주의 헤게모니에 동화되기 시작 - 조선을 바

탕으로 만주 영향력 행사 시작 - 러시아와 충돌. 갈등 발생 - 아직 제국주의 나라와 전면전은 힘들다 판단 - 러시아의 만주 이권, 부동항에 대한 의지와 조선에의 욕구 - 독, 프의 러시아 지원, but 미, 영, 중의 일본 지원 - 열강 지원에 힘입어 기습 공격, 러일전쟁 승리 - but 전후 협상의 실패. 정계의 신뢰 감소, 인명피해로 인한 정치 참여 확대, 군부의 인기 급증 - 농민층을 최우선 징집 대상으로 설정한 군부의 대대적 홍보 및 농민층 확보, 정치세력화 - 정계의 군부 통제 실패, 만주사변 및 만주국 수립 - 1차대전, 독일로부터 산둥반도 점령, 베이징 진출 교두보 확보 - 중국의 반환 요구, 영일동맹으로 보호 - 만주, 조선으로는 제국주의적 경제 권역 형성이 불가함 판단, 대공황 등 - 대동아공영권, 미국 최종 전쟁론 등장 - 중일전쟁, 영국과 미국의 경계(홍콩 및 중국 남부, 필리핀 등 영역) 시작 - 중국의 거센 저항(화평 시 공산통일 위험성) - 본토, 대동아공영원, 제국주의 헤게모니의 유지, 전쟁 자원 확보 등을 위해선 미국 공격 필요함 판단


 미국을 침공하기로 정하였으나, 미국 본토의 침공 대신 하와이 거점 무력화 후 유리한 화평안 제시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은 지극히 아시아 영향권 확보에 주력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본은 그 당시의 각 집단들의 최선의 결정을 내려(물론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오판, 잘못된 과거 사례 사용, 자신의 전쟁 수행 능력에 대한 과신이 있었다) 전쟁까지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유능한 인재들과 근대의 사상이 자리하여도 파괴적인 결과로 이행할 수 있음은, 얼핏 보면 제 2의 벨 에포크로 보이는 현대에도 다시 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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