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히치하이커가 영국을 배회하고 있다
어느 날 당신이 한 친구를 만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영국을 다녀왔다. 당신에게 줄 선물을 사 왔단다. 당신을 생각해서 영국 첫 행선지에서부터 구매해서 쭉 들고 다녔다고. 해맑게 웃으면서 선물을 건네는 친구.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는 열쇠고리처럼 보이는 것이 반짝이고 있다. 들어서 자세히 살펴본다. 머리가 거대한 남자의 동상이 고리에 매달려 있다. 누구야? 유명한 사람이야? 당신이 묻는다. 그거 맑스야. 칼 마르크스. 중학교 사회 시간에 졸지 않았던 과거의 자신을 칭찬하며 알은체를 한다. 그 양반이 영국인이었나? 러시아도 아니고 런던에 이 사람 동상이 있어? 아니. 히죽히죽 웃는 친구. 그거 동상 아니야. 묘비야.
이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은가? 혹시 선물을 친구의 얼굴에 집어던진다거나, 그 친구를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는 반응이라면 부디 친절히 댓글로 내게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아싸인 인생, 더 이상의 친구는 잃을 수 없다.
혹자는 선물의 내용보다는
첫 영국행에서 첫 행선지가 묘지라는 사실에 더 놀랄 수도 있겠다.
이제 노동자도 아니라 단결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런던의 북쪽, Archway 역에서 내려 Highgate Hill 방향의 입구로 나가면 경사진 길이 보이는데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아주 고풍스러운 고딕풍의 대문이 보인다. 내 눈에는 거의 요새의 성문처럼 보였는데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수면제들을 제조하신 칼 맑스(Karl Marx)가 묻힌 높은 문 묘지, Highgate Cemetery다. 높은 문 묘지라고 번역하고 보니 거의 톨킨의 세계에서나 나올 것 같은 이름 아닌가? 갑분 반지의 제왕. 하지만 이곳을 혼자 돌아다니려면 모르도르로 홀로 떠나는 프로도에 준하는 용기가 필요하긴 하다. 이 묘지에는 뱀파이어나, 구울, 벤시 등이 종종 나타난다는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높은 문 흡혈귀, 울부짖는 벤시...
옛 직업병이 도지려는 것 같다.
묘지는 크게 동쪽 묘지와 서쪽 묘지로 나뉘는데, 서쪽 묘지가 훨씬 크고 오래되었다. 뱀파이어나 유령들이 나타난다는 곳은 바로 서쪽 묘지다. 나는 서쪽 묘지는 가지 않았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애초에 내가 이곳에 방문한 목적이 동쪽 묘지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먼저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정말이다. 게다가 서쪽 묘지는 입장료가 있고, 가이드 투어만 가능하단다. 뱀파이어가 나타날 때를 대비해서 누군가 마늘을 들고 다닐 사람이 필요한가 보다. 한국인은 자체 면역인 걸 몰라주네.
아무튼 나는 저 멋진 고딕 대문을 뒤로하고 동쪽 묘지로 향했다. 동쪽 묘지 입구에는 작은 기념품 샵이 있는데 그곳에서 지도를 구할 수 있다. 지도에는 꽤 많은 인사들의 무덤 위치와 뭐 하던 작자였는지에 대한 내용이 간략히 적혀있다. 듣기로는 이 하이게이트라는 동네 자체가 전통적으로 꽤 부촌이어서 돈 깨나 있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묘지의 대부분을 채우고 있다는데, 그걸 증명하듯 지도에는 무슨무슨 학자, 무슨무슨 작가, 무슨무슨 예술가 등등의 이름과 타이틀이 가득했다. 어느 구석으로 봐도 내가 묻힐 곳은 아니구나 싶었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무덤들에는 식별 번호가 부여되어 있었다. 직감적으로 42번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내 그 지도를 기획한 사람에게 큰 실망감을 느껴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의 무덤 번호가 42번이 아니라니. 센스가 없구먼, 센스가, 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누군지는 곧 나온다. 그 사람이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이었다. 거대한 두상이 달린 무덤 앞에서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를 외치기 위함도 아니고, 반 헬싱의 뒤를 따르기 위함도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한 작가의 끝을 보러 왔다. 나는 곧 그의 이름을 지도에서 찾아냈고 곧장 그가 안치되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칼 맑스의 대가리는 멀리서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그의 앞에 섰다. 크기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정치, 철학, 사상적으로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임은 틀림이 없지만, 그걸 이런 동네 무덤에서까지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이 무덤에는 칼 맑스 뿐만아니라 그의 가족이 함께 묻혀있기 때문에 크기가 클 수밖에 없긴 하지만, 저 거대한 대가리를 보라! 그가 이 거대한 대가리처럼 자만심에 찬 사람(big-headed)이 아니었길 바랄 뿐이다. 저 큰 대가리를 묘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어떤 대가리에서 나온 걸까? 맑스의 생각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묘비에는 두 개의 인용구가 새겨져 있다. 하나는 그 유명한 'Workers of all lands unite'. 다른 하나는 이곳에 와서 처음 본 것인데,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문구였다.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철학자들은 이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했을 뿐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누군가의 뼈를 때리고 심금을 울리다 못해 끊어버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뭐 저 날카로움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긴 했지만, 좋은 문장임에는 틀림이 없다.
괜히 꾸중들은 기분으로 맑스의 무덤을 뒤로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러 42의 사나이의 무덤으로 향했다. 각양각색으로 생긴 수많은 무덤들을 지나, 드디어 그의 무덤 앞에 섰다. 처음으로 그의 무덤 앞에 선 소감은, 초라하다는 것이었다. 칼 맑스의 무덤을 보고 와서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곧 그의 단출하고 검소한 묘비 앞에 있는 귀여운 제스처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짓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작은 갈색 화분에 수많은 펜들이 꽂혀 있는 것이었다. 그곳에 가서도 좋아하는 글을 마음껏 쓰라는, 혹은 써달라는 팬심이었을까. 죽어서도 일해라는 의미로 달리 보면 잔인한 처사인 것일 수도 있지만, 색상이 다양한 펜심이 꽂혀있는 것처럼 팬심도 다양할 수 있겠다. 다만, 펜이 딱 42개가 꽂혀있었다면 더 위트가 있었을 것 같다. 한 서른 개 정도 돼 보이더라.
그러고 보니 아직도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이 무덤의 주인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쓴 작가 더글라스 애덤스의 무덤이다. SF 장르의 팬이기도, 그의 작품의 팬이기도 한 사람으로서, 또 형편없지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도 런던에 오면 그의 무덤에 꼭 방문해보고 싶었다. 방문 후의 소감은 별거 없었다. 허무했다면 허무했달까. 맑스와 애덤스의 무덤 말고도 여기저기 다니면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살아 숨 쉬던 다양한 사람들의 무덤들을 봤다. 과거를 통해 배우고 현재에 감사하며 그 교훈과 감사함으로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위트 있는 묘비명을 보고 피식 웃기도 하고, 가족이나 친구들 심지어 키우던 고양이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는 부분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도 느꼈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고 온화해서 망자들 사이를 걷고 또 벤치에 앉아 구경하고 공상에 빠지고 하는 시간들이 즐거웠다. 한국의 망자들 사이에서는 하기 힘든 경험 같다. 한국의 봉분이나 납골당은 재미가 없다. 물론 망자를 기리는 자리가, 혹은 남겨진 사람들의 마음을 기리는 자리가 재미를 위한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 사람들의 위트가 더 좋다. 인생을 항상 너무 심각하게만 받아들이지 않는 쿨함, 여유가 좋다. 장례 문화에서까지 사대주의를 보이다니 나는 뼛속까지 양빠인가 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결정을 했다. 원래 서튼 코트니에 있는 조지 오웰의 무덤도 보러 갈 계획이었는데 가지 않기로 했다. 역시 좋아하는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으로만 만나는 게 베스트인 것 같다. 희극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 되기 때문이다. 참, 계속 언급했던 숫자 42가 뭐냐는 의문엔 이 영상으로 글을 대신하겠다. 한국어 자막이 있으니 자막을 켜고 보시라. 그리고 책을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다.
영국인 친구 중에 이미 자신의 장례식에 대한 계획을 짜둔 친구가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모신 곳 바로 옆으로 자신이 묻힐 곳도 준비를 해뒀단다. 어머니의 묏자리를 구할 때 원 플러스 원(BOGO)으로 싸게 구했다면서 친구는 익살을 떨었다. 그 익살만큼 그의 장례식 계획도, 묘비에 새길 거라는 문구도 너무도 익살스러워서 나는 그걸 모두 그의 뜻에 맞게 준비해야만 하는 친구의 여동생에게 모종의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God bless her.
이 날 묘지에서 경험한 것들은 묘지를 떠날 때 즈음에 반숙 달걀 프라이가 든 비빔밥처럼 하나의 질문으로 버무려졌다. 나는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혹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온갖 고통들이 우리를 진지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 작게나마, 위트 있는 무언가를 남길 계획이라면 더더욱.
당신은 죽으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