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스를 꿈꾸며 2

세상의 모든 모지스를 위하여

by 해인

세월은 그의 편이 되어준 적이 없었습니다. 가끔 찻그릇과 생활 그릇을 찾던 고객들마저 커피와 새로운 트렌드에 밀려 발길이 끊기고 말았지요. 그는 궁리에 궁리를 더해도 달리 도리가 없어 하릴없이 낙서만 해댔지요.

어느 날, 종이에 낙서를 하다가 문득 제일 싼 몇 필의 광목천을 떠다 먹으로 앙칠('낙서'의 경상도 사투리)을 하고 하다가 그나마 가격이 싼 아크릴로 이어졌습니다. 캔버스는 살 돈이 없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엎치락뒤치락할 사이도 없음을 알고 잡념에 시달리고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라는 듯 그도 다산처럼 스스로에게 다짐에 다짐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간혹 찾아오는 글벗이나 말동무가 있었으나 제 발로 찾아가는 일은 없었으며 스스로 문을 닫아걸고 오직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하였습니다.


나이가 들면 대체로 시간과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나이가 드니 더 바쁘고 여유가 없으니 잘 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많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선생님 댁을 한참동안 방문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찾아뵙고 보니 생뚱맞은 듯 그런 일들을 하고 계셨던 거죠.

그의 글이 그랬고 시가 그랬고 그릇이 그랬던 것처럼 그림도 그만의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미대를 나온 사람들의 정형화된 공식 같은 것이 없고 그의 낙서 그림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그것이었습니다. 느낌이 너무 좋으니까 이대로 계속 해보길 권유했습니다.

그야말로 불교에서 말하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하는 그 순간이 곧 바른 깨달음이다'라는 말처럼 그의 그림은

때가 묻지 않았고 기교 같은 것이 없었으나 삶의 원형에 가까운 뭔가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거장이라 불리는 작가들의 작품도 자연에 가깝고자 했으며 순수한 동심의 시선을 갖는 걸 지향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

몇 계절이 지났는지 모르던 어느 날 다시 방문을 하였습니다.

"어럽쇼!"

그의 그림은 기존의 어떤 그림들을 쫓아가고 있었습니다.

자기만의 색깔은 사라지고 되지도 않은 누드와 정물을 닮으려고도 애쓰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술 평론가도 아니고 그림을 잘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제 색깔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습니다. 물론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들조차 자기만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도 충분히 그럴 수 있었습니다. 아니 그럴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 길로도 가보고 저 길로도 가보고 많이 헤매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는 얼마나 오랫동안 헤매었던 것일까요?



가을의 계절이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모르는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그림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고요. 낙엽이 꽃처럼 분분히 날리는 바람 좋은 가을날이 상상되었습니다. 상기되어 말하는 그는 첫 그림 개인전이라는 과제를 두고 설렘을 넘어 떨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일주일간의 대관료가 사백만 원이 넘는 전시회를 취소하게 되면 몇 배를 더 배상을 해야 한다면서요.


예전에 도자기 전시실 겸 작업실로 쓰던 30평가량 남짓한 공간에 천장 가까이 가득 가득 쌓아 올린 캔버스가 그동안의 노고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인스타를 통해 '시'를 간간이 올리는데, "글이 너무 좋네, 어쩌네" 하면서 찾아오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면서 특유의 농담을 하는데 우리는 파안대소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물감과 캔버스를 사주는 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작품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전에도 그랬지만 요즘은 더 돈이 세계를 지배하는 세상에서 얼마나 비껴 난 삶을 살았는지를 실감하는 듯했습니다. 모든 걸 인터넷으로 사고파는 이 불경기의 세상에서 "아직도 남대문시장에서 속옷장사를 하는 마누라를 생각하면, 참 미안해진다."라고 하면서 "나는 이걸로 꼭 성공해야 한다."는 다짐까지 우리 앞에서 했습니다. 그런 다짐을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대단한 각오입니까.


식체로 5년을 넘게 고생하는 동안 너무 아파서 통증을 잊고자 전투하듯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은 생각나는 대로 느낌대로 10여 년 가까이 그렇게 그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좋은 인연이 찾아왔다고 합니다. 지인을 통해 그에게 관심을 갖는 이가 생겼습니다.

프랑스의 유명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그림과 평론을 하는 분인데, 일 년에 두어 번 내려오면 그 선생은 그림 이야기는 한마디도 않고 술만 마시다 갔다고 합니다. 어쩌다 한 번 슬쩍 흘리는 그 사람의 말 한마디를 붙들고 되새김질을 해가며 캔버스에 담고자 밤낮으로 고뇌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 선생이 말하였습니다.

"형님, 전시회 합시다."

그러면서 미국의 모지스 할머니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하며 그동안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비록 몸은 늙고 주름이 늘었지만 열정 가득한 눈은 꿈꾸는 소년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매 순간 열려 있고자 하는 그의 사고에 감탄합니다.

그와의 인연은 30년이 넘었습니다. 그의 삶은 쉬는 것이 하는 것이고 하는 것이 쉬는 것이었습니다.

다산의"게으름은 세상을 반만 사는 것"이라는 말이 와닿는 날이었습니다.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모지스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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