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의 삶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 달 뒤에 서울 인사동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친구와 나는 전화를 드리고 방문을 하였습니다. 그분처럼 낡은 하늘색 철 대문이 채 열리기도 전에 개 짖는 소리와 함께 주인보다 먼저 튀어나온 것은 검은색처럼 보이는 짙은 남색과 흰색 무늬의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였습니다.
대문 안에 첫 발을 들이니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졸졸 따라다녀서 빨리 거실에 뛰어 들어가니 유리창 밖에서 들여달라는 듯 꼬리를 흔들고 애원하듯 쳐다봅니다. 주인은 문을 열고 들여서 '앉아', '인사해' 등을 몇 번 시키고 먹이를 주고 내보냈습니다. 5-6년 만에 만난 그는 살이 많이 빠져 야위었으나 헝클어진 머리를 묶고 있는 얼굴에 번진 미소는 그대로였습니다. 커피를 내려주긴 했지만 마시지는 않는 그는 그동안 소장이 적체되어 고생을 많이 했고 여러 병원을 전전해도 소용이 없어 혼자서 동의보감, 약초 공부로 독학하며 약을 지어먹고 지금은 많이 회복된 상태라고 하였습니다.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잠을 이룰 수 없을 때는 그림만큼 몰입하기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선 하나 그을 수 없을 때도 많았으며 머릿속이 뒤죽박죽해도 주야장천 그렸다고 합니다. 그의 작업실에는 혼자서 그려낸 작품들이 산더미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었습니다. 전시장에 걸 작품들은 미리 포장이 되어 보지 못했지만 전시도록 속의 그림은 전문가의 것 이상이었습니다. 여전히 음악은 흐르는데 라디오의 FM이 아니라 스마트 TV의 유튜브채널에서 나오는 블루스였지요.
왜 미국의 국민화가 모지스일까요?
그도 얼마 전에야 모지스 할머니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자기계발하는 많은 모지스 할머니들이 있는 것처럼 그도 늦게 그림을 시작하였으며 모지스 같은 자신만의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모지스 할머니처럼 되려면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틀림없이 꿈을 이룰 거라고
우리는 아낌없는 칭찬을 드렸지요.
그의 직업은 작가입니다. 무슨 작가요? 그는 사십여 년 전에 등단한 시인입니다.
젊은 시절 이름난 시인들과 인생과 술로 인사동 골목과 혜화동 구석구석을 훑고 다니던 시인입니다.
그는 허우대 좋고 시인이란 이름으로 안동 명문가 자녀인 신사임당 같은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뛰어난 인물의 아들 쌍둥이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시인은 수입이 거의 없었고 결혼 후 자신과 가족들의 생계는 오롯이 부인의 몫이 되었습니다.
서울과 본가가 있는 남쪽 소도시 시골로 오가던 그는 고향에 돌아올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남은 102세의 할머니를 모시기 위해 장손인 그는 부인과 아이들을 서울에 남겨둔 채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의 고향 집에는 늘 멀고 가까운 데서 지인들과 글벗들이 오고 가며 떠들썩했습니다. 102세의 할머니는 혹여 전화 속 여자 목소리라도 듣게 되면 "저년 목소리에 화냥끼 있다." 라며 손자를 단속하였다고 합니다. 손자의 수발을 받으시던 할머니는 3년을 더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막냇동생과 동갑이었지만 오히려 그와 나이를 초월한 막역한 사이로 지냈습니다. 그때의 우리들은 잘 몰랐지만 세상의 불의와 공평하지 않는 세상을 안주삼아 술 한잔을 하던 한 때의 '젊은 그들'이었죠.
그는 평생을 백수로 지내며 평생을 공부하고 또 하였습니다. 그의 인생은 온통 독학이었습니다.
공부도
글도
시도
글씨도
그릇도
그림도
모든 걸 스승 없이 혼자 용쓰며 해냈습니다.
자존심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강해서 누구한테도 묻지 않았습니다.
요즘처럼 컴퓨터나 정보도 없이 오직 책으로 생각으로 어깨너머로 끙끙대며, 눈치코치로 좌충우돌하며 애를 쓰며 살았습니다.
왜 선생한테 배우지 않았냐고요?
말해 뭐 하겠습니까?
가정경제도 책임지지 못하는 그가 차마 부인에게 공부한다고 손을 벌릴 수도 없었으니까요.
그가 변변한 양복 한번 입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단정하게 보이는 정장차림을 그닥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는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블레이즈에 청바지를 입는 또 무얼 입어도 예술가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건강을 위해 헬스클럽을 꼭 가기. 누군가가 데려다준 온 시베리안 허스키의 개밥그릇이 뒹구는 시골집에서 개와 뒹구는 일과 글벗들이 모여 음악 듣고 술 마시는 일이 다였지요.
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어요.
혼자서 시 쓰고
혼자서 그릇 빚고
유약 만들고
빚은 그릇 굽느라 밤새 장작불을 땠어요.
온 밤을 익히고 식힌 가마에서 설렘으로 꺼낸 그릇은 그의 인생을 닮았습니다.
그의 성향은 누구처럼이 아니라 그 자신만의 것을 추구하였지만 간절함이 더할수록
결과는 무색하기도 하였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불의 조화 속에서 원하는 그릇이 탄생하는 기쁨도 쌓여갔습니다.
두 번째 도공시인의 시집 출판과 찻그릇 전시회를 서울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열었습니다.
지인들이 가서 맘껏 축하를 하고 밤새도록 인사동 골목 구석구석과, 혜화동 여기저기를 돌고 나니 아침 해가 뜨고 있었습니다.
2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