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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엔 왜 이렇게 예쁜 ‘그녀들’이 많을까?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그들의 삶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by 닐바나

태국을 여행해 본 분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런 에피소드를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예쁜 여성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트랜스젠더였다는 이야기.

우리에게 태국은 ‘성전환 수술을 잘하는 나라’, ‘트랜스젠더가 많은 나라’로 익숙하죠.


그런데 실제로 태국 현지에서 “트랜스젠더”라는 표현을 쓰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지에서는 “레이디보이(Ladyboy)”라는 표현이 더 일반적이며, 오히려 공식적인 느낌으로 통용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태국을 여러 번 다니다 보니 거리나 공연장 등에서 레이디보이를 자주 접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태국에는 레이디보이가 이렇게 많을까?”


이 글은 그 질문에서 시작된, 제가 주워들은 이야기와 조사한 다양한 설(說)들을 정리해 본 것입니다.


태국어 말투가 레이디보이를 부른다고?


첫 번째는 태국어의 언어적 특성 때문에 레이디보이가 많아졌다는 설입니다.



태국어는 말끝에 성별을 표시하는 종결어미를 붙이는 독특한 언어입니다. 남성은 “ครับ(크랍)”, 여성은 “ค่ะ(카)”를 사용하죠. 이는 단순한 존댓말 표현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성 정체성을 반복해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태국에서는 어려서부터 이런 표현을 자연스럽게 익히기 때문에, 말투가 곧 성별 인식으로 이어지기 쉬운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또한 태국어는 성조가 있는 언어로, 억양이 부드럽고 노래하듯 들리는 특징이 있어 외국인들이 듣기에 여성스럽다는 인상을 받기도 합니다. 이런 언어 환경 속에서는 여성적인 말투를 쓰는 남성이 사회적으로도 익숙하게 받아들여지고, 그만큼 성별 표현의 유연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물론 이 설이 결정적인 원인이라 보긴 어렵지만, 정체성 형성과 표현에 있어 언어가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꽤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집니다.


전쟁을 회피하기 위한 성의 선택?


두 번째는 전쟁을 피하기 위한 부모의 선택이 세대를 거쳐 문화가 되었다는 설입니다.

태국은 과거 아유타야 왕조 시절부터 미얀마(당시 버마), 캄보디아, 베트남 등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러왔습니다. 특히 16~18세기 동안에는 꼰바웅 왕조와의 전쟁으로 수많은 남성들이 전장에 나가 목숨을 잃었죠. 이처럼 아들을 전쟁터로 내보내야 했던 부모들의 고통은 오랜 세월에 걸쳐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일부 부모들은 ‘아들을 여성처럼 키우면 징집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 실제로 여성스러운 외모나 말투를 지닌 아들을 통해 전쟁의 위험에서 벗어나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는 의도적인 젠더 역할의 변화가 시간이 지나며 정체성으로 굳어졌고, 점차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향으로 확산되었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이 설에는 명확한 사료적 근거가 부족하고, 역사적 상상력에 기반한 구전 설화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태국 사회의 포용적인 성문화와 맞물려, 이런 이야기가 문화적 기원에 대한 대중적 해석으로 자리 잡은 것은 분명합니다. 전쟁의 기억이 어떻게 젠더 문화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설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제가 여행 중에,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비공식적인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학계나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유력한 설명은 무엇일까요?

아래는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보다 신뢰도 있는 설들입니다.


관용, 신앙, 생존 — 태국을 이해하는 코드들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가장 유력한 설명은 사회문화적 요인, 불교적 세계관, 그리고 경제 구조와 직업 선택의 현실입니다.

첫째, 태국 사회의 상대적으로 높은 성소수자 수용도는 중요한 배경입니다. 태국은 오랜 시간 동안 성 정체성과 성별 표현에 있어 비교적 관용적인 문화를 유지해 왔습니다. 레이디보이는 TV 쇼, 무대 공연, 미용 업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는 곧 사회 전반에 걸친 가시성 증가와 정체성의 확산으로 이어집니다. 성소수자를 제도적으로 완전히 보호하지는 않지만, 일상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둘째, 태국의 불교적 세계관도 젠더 다양성의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상좌부 불교에서는 전생, 업보, 윤회와 같은 개념이 중요하게 여겨지는데, 이로 인해 트랜스젠더에 대한 판단보다는 “그 사람은 전생의 영향으로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이라는 포용적 인식이 뿌리 깊게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성소수자에 대한 비난보다는 이해와 수용을 유도하는 문화적 배경이 됩니다.


셋째, 경제적 현실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태국은 관광산업 의존도가 높은 나라이고, 특히 방콕, 파타야, 푸껫 같은 지역에서는 레이디보이 쇼와 관련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해 있습니다. 외모와 퍼포먼스를 활용할 수 있는 직업이 많고, 이로 인해 성별 전환을 통해 더 나은 기회를 찾는 사람들도 생겨납니다. 실제로 저소득층 출신의 일부 청년들이 생계나 사회적 상승을 위해 성전환을 선택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요인은 독립적으로 작용하기보다는 서로 맞물리며, 태국이라는 특유의 문화적, 종교적, 경제적 구조 안에서 레이디보이라는 젠더 표현이 사회 속에서 자리 잡을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한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디 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태국에 레이디보이가 많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로 설명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는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트랜스젠더 인구가 많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사회 분위기 덕분에 더 많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가시성의 착시’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명확한 해답은 없지만,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만큼, 우리가 그 문화를 만날 때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태국을 여행하게 된다면, 거리에서 마주치는 레이디보이 뒤에 숨겨진 이야기와 배경을 함께 떠올려 본다면, 그 문화를 더욱 존중하며 즐길 수 있는 시선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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