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열심히 해 봐야죠.”
*나: “아니, 그럴까 봐 이야기하는 거야.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마라. 대신 상황을 냉철히 파악하고 다음 행동을 결정해라.”
작년까지 꽤 큰 지점을 맡았던 후배가 이번 인사로 거의 쓰러질 듯한 지점에 부임했다. 직장인의 운명은 인사발령이라는 종이 한 장에 이리저리 날린다지만 이건 좀 심했다 싶다. 지점을 다시 살려 놓으라는 미션을 받았다고는 해도 회사의 의사결정 과정을 조금 아는 나로서는 물 밑에 얼마나 많은 밀당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세상 일은 나만 착하고 잘 한다고 좋은 결과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결과가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내성적인 이 친구는 끙끙 혼자서 속앓이를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후배: 잘 만들어서 인정받도록 해야죠.
*나 “아니,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마라. 그게 앞으로 널 얼마나 힘들게 할지 모른다. 인정은 너 스스로 하는 것으로 족하다.”
회사에는 인정을 하는 자와 인정을 받으려는 자가 있다. 대개 인정을 하는 자는 조직 내 권력을 쥔 자이다. 그런데 권력의 속성은 내가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있을 때 생긴다. 회사 내 인정이라는 권력을 쥔 자는 인사고과나 승진이라는 달콤한 먹이를 쥐고 있다. 그런데 이 권력자도 힘을 못 쓰는 경우가 생기는데 ’난 당신의 인정이 필요 없다’는 직원을 만났을 때이다. 승진도 필요 없고 고과 성적도 필요 없다. 나는 다만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뿐이다. 이런 직원이 상사에게는 골치 아픈 직원이다. 당최 핸들링 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조직을 떠나게 만든다. 하지만 능력은 있는데 인정을 구하지 않는 직원이라면 어떨까? 이럴 때 상사는 견제를 한다. 말하자면 이순신 같은 껄끄러운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두는 셈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에 대해 조금 뒤틀린 생각이 있는데 왜적은 물리쳤을망정 나라는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군이 진정 나라를 구할 마음이었다면 노량해전에서 적당히 왜적의 퇴로를 내어주고 기어이 살아남아 선조와 대신들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이순신보다는 이성계나 이방원의 결단력에 더 끌린다. 이미 정해진 곳에서 게임의 승산이 없으면 판을 뒤짚거나 기존의 룰을 바꾸어야 한다. 물론 어렵다. 하지만 사소한 물건을 훔치면 감옥에 가지만 나라를 훔치면 영웅이 된다. 그러려면 먼저 판이 돌아가는 형세를 읽어야 한다. 고려 시대 만적이 그랬듯이 왕후장상의 씨앗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문제는 판을 엎고 나서 다음이 없는 것이다. 이건 역량 문제이다. 과연 판을 엎고 나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그러기를 원하는가?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애초에 그런 시도는 말아야 한다. 조선 건국 당시에는 정도전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새로운 국가의 시스템을 만든 사람이다. 그리고 호족들에 시달리던 백성들도 그러기를 원했다는 게 판을 엎을 갖춰진 조건이었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을 경계한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를 정해야 한다. 그래야 열심이라는 것이 의미 있는 행동이 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그러면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몸을 움직여 이것저것 시도해 봐야 한다. 그러는 중에 좀 맞다 싶으면 그것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