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용범 Jan 24. 2024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인생에는 목표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할 때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어제 동아리 카페의 글을 읽다 보니 울산에서 논술학원을 운영하는 정미 선생을 언급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언제나 넘치는 에너지로 주변을 밝히는 이 분을 뵈면 그냥 팬심이 절로 일어난다. 아이를 챙기는 엄마이기도 하면서 학원 운영으로도 벅찰 텐데 대학원 학업을 마쳤고, 선인세 받는 책의 저자로, 지역의 문화센터 강사로도 활동하는 그녀를 보면 대체 이 분의 한계치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해지기도 하다. 동아리 카페 개설이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글을 보면 하루의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는 분이란 걸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주변에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분인 것 같다.


반면 요즘 나를 보면 별다른 목표가 없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건 아니다. 이게 뭔 소리냐고?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건 목표가 있는 것 아니냐고 할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비슷한 것 같지만 좀 다르다. ‘소중한 사람들과 좋은 시간 보내기’를 목표라고 하기엔 이상하지만 분명하고 싶은 것이다. ‘영적 성장과 마음의 평화’도 그래서 대체 무엇을 하라는 건지 애매하다. 그렇다고 실체가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그나마 ‘지속적이고 안정된 소득 흐름’은 매월 얼마의 수입이라고 수치화할 수는 있으니 목표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것도 좀 다른 점은 순위에서 제일 아래쪽에 있는데 나머지는 건강이나 마음의 평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배움과 성장 등이 앞을 채우고 있다. 두 가치가 경합하면 우선순위를 고려하겠다는 것인데 이를테면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소득의 안정을 꾀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이건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나의 변화이다. 나 역시 누구보다도 목표 지향적이었고 수치화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하던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일을 잘하는 기준을 ‘추상화의 대상을 계량화 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고까지 할 정도였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여러 상황들에 까이고 꺾이는 가운데 ‘어, 이건 뭐지?’라는 순간들이 있었고, 그때마다 나의 날카로운 모서리는 조금씩 무뎌지고 부드럽게 변해온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하면 되지 못할 게 뭐야’라는 자기 신뢰감이나 유능감은 지니고 있지만 체력도 달리고 몇 시간 집중하면 머리가 핑 도는 것을 느낀다. 마치 신이 나에게 ‘그만하면 됐다’라는 메시지를 주시는 것 같다. 상황이 그렇다면 수용해야지. 이제 일을 진행하는 단 하나의 원칙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 하자”이다.


목표 지향적인 삶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삶 같다. 목적지를 향해 몰입도 높게 가속페달을 밟는 느낌이다. 반면 요즘 나의 생활은 국도변을 천천히 달리는 것 같다. 분명 나에게도 목적지는 있지만 그것보다는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경치 좋은 곳이 있으면 멈춰 서서 구경도 하고 피로하면 잠시 눈도 붙인다. 그냥 드리이브 하며 즐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생활이 참 좋다. 적당히 할 것도 있지만 시간에 쫓기지는 않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소중한 사람들을 챙기며 지내는 이 평온한 시간들이 감사할 뿐이다. 한때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말을 패배자들의 자기변명으로 간주했던 나였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열심히 하는 것을 경계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