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하기 1은? ”이라고 물으면..
우리는 보통 2라고 답한다. 그러면 1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이게 만만치 않은 문제이다.
여기 물 1리터가 있다. 물 1리터에 1리터를 더하면 2리터라고 하겠지만 물 1리터(L)를 정의할 때의 조건은 4°C에서 1 기압(1 atm) 일 때의 순수한 물의 부피를 기준으로 한다. 이 조건에서 물의 밀도는 1.000 kg/L이므로, 1L의 물은 정확히 1kg 이 된다. 하지만 다른 온도에서는 물의 밀도가 변하므로, 1L의 물이 1kg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라면을 끓이는 100°C(끓는점)에서는 밀도가 약 0.958 kg/L로 감소하기에 물 1리터는 0.958Kg가 된다. 이처럼 자명해 보이는 것도 조건들에 따라 우리가 믿는 것과 다른 모습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사사건건 따져 어찌 사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럼 이건 어떨까? 어제 친구가 돈 100만 원을 빌려달라기에 거절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나니 그래도 알고 지낸 지가 얼만데 그 정도는 해줘야겠다는 마음에 친구에게 연락해 빌려주겠노라고 했다 치자. 그럼 여기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마음이 바뀌어서 그렇지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고? 그럼 당신이 같다고 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자고 일어난 나와 어제 잠들기 전 나는 같으니 같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럼 시간을 좀 더 길게 늘려 10년 전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같은 사람인가? 몸도 마음도 생각도 달라져 있는데 무엇을 근거로 같다고 하는가? 단지 나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으로 나는 같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럼 아주 근원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당연히 같아 보이지만 단 한 번도 같았던 적이 없다. 나도 그렇지만 나를 둘러싼 가족이나 친구들, 주변 환경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새로운 것이었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지 우리가 같다는 착각을 수용하며 그런 맥락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다르고,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도 다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재미나다. 그러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딱히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 고 할 것이다.
사람들은 바쁘다,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압축 성장을 한 대한민국이라 빨리빨리의 문화도 공동체의 지배적인 정서이다. 매일 발등의 불만 끄지 말고 가끔은 ‘나는 누구?’, ‘나는 어디서 왔다 어디로 가는 거지?’ 같은 근원적인 질문을 탐색해 보면 어떨까 한다. 이런 질문들을 쓸데없는 질문이라고 치부하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정말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지도 모른다. ‘지난 세월 참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죽을 때가 되었네. 대체 내 인생은 무엇을 위해서 그리 열심히 달려왔을까?’ … 꼴깍~ 만일 당신이 현직에서 물러난 60대라면 철학자가 되기에 좋은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