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ke Kim Jul 05. 2015

거인 연대기 2

거인과 함께 싸우다 - 마징가 Z

1972년 일본에는 전설의 슈퍼 로봇이 등장한다.
그 이름. 무쇠같이 단단한 '마징가 Z(제트) マジンガ-Z'

마징가 월드의 3형제 - 마징가Z,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져

원작자인 '나가이 고(永井豪)'는 아톰을 만든 '데츠카 오사무'와 함께 일본 만화계의 신으로 손꼽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4대 만화신을 꼽자면 나가이 고의 스승이자 1세대 만화가중 사이보그 009, 가면라이더의 아버지 이시노모리 쇼타로를 포함시켜야 하고 그 이후부터 최근까지 중 한 명을 뽑자면 여기에 드래곤볼의 아버지 도리야마 아키라가 포함된다). 데츠카 오사무가 아톰으로 일본 만화인들에게 꿈을 심어 주었다면, 나가이 고는 후배 만화가들에게 극도의 폭력성과 개방적인 성적(에로틱) 표현의 경계를 허물어줬다. 마왕(魔王)급 창작자랄까? ㅎㅎ

젊은 시절 나가이 고

마징가의 내용은 이렇다.
마징가제트는 초합금 Z로 설계된 로봇이다. 초합금 Z란 일본의 후지산에서만 발견되는 미지의 광석으로 경도는 엄청나다고 한다. 이 철의 거인은 가부토 코우지의 할아버지인 가부토 주우죠가 Dr. Hell이라는 박사로부터 평화를 지키기 위해 비밀리에 설계했다. 마징가제트는 Dr. Hell이 바도스섬에서 발견한 기계수들과 싸우고 있다. 마징가제트는 약 20m의 크기에 여러 가지 살상병기를 소유하고 있는 로봇이다. 마징가제트는 매번 Dr. Hell이 보낸 아수라 남작, 브로켄 백작, 피그만 자작, 그리고 기계수들과 싸움으로써 세계평화를 지킨다.

나가이 고가 창조한 로봇들. 마징가, 강철지그, 게타로보, 그렌다이저, 그로이저X, 대공마룡 가이킹 등


재패니메이션이 아톰과 철인 28호를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스타트를 끊었으나 해외에서의 반응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이미 총천연색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따라잡기에는 퀄리티가 받쳐주지 못하는 힘든 상황이었고, 미국 만화에서 보여주는 서양의 감성을 따라잡기에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때 홀연히 등장한 만화영화가 '마징가 제트'였다. 마징가 제트는 이후에 많은 로봇물에 영향을 주었고 로봇물뿐만이 아닌 드래곤볼로 대표되는 능력자배틀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전에도 로봇물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징가는 기존의 로봇물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그 몇 가지를 예로 들자면...

1. 제트 파일더를 이용한 합체 시스템.
2. 조종사와 같이 성장하는 로봇능력.
3. 선악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점.
4. 최초의 시리즈 로봇물.
5. 여성형 로봇의 등장.

위에 열거한 것 보다 사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는 로봇이지만 가장 주요한 의미에서 위의 5가지는 동시대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이후에 애니메이션에도 많은 부분 모티브가 되었다는 점이다.

합체 시스템이 노골적으로 오마주된 퍼시픽 림의 집시 데인저

1번 - 합체 시스템이 주는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철인 28호(기계로 조종하는 골렘에 가깝다) 때만 해도 로봇은 타는 것이 아니라 조종하는 것이었다. 기술 박람회 등을 통해 접했던 공장자동화형 로봇이 그렇듯 로봇은 이용하는 수단이지 직접 타고 조종하는 수단이 아니었다. 게다가 로봇을 타고 전투에 나가게 되면 로봇이 받는 데미지를 조종사가 똑같이 입게 된다. 얼마나 불안정한 조종 시스템인가? 하지만 파일더 온! 이라는 합체구호와 함께 반짝이는 마징가의 눈을 보고 있자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댄다. (이것은 남자들의 로망에 가깝다.)


합체 시스템 외에도 마징가는 기존의 로봇물과 틀리게 엄청난 무기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눈에는 광자력 빔, 입에선 루스트 허리케인, 가슴에는 브레스트 파이어, 팔에는 로켓 펀치, 주먹에는 아이언 커터, 팔꿈치에는 드릴 미사일, 양손을 잡으면 대차륜 로켓펀치, 손가락엔 핑거 미사일, 거기에 제트스크랜더를 장착하면 공중에서도 비행이 가능하다.(열거하기에도 숨차다) 거기에 필살기까지 존재하니 이건 로봇이 아니라 신화에 등장하는 신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합체 시스템과 무기들은 또 다른 중요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합체의 감동을 아는 독자라면 최근 개봉한 '퍼시픽 림'에서 머리가 합체되는 집시데인져의 출격신에 전율을 느꼈을 것이다.


조종사의 정신력이 강해지면 로봇도 강해진다! 그렌라간의 나선력은 마징가부터 이어진 열혈전사들의 오마주다.

2번 - 조종사가 성장하면 로봇도 강해진다. 로봇의 무기가 강화될수록 조종사 역시 강해져야 한다. 이러한 서로간의 성장에 대한 연관성은 로봇과 파일럿의 안전을 보장하게 된다. 여기에서 일본 만화의 가장 큰 특징인 '열혈'이라는 요소가 탄생한다. 이 열혈이라는 아우라는 로봇의 방어막처럼 로봇을 강하게 만드는데 에반게리온을 보면 AT필드라는 또 다른 구체적 방어막으로 등장한다. 마징가제트의 시리즈 및 만화책을 보면 주인공인 카부토 코우지는 거의 미친놈처럼 긍정적이고 열혈남아인데 가장 최근의 애니메이션인 그렌라간을 보더라도 이 열혈을 '나선력'이라 표현하며 열혈시리즈의 계보를 충실히 연결하고 있다. 이 열혈은 마징가 3 연작 이후에 '겟타로보' 시리즈에선 거의 광기에 가깝게 묘사되는데 이러한 광기와 열혈의 시작엔 마징가 제트가 있었다.


나가이 고 월드에서 가장 잔혹한 주인공인 바이올런스 잭. 만화내용은 스너프 필름(막장)에 가까울 정도로 폭력적이다.

3번 - 선악의 구별이 뚜렷하지 않은 이야기의 구조는 원작자인 나가이 고가 마징가제트의 세계관을 '나가이 월드'라는 자신만화를 집대성한 세계관에 편입시키며 발생한다. 나가이 고는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자신만화에 에로, 그로테스크, 난센스라는 3가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가는데,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마징가와는 별개로 나가이 고의 또 다른 히트작인 데빌맨, 바이올런스 잭, 겟코 가면, 파렴치학원, 큐티하니를 보더라도 굉장히 성적으로 개방되고 폭력이 미화된 작품들이 많다. 최초의 마징가 시리즈에선 선악구도가 분명해 보이지만 후기에 리메이크한 제트 마징가나 진 마징가 제로를 보면 그 경계가 명확치 않다.


마징가를 만든 카부토 코우지의 할아버지는 마징가제트가 지구를 구원할 궁극의 수호자가 될 수 있지만 지구를 멸망시킬 극악의 파괴자도 될 수 있음에 번뇌한다. 마징가를 공격하는 헬박사의 부하 아수라백작(실제로 남작)을 보더라도 지구 정복이 목표가 아니라 헬박사에 대한 충성이 목적이다. 주인공인 카부토가 극도로 흥분한 상태에서 싸움을 시작하면 인간들의 거주구가 박살 나는 점을 보더라도 이것은 선을 빙자한 악의 표현인 경우가 많다.

이시대에 바람직한 리더로 재조명 받고 있는 헬 박사.

마징가가 지구를 지킨다고? 아니다 헬박사가 지구를 정복했으면 그 정도의 인구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헬박사는 지구 정복이 꿈일 뿐 그 이후에 지구를 멸망시킨다는 계획은 없었다.(파시즘의 옹호라 할지 모르겠으나 시리즈를 계속 보다 보면 적들이 불쌍한 경우가 더 많다. 마징가가 너무 월등해~)


주인공들이 거의 열혈 미친광이급인 겟타로보 시리즈

4번 - 최초의 시리즈 로봇물은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다. 기존에 글로벌 시장에서 무시당하던 재패니메이션이 자국 내 방영이 아닌 수출에 있어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 건 마징가 Z,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로 이어지는 마징가 3 연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마징가 3 연작은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크지 않았던 이탈리아와 스페인에 까지 수출되며 이후 일본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 오타쿠팬들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마징가 시리즈는 이후에 가면라이더 시리즈처럼 마징가의 향수가 느껴지는 여러 로봇 애니메이션들을 탄생시키는데 그중 나가이 고의 제자였던 '이시카와 켄'의 '겟타로보' 시리즈는 마징가 시리즈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며 많은 극장판과 OVA판 애니메이션을 탄생시킨다.


아프로다이A - 충격의 가슴 미사일
다이아난 A - 충격의 가슴 미시일
비너스 A - 충격의 가슴 미사일

5번 - 여성형 로봇의 등장은 많은 의미를 갖는다. 기존에 아톰에서 역시 '우란'이라는 아톰의 로봇 여동생이 존재하지만 여성성을 특별히 강조하진 않았다. 마징가 제트에 등장하는 여성형 로봇인 아프로다이 A와 다이아난 A, 비너스 A는 지금 봐도 야하디 야한 가슴로켓을 보유한 에로틱컨샙의 로봇 중 하나다(실제로 나는 어렸을 때 마징가를 보고 여자들은 모두 가슴에서 로켓이 나가는 줄 알았다 ㅎㅎ). 이후에 에반게리온을 보더라도 남성형 로봇과 여성형 로봇은 디자인이 미묘하게 틀리다.


숨은 명작. 신혼합체 고단나

아예 남자 로봇과 여자 로봇의 설정을 강조한 '신혼합체 고단나'의 경우를 보면 성별의 특징적인 구조들을 더욱 강조한다. 로봇을 조종할 때 입는 전투용 슈트 디자인을 보더라도 여성 로봇의 파일럿들은 몸매를 강조하는 디자인이 두드러진다. 애니메이션을 시청하는 성별에 남성이 앞도적으로 많은 점을 감안하면 여성성이 강조되는 컨샙은 인기에 큰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에반게리온의 레이(호오~), 아스카(하악~), 마리(허헉~)

위에 5가지 특징은 슈퍼 로봇으로 대표되는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에 아직까지도 적절히 녹아있다. 콘텐츠에는 단단한 뿌리가 있어야만 무럭무럭 자랄 수 있다. 아마도 위의 컨셉을 기반으로 다양한 변종들이 무수하게 탄생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진격의 거인이라는 변종 거인이 등장하기까지 마징가제트가 얼마나 단단한 뿌리 역할을 했는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최근 새롭게 연재되고 있는 진(眞) 마징가 제로. 신과 악마 사이를 오가며 인류의 구원과 파괴를 반복한다.

마징가에는 거인이 가진 필연적 운명중 '두려움'의 특징이 오롯이 드러난다. 마징가의 '마지'은 한자로 '魔神'이라고 쓴다. 말 그대로 마귀 '마'에 귀신 '신'을 쓰는데 이것은 명부의 왕 하데스처럼 거대한 악과 두려움의 대상을 상징한다. 또한 영어로는 'machine'이라 쓰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기계를 뜻한다. 거대한 기계에 대한 두려움은 시리즈 내내 주인공을 괴롭힌다. 아마도 나가이 고는 거대한 힘이 인간을 위협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괴물을 잡으려면 스스로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설정은 최근 개봉한 영화 '화이'에서도 보인다. 선과 악의 모호한 구분은 최근에 새롭게 리메이크되어 연재 중인 진 마징가 제로에서 더욱 크게 작용하는데 패러럴 월드에서 마징가는 구원자가 아니라 광기에 휩싸인 파괴자로 그려진다.


Z 마징가 시리즈에선 마징가=제우스의 공식을 보여준다.

마징가의 탄생에 그리스 로마 신화가 많은 부분 참조되었던 것을 볼 때 거인이 가진 구원과 파괴의 양면성을 마징가 시리즈는 굉장히 잘 표현하였다고 생각된다.

파일더 온!!!!!

30살이 되기 전까지 내 꿈은 마징가 제트의 조종사였다.(로봇 태권브이 조종사가 되려면 태권도 유단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포기했다) 회사에 들어가고 여자친구와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며 어느새 나는 제트파일 더에서 내려버렸다.


어렸을 때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산보다 거대한 강철 거인이 호수 밑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라 상상하던 당신의 믿음은 아직 남아있는가?

거인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는 여기서 마친다.
이글을 읽는 당신에게 즐거움이 되었기를~


추천작
나가이 고의 '마징가 제트,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이시카와 겐의 '게타로보 시리즈'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철인 28호'




마징가에 대한 몇가지 재밌는 사실들...


마징가는 만화책으로 완결된 내용이 아니었다. 당시 원작자인 나가이 고는 5개의 만화 출판사와 계약하여 주간 만화와 월간 만화를 모두 연재하는 미친 짓(천재니까 가능한)을 하였는데 '데빌맨' 연재에 집중하고 싶어서 마징가제트를 3권까지 열심히 그리다가 흐지부지 완결시켜 버린다. 그런데 더 웃기는 건 그  데빌맨마저도 말미에 가면 이상한 시간여행을 하는 에피소드로 흐지부지 끝내버린다. (이후에 데빌맨-바이올런스잭-데빌맨 레이디를 하나로 묶어 완결시키긴 하지만...)

초장수 캐릭터이자 나가이고 월드의 근간이 된 데빌맨

나가이 고는 지금까지 본인 스스로 완결시킨 만화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만화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 여러 개의 만화들이 당시 모두 신선한 컨샙이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특유의 똘끼 때문인지 소년만화에 굉장히 에로틱하고 폭력적인 설정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겟코가 면만 보더라도 주인공은 얼굴에 가면만 썼을 뿐 전신 누드의 용감함을 보여준다. 바이올런스 잭은 성인잡지에 연재됐지만 북두신권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극도의 폭력을 보여준다. 이후에 일본 만화가 변태 소리를 들을 정도로 성에 대해 가학적이고 개방적 인건 나가이 고의 영향이 크다.

나가이 고 원작 중 그나마 덜 야한 여주인공인 큐티하니
물론 만화판은 꽤 야한 장면이 많음...(그래도 겟코가면에 비하면야...양호한 수준)

마징가는 초기에 오토바이가 머리에 합체되는 컨샙이었다. 이것은 제작사인 도에이의 영향이 크다. 당시 히트한 자사의 특촬물 중 가면라이더의 컨샙을 애니메이션으로 가져오길 바랬는데 나가이 고는 거기서 한 단계 더 진화시켜 비행기가 머리에 탑승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버린다. 결국 울트라맨+가면라이더의 장점을 모은 로봇 머리에 오토바이가 탑승하는 시스템은 이후 강철지그에서 실현된다.


거인 연대기 3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itro2red/24

매거진의 이전글 거인 연대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