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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Jul 01. 2015

노아(Noah)

영화

이 영화를 어떤 관점으로 보아야 할지 많이 망설인 영화중 하나다. 이미 해외와 국내 기독교계에 많은 논쟁이 이어졌었고 주변에서도 그런 논쟁을 풍문으로 들은채 외면받고 있는 영화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이란 사회가 최근들어 기독교(개신교)에 대해 항상 논란이 있어왔고 성경의 가장 중요한 창세기에서 이어지는 노아의 신화적인 구성은 과연 어떤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지 영화를 보기전부터 많이 고민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영화의 감독인 '대런 아르노프스키'를 전혀 무시한채 영화를 접한다. 하지만 대런 아르노프스키는 13살때부터 UN이 주최한 대회에서 노아를 모티브로한 시를 써서 대상을 받으며 천재성을 발휘했던 사람이었고 데뷔작인 π(pi)는 영화광들 사이에서 손꼽힐 정도로 굉장한 작품이었다. 노아를 이야기 하기 위해선 대뷔작인 단편흑백영화 파이를 빼놓을 수 없다. 왜냐면 노아는 파이의 연장선 상에 있는 유대인이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유대인스러운 영화이기 때문이다.


대런 아르노프스키는 유대인이다. 그리고 그의 데뷔작인 파이는 감독의 당시 29살이었던 나이를 생각해 볼때 통찰력이 남달랐고 내용은 굉장히 기묘하고 독특했다. 내용은 이렇다.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수학자 '맥스'는 어느날 숫자가 가진 혼돈성과 복잡성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 그 사실을 알게된 월스트리트의 한 금융 회사 뿐 아니라 코란에 숨겨진 숫자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 신도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그의 금단의 수학공식이 완료되기 직전 자기자신 역시 정신병이 있음을 알게된다.과연 세상은 어떤공식으로 돌아가는가? 그리고 신이 남겨놓은 비밀은 무엇인가?"를 쫒는 영화가 바로 이영화 파이의 스토리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 비밀조직은 굉장히 독특하게 묘사된다. 아마도 감독이 유대인이다 보니 더 리얼한 심리와 상황묘사가 가능했으리라 생각된다. 이 영화를 통해 아르노프스키 감독은 헐리웃에 기라성처럼 입성하게 된다. 이후에 만든영화들은 '레퀴엠', '천년을 흐르는 사랑', '더 레슬러' 등이 있으나 대중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시 보더라도 조금 어렵거나 인기를 얻기엔 조금 힘든 영화였다. 그러던 어느날 감독의 역량과 배우의 연기력이 결합되어 최고의 화학반응을 일으켰던 영화가 있는데 그 영화가 바로 나탈리포트만 주연의 '블랙스완'이다. 보신분은 알겠지만 이 영화 역시 성경에 담긴 인간의 이중성과 감독이 가장 잘 다루는 분야인 1인칭시점의 정신병적 자아해체를 극적으로 잘 표현한 영화다.

노아를 이야기하며 너무 돌아갔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앞의 아르노프스키감독이 전작들은 '노아'를 만드는데 굉장히 많은 부분 영향을 주었음을 인지시키고 싶었다. 과연 감독은 왜 노아라는 영화를 만들었는가? 여기에는 많은 인과관계가 있겠지만 감독이 유대인이라는 것에 다시 한 번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유대인은 성경중 신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굉장히 간단하다. 구약은 현재 유대인들의 조상이라 밑는 하나님의 아들, 아담의 족보를 이어가며 현재의 인간이 번성하게된 신화적 연대기의 구성이지만 신약은 그 유대의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 유대인 외의 만민에게 사랑을 전파하게 된 파격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해외 기독교를 기반한 많은 종교에서 아무리 하나님을 외쳐도 콧등으로 비웃는다. 야훼(여호와)로 대표되는 하나님의 정통성이란 유태인이 아니면 가질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한 교회에서 어떤 목사님이 종말론에 관련해서 이런 말씀을 하신적이 있다. "신도 여러분~!! 여러분들 종말 기다리고 계시죠? 유태인들이 회계하지 않으면 종말은 오지 않아요. 우리의 기도가 그들에게 닿게 해야합니다.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그들이 깨달아야합니다!! 아멘!!" 이렇게 말이다. 개신교의 종말은 극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휴거를 의미한다. 그들에게 종말은 신의 크나 큰 벌이 아닌 구원의 의미다. 그런데 삼위일체를 위해서 성부(하나님), 성자(예수), 성령(예수의 죽은후 영혼)의 존재를 유태인이 인정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참 터무니 없기도 하다.

한국이란 사회는 아직도 족보를 보며 조상이 양반인가를 따지고 결혼전엔 '니네 아부지 뭐하시노?'를 물어보는데 '우리 아부지 통인데요?'라고 말하는 유대인에게 무슨말이 통하겠는가? 나치의 지배 당시 지옥같은 홀로코스트를 당하면서도 꿋꿋히 버텨온 그들을 기도의 힘으로 신약을 인정하게 하겠다고?? 좀 미안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홍익인간 사상을 전파한 단군할아버지와 100일동안 쑥과 마늘만 먹은 웅녀의 전설을 한국사에 싣는게 더 빠른길이 아닐까 싶다.

다시 말하지만 아르노프스키감독이 노아를 만든 이유는 그가 구약에 더 큰 믿음을 갖는 유대인이라는데 있다. 영화에서는 시종일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카인과 아벨, 셋의 후손이라는 노아를 신의 대리인으로써 반복 각인시킨다.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영화를 보고 거북해 하는 이유가 단지 이영화가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만든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 판타지가 들어갔고 성경에서 의인이라 표현된 노아가 굉장히 신경질 적인 인물이고 광신교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데에 기반한다. 인간을 돕기 위해 바닥으로 추락한 타락천사들이 스톤골렘(돌괴물)로 표현됐다는 것을 예로 들며 이단이라 규정짓기도 하는데 여기엔 현재 우리나라 개신교의 허점과 문제점이 낫낫히 드러난다.

교회 열심히 다니는 지인이 이영화를 보고 난 후. 나처럼 직설적으로 까진 않았지만 "교회다니는 사람으로써 거북하다." 라고 표현하셨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이어졌다. 영화가 영화지 뭔 거북함. 그리고 요즘 시대에 그 정도 판타지적 구성이 없으면 누가 영화를 보겠는가? 게다가 굉장히 아이러니하게도 영화를 보고 난후 내 관점을 이야기하자면 영화 '노아'는 개신교인들이 집착적으로 빠져있는 종교적 비논리성에 꽤 영리한 논리를 뒷받침해주는 영화다.

구약은 창세기부터 굉장히 판타지스러운 구성으로 쓰여져 있다. 1.천지창조와 사람의 창조 2.죄의 발생(에덴동산) 3.노아 이야기(대홍수) 4.바벨탑 5.아브라함이야기 6.야곱과 에서의 이야기 7.요셉과 모세 이야기 순으로 말이다.

한때 열혈신도였던 나로써 처음 교회에 나가 구약성경을 접하며 굉장히 재미있었다. 이유는 그 내용이 우리가 익히 보아왔던 판타지소설의 기반이 담겨있었고 성경의 내용 역시 말도 안되는 판타지가 실제 역사의 한 장면처럼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구절 한구절 외우다시피 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목사님께 칭찬받는 신도가 되어있었고 성경구절중 나에게 감동을 줬던 구절을 외울때면 주변의 신도들이 두눈을 반짝이며 즐거워 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종교적 믿음이 근본이 아니라 지성적 유희가 먼저인 인간이기 때문에 구약의 그 영웅적 일대기가 더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시의 한구절을 가슴에 담듯 구약을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걸 설명하자면 참 복잡하다..)

그런데 그 구약의 내용을 담은 노아가 개신교인들과 기독교인들까지 불편하게 한다는 사실은 또 다시 나에게 흥미롭다. "아니 당신들 그럼..성경이 성경에 적힌 그대로 실제로 일어난 리얼다큐라고 믿고 있었단 말이야??"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성경의 최종본은 사실 많은 부분 역사적 재해석과 각주가 붙고 로마카톨릭 당시 성경을 재구성하며 외경들이라 불리는 성경에 포함할 수 없는 구전되거나 불경스러운 내용들을 거세하며 만들어진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99.5%가 진실된 역사라 믿으며 앞서 한 이야기들을 내 입밖으로 내뱉으면 디스를 하는 믿음배틀이 되곤 하는데 나는 그럴때마다 입을 앙다물고 말을 하지않는다. 믿음이 믿음으로써 당위성을 얻으려면 논리가 기반에 깔려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의 믿음이 이유없는 믿음인 경우가 많고 교회에서는 그런 바보같은 해바라기 믿음이야 말로 주(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지식과 깨달음을 통한 해탈 또는 신과의 접촉은 사탄의 장난이란 소리를 종종하곤 한다. 여기에는 많은 부분 기독교에서 이단이라 지목받는 '프리메이슨'이라거나 '일루미나티'의 정신과 맞닿아있다. 프리메이슨은 원래 석공조합이 발단이다. 석공들은 성당을 건축하는데 굉장히 많은 일조를 하였고 미드 '대지의 기둥'을 보더라도 그 성공 또는 건축가들의 믿음과 힘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칭송받았다. 그런데 그 직업을 보면 왜 그들이 지식에 집착했는지 이해하게 된다.

석공과 건축가는 수치에 집착할수 밖에 없다. 건축이 과학의 영역과 결합하며 지금 우리를 얼마나 편하게 만들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수학적 치수와 신화의 성스러움에 집착했던 당시의 석공들중 일부는 성경을 수치적 분석과 함께 유대의 카발라라고 하는 수비학에도 결합하였다. 후에 프리메이슨은 '일루미나티'로 발전하게 되는데 일루미나티의 참 뜻은 '계몽된 자들'이란 뜻으 계몽주의가 다분히 포함되어있다. 일루미나티는 성경의 논리적 지식과 문자가 가진 힘에 집착하는데 현재 일루미나티를 포함 프리메이슨에 연관된 조직은 모두 이단으로 불리우고 있다. 이유는 앞서말한 바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대한 접근방식 때문이다. 최초의 사악한 힘은 뱀이 가졌다 믿는 기독교라는 종교에서 그 뱀의 의미는 '사과가 맛있다'라는 정보를 이브의 귀에 흘린 신의 권력에 위배된 지식의 전달자이기도 하다. 그런의미에서 이 지식중독된 광신도들의 계보는 이단으로 지명당한다.

자 그럼 이제 영화 '노아'의 주인공인 노아를 되돌아 보자.
영화에서는 노아가 방주를 만들게된 당위성을 신의 계시로 이야기한다. 거기에는 노아의 할아버지인 무드셀라의 조언이 뒷받침된다. 그런데 잠깐. 무드셀라 어디서 들어 본 이름 아닌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석 요리우리세브리캉 치치카포 사리사리센터 '무드셀라' 고양이~로 이어지는 한국의 유명 장수이름짓기 개그에서 사용되는 그 주술같은 대사중에 나오지않았나? 성경에서 말하는 무드셀라는 놀랍게도 969세까지 살았다. 그러니 당연히 장수이름에 나올수 밖에 없지. 다시 노아로 돌아가 보자. 처음에 말했듯 이 영화는 성경에서 판타지로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와 구약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많은 신비로운 역사에 대해 당위성을 만들어 주고 있다.

노아가 방주에 대한 영감을 얻기전 무드셀라 할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중에 가족들은 돌골렘을 만나게된다. 이 돌골렘은 유대의 전설에 자주등장하는 소재중 하나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대왕 역시 돌골렘(흙으로 만들어진 골렘)을 다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골렘의 기원이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성경을 보며 그런부분이 항상 궁금했다.(물론 어떤 교인들도 설명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버전의 성경해석서를 찾아본 후에 성경이외에 유대의 전설이나 구약성경에 관련된 각주를 참조하고서야 알게된 사실이 '흙으로 피조물을 만들다'라는 스토리텔링이 사실 조물주의 '인간창조'로부터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골렘은 혼이 없는 거인으로 흙 또는 돌이나 철로 만들어진다. 여기에는 카발라나 성경에 기반한 주문이 적힌 종이가 입에 넣어진다. 이 것 역시 성경의 입김으로 만물이 생장하게 하였다는 신의 천지창조와 연관되어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청동거인까지 가야하지만 오늘은 성경에 관련된 이야기에 집중해서 이야기 하겠다.

돌골렘을 만난 노아는 무드셀라 할아버지를 만난 후 주님의 목소리를 연결하여 기적을 행사하는 매개체로써 골렘들에게 인정을 받게 된다. 그 후 타락천사인 골렘들이 방주를 만드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느다. 이것 역시 성경의 터무니없는 내용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논리이기도 하다. 방주의 실제크기는 135m에 이른다. 이는 현재 항공모함의 절반크기다. 성경분석을 통해 노아가 100년가까이 방주를 만들었다 묘사하지만 이것은 시간이 그만큼 걸렸다해도 노아의 아들 3명을 포함하여 건설하기에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대업을 거대한 돌골렘들이 도와줬다면? 영화의 시간적 배치를 볼때 가능한 일이다. 영화에서는 무드셀라 할아버지가 969세까지 살았다는 정보도 없지만 노아의 외견상 나이로 보더라도 약 20년정도 밖에 방주를 건설하는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또한 두발가인의 침략으로 부터 8명의 가족이 대항하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데우스마키나급 신의 개입이 필요한데 이것 역시 돌골렘의 방어로 논리를 뒷받침하게 된다.

대홍수가 시작된 후 영화는 급물살을 타고 신화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이야기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당대의 거대한 의인이었던 노아는 신의 계시를 통해 모든 동물을 구원하는 성경에서 중요인물이 되었지만 가족을 지켜야하는 가장과 신의 계시를 이행해야하는 대리인으로써의 격렬한 내적 충돌을 겪게 된다.




노아가 받은 신의 계시는 인류의 종말이었다. 거기엔 가감없이 자기자신도 포함되며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과 며느리도 포함되어있다. 며느리인 일라가 불임일 수밖에 없는 몸에 임신을 하게 되며 노아의 갈등이 시작된다. 신은 타락한 인간을 쓸어버리기 위해 크나 큰 희생이 따라야 하는 홍수를 선택했다. 그러나 여기에 며느리의 임신을 통해 인류가 번식할 빌미와 희망이 제공되었다. 노아는 아이가 태어났을때 아들이면 노아의 가족이 모두 늙어 죽은 후 인류의 최후의 일인이 될 것이며 딸이 태어났을 경우 욕망의 씨가 될 것이므로 태어나자 마자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둘것을 선언한다.

거기서부터 노아의 광기가 시작된다. 과연 신을 믿는 것은 일방적인 믿음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신의 의지에는 인간의 선택권이 주어지는가? 하는 이 거대한 질문은 성경의 보여지는 부분만 이해하는 텍스트적 해석과 그 속에 담긴 컨텍스트적 해석이 서로 어떻게 충돌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아는 올굳은 믿음으로 인류의 종말이 신의 의지임을 의심치 않는다. 둘째 아들인 '함'이 보여주는 다분히 인간적인 욕망을 통해 방주 밖에서 죽임을 당하는 인간과 방주안에서 홍수를 피한 노아의 가족들을 하나님의 징벌대상에 동일선상으로 올려놓고 자기자신을 더욱 단호하게 담금질한다. 하지만 며느리인 일라가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딸임을 알게 되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거두려 하기 전 자신 안에 내재되어 있던 가장으로써의 인간성이 눈을 뜬다. 하나님의 의지를 대리하지 못한 책망이 스스로를 뒤덥고 자신이 선언하였던 인류의 종말이 헛 된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그와 동시에 비둘기가 육지의 나뭇가지를 잎에 물고 돌아온다. 홍수는 끝나고 방주는 현재 터키의 아라랏트 산에 정박하게 된다.

홍수를 거치며 인류는 이제 단 8명이 남게 되었다. 아내를 찾지 못해 방황했던 노아의 두 아들은 이제 조카들과 근친결혼을 통해 인류를 번성케 할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던 '함'은 먼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새롭게 정착한 땅에서 방주에 실려온 암수가 짝인 동물들 역시 번식을 시작할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끝을 맺는다.

영화를 보는중 60대 노인이 중간에 혀를 차며 자리를 떴다. 돌골렘이 두발가인의 군대를 막을때 뒤에 앉아있던 중년 노부부가 욕을 해댔다. 영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뒤도 안돌아보고 나간 젊은 연인은 화장실로 가며 화를 냈다. 영화를 볼때 영화관엔 단 6명 뿐이었다. 그런데 이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ㅎㅎㅎ

나는 이 영화를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추천한다.
영화를 보며 중간에 나가도 좋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나와 다른 관점에서 재미없다 말해도 좋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현대 미술과 예술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를 통해 성경을 그대로 옮기지 못한 불경스러움만 봤다면 당신은 노아가 혼란을 겪었던 신의 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계기가 될 것이다. 본인의 종교적 신념과 믿음이 어디에서 기반하고 무엇이 당신들을 잘못된 광신도로 보게하는지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될것이다. 또한 성경의 내용을 전혀 모르지만 단지 노아의 방주만 아는 분들이 계시다면 구약성경 창세기중 노아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6장 5절부터 17절까지는 읽고 가시길 바란다.

영화는 아무리 다큐멘터리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일상의 비일상을 보여주는 판타지임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리고 그러한 디테일한 상상력이 지금의 우리를 만들고 미래를 더욱 아름답게 만드는 과정임을 이해했으면 한다.

간만에 긴글 썼더니 숙변이 내려간 기분이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지만 자칫하면 나역시 이단으로 찍힐 수도 있기에 여기서 이야기를 마감한다. 길게 이어진 영화리뷰를 알차게 봐주신분들께 감사하단 말을 전하고 싶다. ^^


PS-1
노아역의 러셀크로와 아내인 나메역의 제니퍼 코넬리는 '뷰티플마인드'에 이어 다시한번 환상적인 연기력을 보여준다. 고뇌에 찬 광기의 노아는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러셀크로우가 아니면 과연 누가 가능했을까 싶다.

PS-2
며느리역의 엠마 왓슨은 해리포터 이후에 성장한 연기력과 외모를 보여주지만 출산장면에서는 실망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아이를 쑴풍쑴풍 잘나을 수있다니..라마즈 호흡법이라도 연습한 것인가?

PS-3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대한 동물들이 방주에 입성하는 장면은 그리 경이롭지가 않다. 대홍수의 묘사역시 그리 대단하지 않다. 이 영화는 대런 아르노프스키 감독의 장기인 인간 내면의 충돌과 고뇌에 대한 묘사가 더 볼만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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