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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Aug 07. 2015

거인 연대기 5

진격하는 거인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 고야의 그림 중 유명한 그림 두 점이 있다. 하나는 나폴레옹의 스페인 함락 중 산 뒤에 거대한 거인이 나타나 외롭게 서있는 <거인(The Colossus)>과 공포감을 줄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아들을 먹어 치우는 사투르누스(Saturn Devouring His Son)>라는 작품이다. 이 두 작품엔 어두운 화면 속에 거인이 등장하는데 마치 악몽을 들여다보듯 작품에서 느껴지는 절망감이 보는 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프란시스 데 고야. '거인' 1808.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Francisco de Goya. 'The Colossus'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프라도 미술관. Saturn devouring his son

이 그림을 연상시키는 애니메이션이 2013년 공개되는데 이제는 여기저기 온갖 미디어에서 아무 데나 쓰다 보니 조금은 식상해진 '진격의 거인'이다.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아는 진격의 거인.

최근 거인이라는 단어를 치면 가장 많이 뜨는 검색어가 '진격의 거인'일 것이다. 만화로 먼저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 논란이 많았던 이 애니메이션은 최근 극우파 발언 및 한국 비하 발언으로 다시 한번 논란을  재점화하며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최근 작가의 한국 비하 발언 후 진격갤의 한 팬은 지금까지 모았던 진격의 거인 만화책을 모두 불태 우는 화형식까지 했다. 처음엔 긍정적인 인기였으나 지금은 부정적인 인기가 더 크다)

이 것은 에렌 예거의 거인 이야기다

처음 진격의 거인의 만화 연재를 시작하였을 때 대다수의 만화가들(또는 관계자들)이 무릎을 쳤다고 한다. 이유는 이렇게 매력적인 소재의 이야기를 왜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았냐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발명이 그러하듯 가장 창조적인 발명은 누구나 생각할 수 아이디어인 경우가 많다. '진격'이란 단어도 '거인'이란 단어도 특이한 단어지만 누구나 쉽게 쓰던 단어이고 내용 역시 들춰보면 컨샙과 세계관은 특이하지만 이야기의 구조는 그리 신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만화가 가진 힘은 잘 만들어진 내용에서 오지 않는다.

너의 진부한 상상력에 아구창을 날려주마~ (만화책으로 먼저 연재된 진격의 거인)

오히려 만화가 연재될 당시 정리되지 않은 선과 거칠게 표현된 액션의 표현이 많은 이들에게 신선함을 안겨줬고 절망으로부터 시작되는 1화의 대사 '그날 인류는 떠올렸다. 그들에게 지배당하던 공포를. 새장 속에 갇혀 있던 굴욕을...'의 독백은 독자 개개인이 가진 콤플렉스와 비교하게 하며 이야기의 몰입을 유도했다.(거기에 사회적 현상의 대비까지 더하면 이야기는 거대한 콘텐츠가 된다) 더더군다나 기존의 만화에선 적이 나타났을 때 이미 정의는 이긴다의 공식으로 진행되는 반면 진격의 거인은 이야기의 서두부터 엄청나게 디스토피아적인 설정으로 인간 자체를 굉장히 끔찍하게 죽이기 시작한다. 한마디로 절망적인 스토리의 연속이다.(인기를 끄는데 그게 먹혔다.)

에렌과 미카사 그리고 등장인물들..(이런 달달한 장면을 기대하고 애니를 봤다간...트라우마에 가까운 멘붕을 겪게 된다)


진격의 거인에서 주인공 에렌과 미카사는 그런 와중에도 희망의 불씨처럼 보이지만 그들 역시 절망적인 설정을 가진건 마찬가지다. 주인공이 '거인'으로 변신하며 절대자였던 거인과 1대 1로 맞짱을 뜰 수 있는 히든카드가 되는 순간 같은 편이었던 인간들이 에렌에게 돌을 던진다. 또한 사람들이 에렌을 받아들일 무렵 가장 믿었던 전우가 가장 상대하기 힘든 적이 되어버린다. 매회 미스터리를 유발하며 절망의 끝으로 달려가는 스토리를 보면서 원작자인 '이사야마 하지메'가 실제로도 비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멘붕물의 최고봉 마브러브 얼터너티브 토탈이클립스
"내 미모에 홀려 애니를 봤다간 천벌에 가까운 멘붕을 겪을 것이야!!"


히스테리를 유발할 정도로 주인공과 독자를 절망하게 만드는 이 이야기의 원류는 어디일까? 작가는 이 만화가 인기를 끌 무렵 '참조했던 만화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말한다. '마브러브' 시리즈가 그에게 굉장히 많은 영감을 주었다는 표현을 하는데 최근 '마브러브' 시리즈의 애니메이션판 '마브러브 얼터너티브'를 보면 처음부터 화성에서 침공한 외계인들의 진격으로 인해 인류의 대부분이 파괴당한다. 또한 첫 화부터 등장했던 주조연급의 인물(미소녀)들이 끔찍하게(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고어하게) 외계인들에게 살해당한다. 진격의 거인을 보면 거인들이 인간을 공격하며 굉장히 무식하게 인간을 먹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고어함은 마브러브 시리즈를 보면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군대'가 등장하고 일본의 '제국주의'가 교묘하게 포장되어있다.

잇쇼켄메이의 극단적인 사례인 카미카제 특공대


모두가 '진격의 거인'에 열광할 때 나로써는 시리즈가 진행되며 조금 불편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관이 일본의 '제국주의'와 '잇쇼켄메이'(자기가 맡은 한 가지에 목숨을 거는 일본인들의 전통 관념)의 재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만화가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거나 미국이었다면 당연히 지금 말하는 부정적인 견해가 비약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원작이 일본의 콘텐츠인데다가 작가가 참조한 '마브러브' 시리즈를 보면 절대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조금 대비를 해보자면 진격의 거인에서 표현된 거인은 전범국이었던 일본을 패전으로 이끌었던 '서양세력'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으며 거인과 싸우며 목숨을 바치는 조사병단은 흡사 '카미카제 특공'과 닮았다. 거기에 인간을 지키는 거대한 방벽이 오히려 인간이 외부세계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철창 같은 존재였던 것을 보면 2차 세계대전 후 고립되었던 일본 그 자체를 연상시킨다. 그래서 일본 내에서 일본인들이 느꼈던 감정과 해외나 한국에서 느꼈던 정서적 감정은 아마도 많이 틀렸을 것으로 보인다.

거대한 전함과 싸우는 카미카제의 모습 어딘지 모르게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조사선단의 군인들과 닮아있다.

다시 거인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일본에서의 거인은 지금까지 많은 미디어를 통해 거대 로봇이란 형태로 발전되며 인간의 적이 아닌 인간의 친구로 등장해 왔다. 뭐 이것은 굳이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를 보더라도 초기 인간이 없을 때 신(거인)들은 절대자이며 무서운 존재였지만 후기가 되면 인간과 소통하는 거인들의 신화가 더 많다. 그렇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화책이나 신화 속에 등장하는 거인에 대한 거부감은 그리 크지 않았으리라 본다. 하지만 '진격의 거인'이 상징하는 거인을 보고 있으면 그 감정은 공포로 뒤바뀐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공포. 그리고 새장 속의 새(또는 쥐덫에 갇힌 쥐)가 되어 언제 먹힐지 모르는 불안함은 원래의 거인이 가졌던 위압감을 되새기게 만든다. 그 모습은 현재 일본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전범자로써 전쟁을 겪고 원폭으로 비참하게 패배하며 세상과 고립되어 움츠렸던 자신들의 모습이 바로 진격의 거인에 녹아있는 것이다. 또한 이미 계급화되어버린 현실을 통해 젊은이들의 열혈을 보기 힘든 일본인들에게는 이러한 제국주의와 잇쇼켄메이 정신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그런 비정상적인 향수는 상당히 위험하다.

처음 말했던 고야의 그림을 보더라도 '자식을 잡아먹는 사 루트 스라'는 그림은 농경의 신 사투르누스가 자신의 아들 중 한 명에게 왕좌를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아들을 차례로 잡아먹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신화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더 나아가 인간성의 타락, 전쟁의 폭력성,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 간의 갈등,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시간으로 사투르누스를 상징하는 바는 다양하다. 이 그림은 감상자를 괴롭게 만든다. 감히 사투르누스의 눈을 오래 바라보는 것도 어렵다. 자기가 살겠다고 아들을  잡아먹는 그의 눈에는 광기와 공포가 서려있다. 그 광기와 공포의 중심에는 삶에 대한 뿌리 깊은 집착이 자리 잡고 있다.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세상과 단절한 채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고야는 자신 역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초연하지 못하고 삶에 집착하는 자기의 모습을 추악하다고 느껴서 이런 그림을 그린 것 아닐까?


원래 인간이 가졌던 내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공포의 주체는 귀신이나 유령이 아닌 인간과 꼭 닮은 인간 이상의 존재였다. 가장 원초적인 지배방법인 육체의 힘(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그런 그로테스크한 존재 말이다.


진격의 거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인칭의 변화에 따라 다름을 여러분께 소개한다. 이 만화를 보며 당신은 거인으로 변신한 열혈 주인공 '에렌'이 될 수도 있고 절망적인 방벽 안에 '주민'이 될 수도 있으며 거인과 인간의 관계를 시니컬하게 관전하는 '독자'가 될 수도 있다.


과연 당신에게 '거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1인칭 '거인'시점인가?
2인칭 '인간'시점인가?
3인칭 '전지적 신'의 시점인가?


이미 방영을 마치고 완결이 난 '진격의 거인'을 아직 안 본 분들도 즐길 수 있길 바라며 현재 일본에선 영화로도 만들어졌지만 재미로 따지자면 '애니> 극장판 애니> 만화>>>>>>넘을 수 없는 차원의 벽>>>>>>실사판 영화'이니 영화는 진짜 궁금한 분들만 보길 바란다. 미흡하게 '거인연대기'를 마친다.


이글을 읽어준 당신에게 즐거움이 되었기를~

흉한거 많이 보셨으니 깔끔하게 미카사 서비스 컷!

추천작
이사야마 하지메의 만화 및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진격의 거인에 대한 몇 가지 재밌는 사실...

진격의 거인에 등장하는 거인들의 모습은 원작자인 이사야마 하지메가 야간 만화방 알바시절 겪었던 '취객'들을 모티브로 하였다. 왜 화를 내는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취객들의 모습은 당시 이사야마 하지메에게는 공포로 느껴졌었나 보다. 애니메이션을 보면 거인들이 걷는 모습이나 초점 없는 눈빛들을 보면 취객이 모티브가 됐다는 게 느껴질 것이다.

진격의 거인 설정중 거인과 인간의 크기비교

진격의 거인은 허술한 그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을 뒷받침하는 탄탄한 설정이 흥미로운데 실제로는 터무니없고 모순된 설정이 많다. 인간들의 최후 보루인 방벽의 설정을 보면 실제 크기가 가장 바깥방벽인 월마리아의 지름이 510km 정도인데 이것은 남북을 합친 한반도를 한바퀴 돌린 지름과 맏먹는다. 물론 인류가 그 방벽을 세운 것이 아니라 원래 그 방벽이 있었다는 설정이지만 높이 50m의 방벽이 510km의 지름으로 둘러싸였다는 설정은 만리장성보다 설득력이 없다. 또한 인간이 거인에게 대항하는 방법 중 하나인 공성에서의 대포 쏘기는 말도 안되게 낙후된 기술 중 하나다. 조사병단이 사용하는 공중전 방식인 입체 기동만 보더라도 허리에 차고 있는 게 에어가스통인데 사용하는 횟수에 대비해 엄청나게 많은 가스가 들어간다. 그 기술을 대포에 적용했으면 아마도 방벽주변이 아니라 방벽 100km 밖의 거인도 잡았을 것이다. ㅎㅎ

진격의 거인은 현재 16권 통합 5250만부가 팔렸다. 이 기록은 일본에서도 전무후무한 단기간 최다 판매기록이다.

이 만화가 강담사의 '소년 매거진'에 연재되기 전 원래 집영사의 '소년 점프'에 투고했었으나, 편집자에게 "다음에는 만화가 아니라 '점프'에 맞는 작품을 갖고 와라."는 말을 들어서 소년 매거진으로 투고처를 바꾸었다고 한다. 집영사가 내고 있는 소년 점프는 일본 만화계에서는 핵심적인 존재인데 히트한 만화 대부분이 이 만화잡지를 통해 데뷔하고 연재되었다.(대표적으로 드래곤볼,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데스노트) 하지만 소년 점프에는 데스노트의 작가 오바타 다케시가 연재한 바 있는 만화가 이야기 '바쿠만'을 통해 밝혔듯 왕도라는 게 존재하는데 대부분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이 없고 주인공이 성장하며 적을 이겨가는 공식이 이 왕도다. 결국 점프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각 권당 200 만부라는 경이적인 판매량을 기록했고 현재 판매 및 발행부수는 5250만 부를 돌파했다. 점프를 대표하는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을 통틀어 전례가 없던 판매량이다.

만화의 설정인 1차방벽인 월마리아의 크기. 한반도 크기다. 에이~ 농담도 잘하셔~!!

만화 원작을 보면 여러 가지 떡밥이 존재하는데 '진격의 거인'이 판타지가 아닌 인류의 미래라는 떡밥도 존재한다. 뭐 이런 방식은 혹성탈출을 유심히 봤던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할만한데 거인의 존재 역시 인간과 다른 종족이 아닌 인간과 사실 같은 종족이었고 에렌의 거대화를 보더라도 이것은 저주가 아니라 각박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인체 개조에 가깝다.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아 떡밥회수가 안되고 있긴 하지만 방벽이 50m인 이유가 공개된 마당에 작가가 얼마나 더 큰 창의성을 발휘할지 모르겠다.

열혈 주인공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에렌

에렌의 성격은 밑도 끝도 없는 열혈과 초긍정성인데 이것은 기존의 대부분 로봇 만화 주인공이 가진 전통이다. 실제로 강철지그를 보면 아버지가 주인공인 시바 히로시를 사이보그로 개조해버리는데 주인공은 그딴 거 신경안 쓰는 열혈바보다. 반대로 에렌을 좋아하는 미소녀 캐릭터 미카사를 보면 취미가 에렌 바라기고 특기가 에렌 보호인데 이것은 속칭 '쿨데레(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부드러운)'라고 불리는 '츤데레(싹수 없는 성격이지만 실제로는 부드러운)'의 연장선이다. 이것은 에반게리온의 레이로 대표되는 캐릭터들이 가진 공통적 성격이다. 진격의 거인에 등장하는 조연 캐릭터들 역시 기존의 일본 만화 공식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왠지 '남대( http://southbig.com )'님의 일러스트가 생각나는 포스터


한국에도 진격의 거인처럼 이런 변신거인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이 있었는데 1982년 반공만화였던 '해돌이의 대모험'이다. 이전의 반공물과 다른 건 북한 귀순자(탈북자)들을 대거 동원해서 나름 고증에 힘을 썼던 현실적 애니메이션이었고 어설픈 따발총이 아닌 북한 정복을 입은 장교에 AK 소총을 들고 나온다. 게다가 반공애니에서 유일하게 미그기 같은 전투기도 나왔다... 더불어 뉴타입 한글판에 나온 기사에 의하면 당시 한국 애니로 드물게 일본인 애니메이터들까지 참여한 작품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만화는 절망적인 설정이 많았는데 주인공이 죽는다거나 아이들이 총살당한다거나... 헐크의 영향권에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거인의 등장과 설정에 있어서는 진격의 거인과 비교해 보면 재밌는 점이 많다. ^^


https://youtu.be/F4pxHnCBsTo

시간나는 분들은 반공애니메이션의 절정 해돌이의 대모험을 보자.


거인연대기 0~5편

https://brunch.co.kr/magazine/chronic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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