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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Aug 09. 2015

베테랑들이 만든 영화 '베테랑'

영화

한국영화는 리뷰를 잘 안 하는 편인데 베테랑은 영화를 보는 내내 리뷰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불끈 솟았다. 이 영화를 리뷰하며 스포일러를 걱정하는 분들을 많이 보았는데 나는 스포일러 신경안쓰고 리뷰를 쓰려고 한다. 사실 이영화는 스포일러라고 할만한 사실이 딱 하나밖에 없다. 근데 솔직히 말해 추리 영화, 첩보영화 좀 봤던 관객이면 이미 초중반이 넘어갈  때쯤 스포일러가 될 만한 사실을 모두 알고 보게 된다. 고로 이 영화는 스포일러가 될만한 그 사건이 중심이 아니다.


아래로 길게 이어지는 3가지 핵심 키워드를 통해 영화 '베테랑'을 정리하고자 한다.

우선 페북에 짧게 쓴 10개의 문장으로 된 감상문을 옮겨 적자면 이 영화는...


1. 재밌다.
2. 아주 재밌다.
3. 진짜 재밌다.
4. 부당거래만큼 재밌다
5. 공공의 적만큼 재밌다.
6. 암살보다 재밌다.
7. MI5보다 재밌다.
8. 최근 형사 영화 중 가장 재밌다.
9. 2편 내줬으면 할 만큼 재밌다.
10. 두 번 볼만큼 재밌다.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957693960953326


자~ 이제 긴 글을 싫어하는 분들은 여기까지만 보고 영화관으로 달려가면 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재미있는 '오락영화'다.


1. 베테랑 감독


베테랑은 프랑스어로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 ‘숙련가’, ‘전문가’, ‘전문인’을 말한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의 만듦새가 잘 손질된 자동차를 연상시킨다. 세세한 곳까지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감독의 지휘하에 모든 것들이 조화롭게 이루어져 있다. 예술작품은 아니고 분명 공산품인데 명품 같은 느낌이 물씬 난다. 한마디로 '자알~ 빠진 영화'다.

류승완 감독. 어우~ 잘생겼다~

베테랑을 말하려면 이 영화의 감독인 류승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류승완 감독은 데뷔작부터 좋아했던 감독이다. 충무로 첫 장편 데뷔작이었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그 당시 영화로썬 굉장히 참신한 소재와 액션을 보여주었고 데뷔작이라고 하기 힘들 만큼의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이 영화는 동생 류승범의 데뷔작이기도 한데 비범한 감독과 비범한 배우의 위대한 탄생을 보여준 엄청난 영화다.

이제는 자신만의 연기색깔을 만들어낸 동생 류승범.

간혹 다듬어지지 않은 짱돌이 세공된 보석보다 더 큰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바로 그 짱돌 같은 영화다. 당시 충무로 영화치고는 한국영화 같지 않은 문법으로 영화가 전개되며 프로가 만든 영화 치고는 굉장히 거친 느낌의 스토리텔링과 감각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만만치 않았다.


28세의 어린 감독이 보여주는 팔딱거릴 정도의 날 것 같은 느낌은 그렇게 충무로의 주목을 받으며 시작되었다.

한번쯤은 봤을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포스터. 당시 꽃봄이라는 영화포스터 전문 디자인 회사에서 작업된 포스터도 꽤 파격적인 레이아웃이었다.

류승완 감독은 그 이후에 다찌마와 리, 피도 눈물도 없이, 아라한 장풍 대작전, 주먹이 운다, 짝패, 부당거래, 베를린을 감독하며(단편제외) 솔직히 망한 영화가 없었다.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승승장구하였고 한국에선 보기 드물게 '감독을 믿고 보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런데...

류승완 감독의 절친 정두홍 무술감독과 직접 출연한 영화 짝패

솔직히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을 보면 그 특유의 날 것 같은 느낌이 발목을 잡았다. 류승완 감독은 독특한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어느 정도 재미를 보장했고, 가장 장기라 할 수 있는 활극/액션 부분에 있어서는 항상 성룡 영화급의 재미를 주었다. 그런데 영화의 만듦새를 보자면 왠지 모를 촌티가 났었다. 이른바 쌈마이 B급정신. 그게 문제였을 것이다. 성룡을 보고 자라고 성룡을 가장 존경하는 류승완 감독에게 할리우드 영화의 퀄리티를 기대하긴 무리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연속된 영화 속에 일맥상통하는 쌈마이 느낌은 항상 2% 부족한 느낌을 주었다. 그 느낌을 좋아하는 팬들도 있긴 하지만 양날의 검이었던 것이다.

류승완 감독이 쌈마이라고?

류승완 감독을 보면 오버랩되는 감독이 몇 명이 있다.


우선 한국영화의 대표적 간판 감독인 강우석 감독이 떠오른다. 강우석 감독은 1988년 달콤한 신부들로 장편 데뷔해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미스터 맘마 같은 영화를 만들다가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로 시작해서 투캅스, 실미도, 한반도, 이끼 등의 영화로 굵직한 남성주의적 영화를 만들어 왔던 감독이다.


강우석 감독은 기존의 다른 감독과 궤를 달리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화를 스토리텔링 위주가 아니라 캐릭터 위주로 만든다는 점이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 역시 비슷하다. 스토리가 분명히 있지만 캐릭터들이 개성을 맘껏 발휘하는 영화를 만든다. 투캅스 이후 충무로의 대표적인 감독이 되었던 강우석 감독은 류승완 감독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여러 영화에 과감한 투자를 하게 된다. 어찌 보면 장르영화와 독특한 화법의 거룩한 계보인 샘이다.

 한국의 형사영화 계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인 '공공의 적' 주인공 강철중.

두 번째로 떠오르는 감독은 미국의 대표적인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인 데이빗 핀처 감독이다. 데이빗 핀처 역시 캐릭터의 비중이 강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만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데이빗 핀처 감독은 에일리언 3편을 시작으로 세븐, 더 게임, 파이트 클럽, 패닉룸, 조디악,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소셜 네트워크, 밀레니엄, 나를 찾아줘로 이어지는 명작들을 만든 감독이다. 그런데 류승완과 무엇이 비슷하냐면 초기작과 후기작의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이다.


데이빗 핀처 감독이 초반에 만든 영화는 특유의 날것 같은 폭발하는 에너지가 충만한 느낌이 있었고 뮤직비디오 같은 감각적인 화면에 더 많은 비중을 두었다. 그런데 조디악을 기점으로 영화적 화법과 스토리텔링이 가진 무게가 달라졌다. 특유의 감각적인 화면과 실험은 줄었을지 몰라도 캐릭터들에게 부여한 에너지는 더욱 배가된 영화를 만들었다. 또한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사회성 짙은 메시지는 묵직해졌다.

데이빗 핀처 영화중 가장 좋아하는 파이트 클럽

류승완 감독 역시 마찬가지다. 부당거래부터 달라졌다. 앞서의 영화도 분명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었지만 부당거래에 와서야 드디어 영화에 한국사회 문제점을 유도리있게 파해지며 묵직해지기 시작한다. 두 감독 모두 어느 시점부터 장인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보기좋은 칼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풀무질을 하고 뜨거운 쇳덩이를 두드리던 대장장이들이 드디어 명검을 만드는 장인이 된 것이다.

스토리 깎는 장인이 되어가는 류승완 감독

이제 류승완 감독에게 한국 영화계의 다크호스니 앙팡 테리블이니 하는 수식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말 그대로 한국을 대표할만한 베테랑 감독이다. 숙련된 전문가인 것이다.


2. 가오 새울만한 배우들


베테랑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에너지로 이끄는 자가 있다. 한국영화에서 이제 빼놓을 수 없는 배우인 황정민이다. 이 영화를 마라톤에 비교하자면 주인공인 서도철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 질주한다. 분명 남들이 보기엔 능글능글하게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는 듯 여유로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니다. 배우 황정민은 서도철 형사라는 캐릭터를 연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러너스하이를 느낀 마라토너처럼 영화를 즐기기 시작한다. 감독이 인터뷰에서 말했듯 처음부터 시나리오를 황정민에 맞춰서 썼다고는 하지만 이 영화는 황정민의 열연이 없었으면 분명 재미가 반감되었을 영화다.


특히 영화 중반 서도철이 부패 형사에게 말하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말하는 장면은 영화 속 서도철 형사의 열혈이 어디서 우러 나오는지 보이는 대목이다. 힘들고 지치고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박봉의 공무원을 하면서도 그는 한 번도 허리를 굽실거리지 않으며 머리를 수그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자신의 가오를 지키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누구보다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영화는 초반부터 전력질주한다. 황정민의 에너지가 없으면 영화의 재미는 반감되었을 것이다.

부창부수라 할만한 장면도 나온다. 이 부분은 다른 평론가들이 뺐어도 될만한 장면이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나쁘지 않게 봤다. 단지 단역으로 나온 줄 알았던 아내가 남편인 서도철에게 크게 한방 날리는 장면은 영화 전체의 맥락상 조금 튀는 장면이긴 해도 서도철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엿볼 수 있다. 믿을만한 아내가 있는 남편이 무엇이 두렵겠는가?


이 영화는 관객들이 지루해하거나 궁금해할 수 있는 스토리의 작은 가지들을 일찌감치 잘라내고 시작한다. 쓸데없는 이야기로 스토리를 쌓는데 쓰여질 시간을 절약하며 그 빈자리에 끊임없이 풍자와 유머로 채운다. 이것 역시 황정민의 힘이 크다고 본다. 한국에서 과연 어떤 배우가 동네 백수 아저씨처럼 건들건들 능글능글하고 어수룩하게 보이면서 독종같은 캐릭터를 연기하겠는가?

이 배역엔 황정민이 딱이었다.

헤이~ 브라덜~ 드루와~ 드루와~

조연의 열연도 만만치 않다.

이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조연이 등장한다.


유아인이 맡은 조태호의 오른팔인 유해진(최상무), 오달수(형사계 오 팀장), 장윤주(미스 봉), 오대환(왕 형사), 김시후(윤형사), 정웅인(화물차 배기사), 정만식(전 소장), 천호진(광수대 총경), 송영창(조회장), 배성우(매장 업주) 거기에 특별 출연하는 안길강, 마동석, 김응수까지... 현재 한국 영화계의 특급 조연들이 총출연한다. 한마디로 한국 영화계의 어벤저스 팀이다.

팀플레이 멋진 형사팀
전형적인 한국 대기업의 모습을 연기한 유해진과 유아인 팀

재밌는 점은 이 많은 출연자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어느 한 군데 삐걱거리는 곳이 없으며 모든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점이다. 솔직히 이런 영화는 '공공의 적'이후에 처음이다. 주연, 조연, 주인공, 악역까지 모든 배우들이 성공적인 캐릭터를 구축했던 영화는 한국에 그다지 없었다. 베테랑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진짜 숙달된  전문가들처럼 '그까이꺼 대충~' 해도 대사의 맛이 맛깔나게 나는 연기를 펼친다. 그래서 그런지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명대사 퍼레이드가 이어진다.

배우들의 애드립과 연기가 아주 찰지다.

특히 미스봉을 맡은 장윤주의 열연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녀는 영화계와 어울리지 않는 아우라를 가졌는데도 이 영화를 통해 미스봉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낸다. 미의 상징이었던 슈퍼모델이며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특급모델인데 영화는 그녀의 못생긴 얼굴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하고 그녀 안에 내재된 싼티를 잔인하게 끄집어 낸다(그런데 그게 굉장히 웃기다). 과연 그녀의 탈랜트는 어디까지 확장될지 궁금하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에 출연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전무후무할지도 모르는 미스봉 캐릭터. 이쁘다! 장윤주!

이런 금쪽같은 앙상블은 영화를 잘 조율한 류승완 감독의 힘이기도 하지만 배우들과의 화학작용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베테랑은 배우들 보는 맛이 아주 쏠쏠하다.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배우들도 정말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어서 빨리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 ㅎㅎ



3. 똥침 같은 사회고발


베테랑의 장점은 스토리텔링이 지향하는 지점이다. 영화가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하는가?는 이 영화에 굉장한 의미부여를 하게된다. 감독인 류승완은 부당거래에 이어 현재 한국사회에 존재한 부정부패와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일침을 가한다.


부당거래와 다른 점이 있다면 부당거래는 정공법에 가까운 범죄영화였다면 베테랑은 허허실실에 가까운 오락 액션 영화다. 사실 류승완 감독의 전작들을 보자면 이 영화에선 액션의 비중이 적다. 그런데 오히려 능수능란하다. 류승완 감독과 항상 합을 맞추는 정두홍 감독은 이제 류승완 감독이 어떤 걸 원하는지 너무 잘 아는 것 아닌가 싶다. 이 영화에서 만약 앞서의 류승완표 영화처럼 처절한 대규모 액션이 등장했다면 재미가 반감됐을지도 모른다.


또한 수위가 높은 폭력장면이 등장했다면 15세 이상 관람가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봐야 할 이야기를 어른들만 본다는 건 아쉽지 않은가. 빠른 스토리 진행, 액션의 절재는 결국 캐릭터들의 개연성 부여와 유머러스한 대사들이 채운다. 영리한 선택이다.

짜장면 먹을 시간을 유머로 채운다 ㅎㅎ

베테랑에 등장하는 악의 축은 사실 너무 익숙하다.


유아인이 연기한 재벌 3세 조태오는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아니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재벌 2-3세들의 나쁜 모습의 총집합체다. 마약사건에 연류 되었던 다양한 대기업 후계자들의 모습이 그러하며, SK그룹 최철원의 폭행사건이 떠오르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아들이 연루되었던 북창동 술집 종업원 폭행사건이 그렇다. 또한 대기업 후계자들과 상류층들의 마약 환각 파티, 여자 연예인 스폰서 등의 사건도 오버랩된다.

버르장머리 없는 재벌 후계자들. 이제 하루 이틀 본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어왔던 그 재벌들의 사건 처리는 어떠한가?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법칙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노동자들이 힘들어진 건 단지 사회적으로 힘들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임금을 체불하고 일방적인 부당해고를 이어가는 대기업들의 영향이 크다. 돈이 없는 노동자들은 항상 삶의 벼랑으로 내몰린다. 부자들은 어떤한 방법으로던 돈을 더 벌기 위해 사회적인 약자들을 착취한다. 한국은 이제 자살자의 비율이 1위인 곳이다. 그런데 언론은 삶에 지쳐 자살하는 대중보다 복에 겨워 우울증에 자살하고 감옥에 가기 싫어 환자놀이를 하는 대기업의 가족들에게 카메라를 돌린다. 노예 백 명이 죽어도 눈 깜박 안 하던 상인들이 지주하나 죽었다고 대규모 장례식을 치르던 중세시대와 다를게 없다.

88년 10월. 공주 교도소 이송 중 탈주한 미결수 12명 가운데 인질극을 벌이다 사살된 지강헌.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을 남겼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는 '무전노예 유전귀족'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계급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회적인 계급화는 결국 넘을 수없는 통곡의 벽을 만든다. 과거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을 만큼 열심히 일한자에게 보상도 있었지만 이제 개천에는 미꾸라지만 있을 뿐이다. 투망을 던지면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미꾸라지는 개천에 넘치며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 미꾸라지가 괴로워서 미친 듯이 꿈틀대도 소금을 뿌린다. 그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부익부 빈익빈의 현실이 점점 콘크리트처럼 굳어버리고 있다. 그게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오늘만 산다는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 현재 한국사회의 계급구조를 풍자했다.

영화는 그런 현실에 지친 우리 같은 대중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영화는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판타지를 심어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을 주인공과 동화되어 잠시 꿈을 꾼다. 베테랑은 바로 그 지점에서 쾌감을 안겨주고 통쾌한 느낌이 들게 한다. 현실에서 서도철 같이 독종 같은 형사, 오 팀장 같은 뚝심 있는 팀장이 과연 존재할까?


그런 면에서 이영화는 슬픈 판타지다. 분명 영화를 보면서 사이다같은 시원함을 맛보았지만 영화가 끝나고 극장의 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현실로 돌아온다.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줄 히어로 따윈 존재하지 않는 비참한 현실로 말이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하리 우리를 대신해서 비열한 사회에 뜨거운 똥침을 날려줄 영화 속 히어로를 어디에서 봤겠는가?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 지키느라 바쁘고, 아이언맨은 자기 기업 지키느라 바쁘고, 토르는 아스가르드 지키느라 바쁜데 코딱지만한 한국을 지키는 히어로 하나쯤은 존재해도 되지 않겠는가?

초능력따위 없어도 좋다. 발에 땀나도록 뛰는 영웅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베테랑의 아쉬운 점은 한 발을 절름거리는 캐릭터들이다.


분명 이 영화에 캐스팅된 유아인과 유인영 두 명은 자기들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베테랑들 사이에서 유독 베테랑스럽지 않아 보이는 두 배우의 어색함이다. 스마트함과 광기를 오가는 유아인의 연기는 박수를 쳐줄 만 하지만 간혹 너무 격앙되어 높은 톤으로 대사를 내뱉고 타이밍을 놓친것 같은 연기들은 굉장히 아쉽다. 물론 영화의 마지막에서 보여준 그의 광기 어린 연기는 같은 나이의 다른 연기자들과 비교할 때 굉장한 열연이었다. 나는 유아인이 빨리 30대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는 좋은 씨앗을 가진 배우고 앞으로 크게 자랄 나무다.

마지막에서 보여지는 광기어린 연기는 상당히 볼만했다.

유인영의 경우에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녀는 자신이 연기한 한참 잘 나가는 여자 연예인으로 보이지도 않으며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가 그다지 매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준 처참한 상황에서 내뱉는 대사와 연기는 더더욱 와닿지 않는다. 류승완 영화에서 조연급의 여성 캐릭터들이 수동적인 모습을 종종 보여주긴 하지만... 유인영의 연기는 어째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큰 발전이 없는 것 같다. 유인영의 미모는 완전 내 취향이지만 연기는 얄짤없다. 유인영의 연기를 이채영 같은 배우가 했다면 정말 잘했을 거다. 그래서 아쉽다.

뭔가 아쉬운 유인영. 이쁘니까 참는다. 에효...

베테랑은 최근 침체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영화다.


미국이나 중국, 일본 영화에는 있었지만 한국에는 없었던 것이 시리즈로 연결되는 프랜차이즈 영화다. 미국에는 더티 하리나 다이하드 같은 형사 영화가 있었고 중국에는 도신, 정전자 같은 영화가 있었으며 일본에는 TV 드라마와 연결되는 다양한 프랜차이즈 영화들이 있다. 그런데 한국은 이상하게 시리즈로 이어지는 영화가 몇 편 없었다. 아마도 그만큼 흥행한 영화가 없기도 했지만 신인감독들의 역량이 반짝 빛나고 마는 특수성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베테랑은 시리즈로 이어질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베테랑은 한국영화에 활력이 될만한 영화다.

음식이 오랫동안 사랑받으려면 그 맛의 조화가 뛰어나야 하며 오랫동안 먹어도 질리지 않아야 한다. 이 영화는 다소 자극적이고 하나 둘 빠진 맛의 음식을 조리하던 류승완 주방장이 드디어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백반 메뉴를 선보인 것 같은 영화다. 베테랑의 프랜차이즈 가능성은 그렇기에 존재한다.


시리즈로 이어지는 가능성 외에도 할리우드이나 다른 나라에서 판권을 사들여  리메이크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워낙에 스탠더드 하게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어떤 감독이 자신의 취향을 덧붙이느냐에 따라 다양한 느낌이 날 수 있다. 조금 더 유머러스하게 간다면 코믹영화가 될 것이고 조금 더 진지함을 덧붙인다면 느와르 영화가 될 수도 있다.

간만에 잘나온 영화다.

돈 아깝지 않은 영화를 선물해준 감독과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동안 한국영화의 침체기에 실망한 관객들에게 강추하고픈 영화다.

2편을 꼭 내줬으면 좋겠다. ^^


P.S.

박카스 너무 대놓고 PPL 하는 것 아녀? 좀 심하더라~ ㅎㅎ

하지만 이영화는 충분히 박카스 같은 영화. 영화 잘 골랐다. 박카스. ^^

덕분에 피로 잘 풀었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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