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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Aug 02. 2015

휴먼스(HUM∀NS)

영드

최근 본 미드/영드 중 가장 인상적인 드라마다. 

박진감이 넘친다거나 스피디한 전개는 아니지만 SF를 좋아하는 덕후로써 보기에는 굉장히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전개를 보이고 있다. 


이 드라마는 영국의 채널 4에서 방송 중인데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인간의 감정과 사회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주인공인 아니타(휴머노이드)를 중심으로 런던 교외에 자리 잡은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시대적 배경은 현재 시점이지만 한명의 천재로 인해 인간과 똑같은 휴머노이드가 같이 공존하는 패럴렐월드를 보여주고 있다. 


섬뜩할 정도로 인간과 유사한 로봇(섹스까지 가능한)이 등장하며 로봇 3대 원칙에 의해 모든 휴머노이드들이 통제되는 사회. 로봇들은 현재 우리가 초장기 할부로 사용하는 핸드폰처럼 사회와 가정에 배포된다. 이 드라마는 천재적인 지능으로 로봇의 진보(진화)를 주도했던 박사가 죽기 전에 만든 여섯 대의 로봇에게 그 3대 원칙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면서 과연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로봇이 인간과 같은 창의력을 가질 때 사회적으로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가감없이 보여준다. 

이 드라마의 흥미로운 점은 거대한 이야기가 아닌 가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잡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매트릭스, AD폴리스, AI, i Robot, 엑스 마키나 등을 통해 인공지능의 발달과 인간형 로봇의 발달이 인간에게 어떠한 결과를 보여주는지에 대한 영화나 소설은 많지만 이 드라마의 장점은 영국 드라마답게 일상적인 배경을 통해 시청자의 공감을 끌어내고 인간에게 도덕적/철학적인 질문을 자연스럽게 함으로써 스토리텔링의 구조를 탄탄하게 가져가는 것에 있다. 

충실한 가정부 역할을 하는 아니타

특히 붕괴되어가는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아름다운 여성형 로봇인 아니타(본명 미아)가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는 이야기의 시작점은 꽤 디테일한 드라마를 만들어 낸다. 인간의 감정을 가졌으면서도 '페르소나'라는 시스템에 오류가 생겨 다시 로봇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의 연기는 정말 매력적이다. 특히 주연을 맡은 잼마 찬의 표정과 연기는 아주 매력적이다.

신분을 숨기기위해 매춘부 역할을 하는 니시카

또한 주인공 외에 나머지 5명의 제한 해제된 안드로이드들의 이야기도 꽤 흥미롭다. 그중 여성형 휴머노이드인 니시카의 극단적인 스토리라인은 굉장히 신선하다.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매춘부로 일하다가 고객을 살해하고 불법 로봇 격투기장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로봇을 부수고 인간을 사냥하는 그녀의 모습은 인간들의 잔인성과 모순점을 찾아내는 설정임과 동시에 기존에 여러 콘텐츠에서 잠시 악역으로 등장하던 로봇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과학자와 철학을 이야기하고 도덕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결국 진화된 인공지능을 가진 휴머노이드가 인간행세를 하지만 아무도 구별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 드라마엔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등장하는데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1. 죽어가는 노인의 옆을 지키는 치매 걸린 휴머노이드의 에피소드

2. 임산부의 모든 보조역할을 하는 남성형 휴머노이드의 에피소드

3. 그 임산부가 결국 남편 대신 휴머노이드를 선택하는 에피소드

4. 가족의 보조역할이던 휴머노이드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하는 에피소드

5. 창녀촌에서 매춘을 하던 휴머노이드 니시카가 감정을 통제하는 에피소드

6. 인간의 일자리를 모두 뺐어버린 휴머노이드 때문에 시위하는 에피소드

7. 음악을 듣고 또는 달을 보고 감동을 하는 휴머노이드의 에피소드

8. 니시카가 헝가리 출신 영국 소설가 아더 캐스 틀러의 'Ghost in the Machine'을 보는 장면

9. 가정형 휴머노이드의 성인인증코드를 풀고 섹스하는 장면과 죄책감을 느끼는 장면.

10. 인간이라 생각했던 직장의 동료가 휴머노이드였던 장면. 등등..

병에 걸려 죽어가는 노인과 치매걸린 휴머노이드

공각기동대와는 또 다른 디테일한 휴머노이드의 묘사가 일품이다.(뭐... 사실 인간이 그냥 로봇흉내를 내는 것이니 디테일할 수 밖에 없지만...ㅎㅎ) 재작년 올모스트 휴먼(Almost Human)이라는 미드 역시 형사물+로봇의 테마로 SF 보는 재미를 주었지만 휴먼스는 그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또한 공각기동대(攻殻機動隊, Ghost in the Shell)의 원작자인 시로우 마사무네가 'Ghost in the Shell'이라는 제목을 아더 캐스틀러의 'Ghost in the  Machine'으로부터 가져왔다는 점은 드라마의 스토리라인 외에 미장센의 디테일함을 보는 나 같은 덕후에겐 또 다른 잔재미를 준다.

결국 동료들을 만나지만 페르소나가 망가져 원래의 자아를 찾을 수 없는 아니타(미아)

뻔해 보이는 스토리 설정으로 인해 미드보는 재미를 잃어버린 분들께 추천한다. 

휴머노이드, 로봇, 안드로이드, 인공지능에 대한 기반 지식을 가지고 보면 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즌1이 마무리되었다. 이미 시즌1에서 많은 떡밥을 회수하였지만 시즌2에서 연결될 또 다른 드라마가 궁금하다. 



아래는 주간동아 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 "한국판 케스틀러’를 기다리며" 에서 인용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eekly/2005/08/12/200508120500004/200508120500004_1.html


아서 케스틀러(Arthur Koestler, 1905~83)는 ‘한낮의 어둠(Darkness at Noon)’ 또는 ‘정오의 어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소설로 잘 알려진 영국의 비평가이자 소설가다. 원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 1922년부터 빈대학을 다니다 중퇴하고 독일공산당에 가입해 활동했으나 37년 스탈린의 ‘모스크바 대숙청’에 환멸을 느껴 탈당했다.

그 당시 스탈린은 혁명 동지이던 니콜라이 부하린 등을 ‘반혁명죄’로 몰아 처형했고, 이를 계기로 케스틀러는 소련 공산주의의 폭력성에 반발했던 것이다. 바로 그 사건을 소설로 묘사한 ‘한낮의 어둠’을 막연하게 알며 내가 미국 유학을 떠난 게 67년 2월. 그리고 나는 뜻밖에 그가 상당한 과학사 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학사 과목의 교재로 케스틀러의 책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분수령(Watershed)’이란 제목의 자그마한 페이퍼백이었는데, 케플러의 타원궤도설의 발견을 재미있게 묘사한 작품이었다. 내게 있는 그 책의 끝 장에는 67년 11월8일 밤에 책을 다 읽었다고 적혀 있다.


사실 ‘분수령’은 천문학 내지 우주관의 역사에 관해 쓴 과학사 책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 1959)’을 발췌한 것이다. 원래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케스틀러는 청년 시절 치열한 공산주의 운동과 신문기자 생활 등을 거쳐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지성인이다. 45년 영국인이 되기까지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신문기자로 활약했고, 스페인내란에 가담하여 포로가 되기도 했다. 하긴 1930년대 유럽 청년 지식인들이 대부분 그렇기도 했지만.


그는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지식인의 태도를 둘로 나눠 그 사이의 긴장 관계를 유지할 때 사회 발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나는 인민위원(코미사·commissar)의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명상가(yogi)의 태도다. 급진개혁을 추구하는 인민위원의 태도는 자칫 나선형의 모순이나 비탈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간디 같은 명상가의 태도로도 세상을 고쳐갈 수 없다.


케스틀러는 많은 책을 써서 큰 영향을 준 사람이지만, 죽고 나서는 갖가지 이상한 해석도 따랐다. 그는 세 번째 아내 신시아와 83년 3월3일 동반자살했다. 케스틀러가 마지막 가는 길에 아내를 교묘하게 유도해 동반했다는 말도 나온다. 그녀는 이렇다 할 건강상 문제가 없는 57세의 여성이었고, 케스틀러는 79세의 나이에 파킨슨씨병과 말기 백혈병까지 앓고 있는 환자였으니…. 또 그는 사르트르의 애인이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잠깐 동거한 적도 있는데, 그 이유는 사르트르를 싫어했기 때문이었다고도 한다. 98년에 나온 그의 전기는 케스틀러가 몇 명의 여성을 폭행했고, 영화감독 질 크레이기를 강간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여하간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천문학에 관한 유명한 저서를 남겼지만, 그는 생명과학과 심리학에 더 큰 관심이 있었다. 획득형질의 유전을 주장하는 빈대학 캄머러의 일생을 책으로 썼고(1971), 유산을 에든버러대학에 기부해 ‘케스틀러연구소’를 만들었다. 케스틀러연구소는 초능력, ESP 등 초심리학을 연구하고 있다.


오늘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인문사회와 과학을 아우르는 케스틀러 같은 지성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부도덕한 측면은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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