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ke Kim Sep 30. 2015

헬조선을 살아가는 무녀리의 비극

영화 <사도>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아직 영화를 안보신 분 중 사도세자를 모르는 분은 읽지 말아주세요. ㅋ




영화 <사도>는 익히 알고 있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담은 작품으로 '황산벌', '님은 먼 곳에', '왕의 남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라디오스타' 등을 만든 이준익 감독의 11번째 작품이다.


우선 사도세자의 비극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조금의 줄거리를  이야기하자면...


"재위 기간 내내 왕위 계승 정통성 논란에 시달린 영조(송강호)는 학문과 예법에 있어 완벽한 왕이 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인다. 뒤늦게 얻은 귀한 아들 세자(유아인)만은 모두에게 인정받는 왕이 되길 바랐지만 기대와 달리 어긋나는 세자에게 실망하게 된다. 또한 어린 시절 남다른 총명함으로 아버지 영조의 기쁨이 된 아들. 아버지와 달리 예술과 무예에 뛰어나고 자유분방한 기질을 지닌 사도는 영조의 바람대로 완벽한 세자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의 진심을 몰라주고 다그치기만 하는 아버지를 점점 원망하게 된다. 결국 영조의 선택은 점점 미쳐가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는 것뿐. 사약을 내리면 역모죄를 물어야 하고 내버려 두자니 그 패륜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한다. 왕과 세자로 만나 아버지와 아들의 연을 잇지 못한 운명,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가 시작된다."



1762년(영조 38년) 윤 5월 13일 벌어진 조선 역사상 가장 쇼킹한 왕실 스캔들인 임오화변(壬午禍變).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는 드라마의 소재로 자주 방영되었고 조선 역사상 가장 독특한 왕이었던 영조의 이야기 역시 몇 번 반복되어 조선역사 중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서 식상할 수 있는 이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 풀어갈 것인지가 이 영화의 핵심이다. 아래 4가지 키워드로 영화 <사도>를 설명해 보려고 한다.



영조의 집착과 불안

영조는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 때 왕비였던 희빈 장씨의 아들 경종과 달리,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는 미천한 무수리 출신이었고, 결정적으로 경종 시대 신임옥사를 거치며 즉위 이후 정통성 문제에 시달리게 되었다. 여러 야사나 일화에서도 평생 콤플렉스로 시달렸다는 얘기까지 있을 정도. 서른한 살의 조금 늦은 나이에 즉위하고도 조선왕 재위 기간 중 가장 긴 장장 52년(평균 재위 기간의 2배 이상)을 재위하며, 치적도 많이 남겼지만 말년에는 여러 비판점도 제기된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사도세자를 죽인 임오화변이 있다. 영조는 당시 예순아홉(재위 38년째)으로 역대 최고령으로 재위한 상태였으나, 그러고도 14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포악하며 불안한 호랑이 같은 모습의 영조


영화에 등장하는 영조는 다소 변덕 어린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인다. 기전 드라마에서는 단지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에게 태어나 장희빈의 아들 경종을 대신하여 왕위를 계승한 괴팍한 왕으로 나오지만 영화에서는 경종을 독살(경종이 좋아하는 게장에 독을 탔다고 함)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또한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신하들과 맺었던 불합리한 계약들은 왕의 권위를 세울 수 없게 한다. 왕이 되기 위해 노력했던 영조의 불안함이 송강호를 통해 전달된다.


어렵게 얻은 왕의 자리인 만큼 영조는 끊임없이 신하들의 눈치를 보고 자신의 외적인 모습에 집착하며 완벽주의를 추구한다. 화려하고 만사 평온할 것 같은 왕위지만 영조의 불안함과 신경질적인 모습을 보면 그 자리가 그리 편안해 보이지 않다. 그러한 스스로에 대한 결벽증과 완벽주의를 통해 얻은 스트레스는 아들을 통해 반영된다. 영조의 왕위에 대한 집착과 권위에 대한 슬픔이 비극의 전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유약한 세자와 신경질적인 영조


강압적인 대리청정

세자 시절의 초반 영조는 세자를 위해 손수 책을 쓰며 밤을 새울 정도로 극진히 아꼈다. 하지만 후반 부자 관계가 파국에 치달으면서 결국 사도세자는 영조 38년(1762년) 영조에 의해 기습적으로 폐위되고 스물여덟의 젊은 나이에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죽는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다. 영화에는 그 비극의 전조가 다양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영조의 세자에 대한 못마땅함은 세자가 공부를 멀리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래는 영화 대사가 아닙니다. 그냥 이런 뉘앙스)


"나는 내일 공부를 못하게 될까봐 불안하여 더 공부에 매진하였는데 너는 도대체 언제 공부를 하는 것이냐? 얼굴이 까만 것을 보아라. 밖에서 얼마나 놀고 다니는 것이냐?"


(세자) 저는 일년에 한 두번만 공부하고 싶습니다.


가뜩이나 왕위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고 있는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세자가 조금 더 공부하고 부족한 모습 없이 완벽한 모습이 되어 모든 신하들의 추앙하길 바랬고 자신의 모자람을 채워주길 바랬다. 하지만 세자는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부분의 어린아이가 늘 그러하듯 더 놀고 싶어 했다. 글을 읽을 시간에 선물 받은 개를 그리고, 예법을 배워야 할 시간에 내시들과 칼싸움을 한다. 결국 이러한 유약한 면은 영조의 눈에 나게 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영조는 세자가 어느 정도 청년이 되자 대리청정(왕의 집무를 대리하는 것)을 권유하게 된다.


세종의 한글 창제 역시 아들인 문종이 대리청정을 통해 이뤄낸 것이라 부추겼던 왕과 신하. 하지만 이 대리청정은 결국 세자를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이리 된 것 다 너 때문이야!!"라는 어투로 계속해서 총명한 세자를 몰아붙이는 영조와 더불어 옳은 선택을 하더라도 욕을 먹는 세자는 결국 작은 문제도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거기에 몇 번이나 "왕노릇 못해먹겠네!!!(노통이 생각나는...)"라고 말을 하며 세자를 극한으로 몰고 가는 영조의 모습은 흡사 바닥부터 시작해서 어렵게 일구어낸 집안을 만든 아버지가 자신의 욕구와 욕심을 아들에게 투영하는 우리네 부모세대들의 모습이 엿보인다.(물론 좋은 부모님이 더 많지만)


대리청정이 시작되자. 세자의 모든 것이 못마땅한 영조.


무녀리의 비극

우리말에 무녀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가 되어있다


무녀리[명사]

1. 여러 마리 새끼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새끼.

2. 말이나 행동이 좀 모자란 듯 보이는 사람을 비유한 말.


보통 돼지가 새끼를 낳을 때 첫 번째 태어나는 새끼를 무녀리라 부르는데 그 이유는 자궁의 문을 열다라는 뜻의 '문열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그 새끼는 착상 시 가장 마지막에 역순으로 자궁에 위치하기 때문에 태어난 새끼 중 가장 작고 연약하다. 또한 낳을 때도 첫 출산을 경험하는 동물은 난산을 겪게 되는데 난산을 겪은 새끼는 크면서도 고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자식들의 경쟁에서도 밀리는 경우가 많다.


무녀리라 불리는 돼지의 첫번째 새끼


보통 한국에서는 자식 중에 가장 안 풀리고 유약한 자를 무녀리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중에 첫 째를 무녀리라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첫 째를 키울 때 부모들은 그 경험이 적어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자식에 대한 기대감은 큰 상태이기 때문에 첫 자식이 가지는 압박감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식을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고 결국 자신이 무언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부모의 바람대로 미래를 선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부모의 재산이 많거나 권력의 위치에 있다면 그 첫 자식은 더 큰 보상을 받겠지만 과연 그런 집안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무녀리 자식들은 그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 다른 자식들보다 못 사는 경우가 많다. 또한 모든 출산이 그러하듯 첫 출산은 항상 힘들고 어렵다. 어른들의 말씀 중에 "어렵게 낳은 자식은 살면서도 어렵다"라는 말이 있는데 무녀리 자식은 그런 말대로 어렵게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쩌면 이런 무녀리의 모습이 바로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줄줄 딸린 동생들의 학비를 대고, 일찍 간 장가로 인해 가정을 부양하며 쇄약 해진 부모님도 모셔야 한다. '무녀리 자식이 효도한다.'라는 말은 그래서 탄생한 말이다. 무녀리가 효도하는 게 아니다. 그 모든 짐을 짊어지기 때문에 무녀리가 되는 것이다.


무녀리 자식으로 나오는 세자(유아인).


영화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라는 무녀리를 통해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지 극적으로 나온다. 어렵게 얻은 왕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체면치례를 세자에게 쏟아낸다. 가뭄이 와도 세자 책임이고 비가 와도 세자 책임이다. 또한 극의 절정에 이르는 대왕대비의 죽음 역시 세자 책임으로 몰아붙인다. 과연 이러한 압박감 속에 제 정신인 사람이 있을까? 세자는 그러한 완벽주의자이자 책임회피주의자이며 불안증을 겪는 아버지 영조로 인해 점점 정신분열증을 겪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기행(奇行)을 하기 시작한다.


대왕대비의 죽음과 함께 점점 미쳐가는 세자
세자를 점점 강도높게 압박하며 모든 것이 '네 탓'이라 책망하는 영조


역사에 따르면 세자는 다양한 패륜질을 하였는데 영화에서는 옷이 마음에 안 든다며 단 한명의 내시를 죽이지만 사실은 더 많은 수의 내시를 칼부림으로 죽였으며 아녀자를 강간하고 대낮에 관속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무덤을 만들어 그 안에 비구니와 무당을 모아 잔치를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대해 전국 곳곳에서 상소가 올라왔고 결국 세자의 어머니인 영빈마저 왕에게 아들을 죽여달라는 상소를 올린다. 영조는 결국 세자를 쌀을 담는 뒤주에 가두고 8일 만에 세자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집착과 비극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는 이러한 집착의 대물림, 무녀리의 비극이 한국에서 너무나 많이 일어나는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위해서 라는 이유로 잘 살던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하며 전세방을 전전하고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해주셨던 부모님은 자신들의 기대만큼 자식들이 결과를 내지 못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책망한다.


아이들이 바라지 않았던 미래를 자신의 욕망과 대치하며 투영해낸 결과는 어떠한가? 일부 서울, 연고대를 많이 보내는 고등학교와 in 서울 학교를 많이 보내는 학교주변위주로 서울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그러한 학교를 나오더라도 청년실업은 늘어나고 있다. "난 이렇게까지 했는데 넌 왜 그걸  못하니?!"라는 일부 부모의 집착에 가까운 책망은 결국 자식들을 코너로 몰게 되었고 세대 간의 갈등과 단절이 시작되었다.


오직 내새끼만 중요한 헬조선. (이쁘다 문근영)


영화를 보면서 영조의 대사와 사도세자의 모습은 조선이 아닌 현재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슬펐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라는 부모의 집착은 결국 자식을 병들게 하고 선택장애를 겪게 하고 있다. 행복을 뒤로 미루지 말라는 말이 있다. 내일의 행복이란 것은 없다. 10년 후에 행복하려면 바로 오늘부터 행복해야 하는 것이다. 올바른 가정이란 바로 그런 모습에서 비롯된다.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가져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신의 모습이 행복해야만 나중에도 행복해질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한가?"


영화에 보면 훗날 사도세자가 정조가 되는 아들인 세손에게 하는 말이 있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한가?"


시위를 팽팽히 당기고 쏘는 화살은 사람의 눈으로 보면 깨끗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허공을 날아가지만 그 화살은 꼿꼿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기와 맞부딪혀 몇천 번을 떨면서 포물선을 그린다. 헬조선에서 무녀리로 살아가는 법은 어쩌면 끊임없이 힘든 현실 속에서 노력에 노~오~력을 하며 누군가 보지 않는 곳에서 덜덜 떨면서도 포물선을 그리듯 사회적인 성공을 꿈꾸는 청년들의 힘든 현장 인지도 모른다.





P.S.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보다는 배우들의 연기력이 극을 끌어간다. 다소  지루해질 수 있는 중반에 배우들의 열연이 없었다면 영화는 굉장히 민망했을 것이다. 특히 대왕대비로 나오는 김해숙, 영조로 나오는 송강호, 사도세자로 나오는 유아인의 연기 화학반응은 정말 극찬을 하고 싶을 정도로 대단했다.



또한 조연들의 연기 역시 빛났다. 홍봉한 역의 박원상, 혜경궁 홍씨 역의 문근영, 영빈 역의 전혜진, 정순왕후 역의 서예지, 그리고 성인이 된 정조 역의 소지섭까지 정말 이 정도 배우들이 출연한 사극 영화가 과연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다.



같이 갔던 후배는 중반에 영화가 조금 늘어지자 잠시 코를 골며 자는 사태까지 있었으나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활의 시위처럼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사도세자를 알고 보던 모르고 보던 영화 <사도>는 전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영화다.


예고편

https://youtu.be/5fnafmdk63w


매거진의 이전글 흑백사진으로 표현하는 예술적인 누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