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규제와 검열 과연 합당한가?
한국 만화의 효시는 1909년 6월 2일 창간된 '대한민보' 창간호에 실린 '삽화(揷畫)'라는 이름의 이도영이 그린 1칸짜리 시사만화입니다. 이후 만화는 해화(諧畫)라고 불리다가 1923년 김동성의 '만화 그리는 법'을 발표했고 '만화'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한국 만화는 6.25 전쟁을 겪은 이후부터 다양한 주제로 발전되기 시작하였는데 만화를 통해 국민들에게 재미를 제공했고 김성환, 양정기, 김산호, 김광식 등 한국 만화의 1세대 선구자들은 당시 앞서가던 일본 만화의 형식을 보고 배우면서도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추구하였습니다. 1960년대 이후, 만화의 주요 판로였던 청소년 월간지에 일본 유명 만화가들의 작품을 도용한 해적판 만화가 다수 게재되는 표절의 역사도 있었지만 신동우, 고우영을 비롯한 많은 작가들이 한국적인 만화를 모색했으며, 김성환 등의 신문 만화 역시 한국 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갖 한국 만화가 꽃 피우기 시작했을 때 찬물을 끼얹는 결정적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만화를 금기어로 규정하였던 70년대 군부정권 시대의 개막과 함께 만화를 사회 5대 악 중의 하나로 규정, 사전검열과 까다로운 심의로 탄압하게 됩니다. 만화를 퇴폐적인 요소로 보아 만화 안보기 운동과 만화 불태우기 행사까지 열렸습니다. 그 시기에 시작되어 이후에도 유지되었던 만화 규제 항목을 보면 재밌는 내용이 많습니다. (물론 현재는 많은 부분 완화되었습니다.)
국군은 후퇴하면 안 된다 (국군의 명예 훼손)
쿠데타도 부정적으로 그리면 안된다. (박정희, 전두환 시절)
빈민가나 가난한 집안도 그리면 안된다. (국가 명예훼손)
아이가 어른에게 반말을 못한다. (예의에 어긋난다)
경찰이 강도에게 서라고 했는데 도망가면 안된다. 아니면 달아나도 반드시 잡혀야 한다. (공권력 무시행위)
어른에게 불온한 태도를 보이거나 반항, 거역하면 안된다. (강도에게 대드는 것도 안됨)
높으신 분은 떠오르게 그리면 안된다. (대머리도 그리면 안됨!)
어린아이는 불량하게 그리면 안된다. (비행소년 금지)
계모가 학대하는 것을 그릴 수 없다. (신데렐라는 가능)
역사만화에서 의병이나 농군이 죽창, 낫을 들면 안된다 (모두 몽둥이, 아니면 빗자루로 그림)
칼이나 창, 도끼같은 흉기들은 사람 몸에 닿으면 안된다. (폭력유발하면 안됨)
동물이 말을 하면 안 된다 (허무맹랑하다는 이유)
만화 속 가로선이 얼굴을 크게 주목하는 것도 안된다. (마치 얼굴을 찌를 것 같아 정서적으로 나쁘니까)
만화가의 필명은 사람임을 알수있게 개명해야한다. (성게군, 켈베로스 이런거 안됨)
만화책은 무조건 2권만 출판해야 한다. (나중에 자율화 됐음)
등장인물의 이름은 무조건 사람임을 알 수 있게 정해야 한다. (가스파드같은 거 안됨)
남매가 한방에서 자는 장면을 그리면 안 된다. (근친우려 또는 남녀칠세 부동석이니까!)
권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만화를 그리면 안 된다. (그렸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잡혀감)
연애를 하거나 데이트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남녀칠세 부동석!!)
이 시기는 '코주부', '라이파이', '짱구박사', '허떨이', '땡이', '꺼벙이', '도깨비감투', '임꺽정', '바람의 파이터', '독고탁', '각시탈', '심술가족' 등 제목만 들어도 만화 캐릭터가 떠오르고 있던 시기였고 만화가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활동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새소년>, <새벗>, <소년중앙>, <어깨동무>, <어린이 자유> 등 만화를 연재하던 월간 잡지들이 필독서같이 서로들 돌려가며 보던 시대였는데 정부에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 만화가 죽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이현세, 이두호, 허영만, 김수정, 고행석, 박봉성 등으로 대표되는 신진 만화가들이 잡지를 통해 등단하여 빡빡한 규제와 검열 속에서 보다 다양한 장르를 개척하였으며 황미나, 김진, 김혜린, 신일숙, 강경옥 등 여성 작가들이 순정만화를 발표하며 한국 만화의 지평을 넓히는 시기였으니 말이죠.
그렇게 겨우 인공호흡기를 끼고 연명하던 한국 만화계에 생명줄을 잘라낸 것은 1990년대 후반, 싼 값에 만화를 빌려주는 만화 대여점이 만화 유통의 중심을 차지하며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시켰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심폐소생술을 한 것은 웹툰이었습니다. 현재 웹툰이라 불리는 미디어 형태는 2000년대 초반 '마린블루스'를 비롯한 강풀의 만화를 통해 그 위치를 확고하게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후 야후를 시작으로 다음과 네이버라는 메이저 포털사이트에서 다양한 만화가들이 이 웹툰 플랫폼을 통해 데뷔하며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해외 어디를 보더라도 이렇게 파란만장한 만화시장을 보기 힘들 겁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만화가님들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그 다양한 탄압과 규제, 검열을 이겨내며 새로운 내용과 장르를 개척하였고 어떻게 던 살아남아 다양한 장르들을 발전시키며 현재의 위치까지 왔으니 말이죠. 어찌 보면 대한민국에서 만화가라는 직업은 슈퍼히어로와 맞먹습니다.
일본 작가 '아키하라 히로'의 '도서관전쟁(図書館戦争)'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고 인권을 침해하는 각종 미디어물에 대한 규제를 위해 마련된 '미디어양화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지난 일본이 배경입니다. '미디어양화법은'이 발동된 이후 모든 영화, 도서, 만화, 뉴스 등이 모두 탄압의 대상이 되고 그 탄압에 대항하는 자는 국가의 무력으로 제재를 가합니다. 이에 모든 검열로부터 자유로움을 명시한 '도서관법'에 근거한 도서관이 '도서대'라는 방어조직을 구축 저항한다는 내용이 기본 축입니다.
실제 소설의 내용은 도서대의 다양한 활동과 그 내부의 알력, 연애담 등을 소소하게 그려나가는 데에 치중하고 있지만 사실 그 내용의 근본을 보면 무서운 점이 많습니다. 미디어를 지배한다는 것은 단순히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뿐만아니라 대중의 생각을 지배하겠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분서갱유와 식민사관이 바로 그런 의미에서 자행되으니 말이죠. 그렇기에 현재 한국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콘텐츠 규제와 비교해보면 많은 점을 시사합니다. 이미 방송은 국가 권력에 장악되었고 언론은 제기능을 하지 못하며 국가를 비방하는 콘텐츠는 빨갱이 소리까지 들으며 종북 몰이 당하니 말입니다.
얼마 전까지 한국은 게임 is 마약이라는 논리로 셧다운제라는 걸 만들었고 마녀사냥을 통해 한창 발전하며 잘 나가던 한국 게임산업을 궁지로 몰아붙였습니다. 단 몇 년이었지만 이를 통해 한국의 게임산업은 초토화되었고 인디게임 제작자들은 미친놈 취급받았으며 몇몇 대형 게임회사만 편법으로 배를 불리는 기형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며칠 전 셧다운제를 폐지한다는 발표가 있었고 늦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방송통신위원회는 4년 만에 '만화 규제를 위한 웹툰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발표합니다. 하아..... 만화 죽이기 → 게임 죽이기 → 만화 죽이기 → 과연 그 다음은?
사실 이러한 웹툰 가이드라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드라마, 영화, 만화 등에 적용하고 있었고 그걸 더 강화하는 게 이번 조치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최근 있었던 넥슨 성우의 메갈지지사건으로 인해 만화가들이 부당한 처우를 당한 성우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고 여기에 독자들이 반발하자 몇몇 작가들이 독자들을 비하하는 글을 적었습니다. 사실 독자들이라는 벌집을 건드린 것이죠. 이에 독자들이 정부의 웹툰 규제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를 더해가고 있는 상황이라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지지/반대의 대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의 규제를 지지하는 쪽은 퀄리티 낮은 만화,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폭력적인 만화들의 수위가 이미 도를 넘어섰고 독자를 기만하는 만화가가 있으니 이번에 본때를 보여워야 한다며 당연히 검열당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적이고 규제를 반대하는 쪽은 이미 몇 번씩 찬물을 끼얹었던 만화계에 규제가 더 심해지면 창작의 자유를 침해받을 수 있다는 논리가 지배적입니다.
그런데 웹툰의 가이드라인이 새로 재정되고 만화를 규제하기 시작하면 50-70년대 일어났던 사건을 우리는 다시 겪게 될지도 모릅니다. 실력있는 만화가들이 제제의 압박 속에 창작의 자유를 속박당하거나 떠날 것이며 웹툰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들이 규제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아마 위에 쓰여진 내용 때문에 혼동이 오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만화의 검열과 탄압이 심했던 80년대에도 이현세, 허영만, 김수정 같은 만화가들이 나왔는데 규제를 한다고 해도 그때보다 자유로운 현재에 충분히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하시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검열과 탄압에서 살아남았던 만화가들의 입을 모아 말합니다.
김수정 작가는 아기공룡 둘리 애장판에서 "검열이라는 게 단순한 무소불위 권력에 지나지 않았다" 라며 분노를 쏟아냈으며 허영만 작가는 "이런 검열에 시달리다 보니 나중에 제대로 그리고 싶어도 그릴 수가 없더라, 걸리지 않을까 해서..."라고 회고했습니다. 심술통을 그린 이정문 작가는 "2000년대 와서 여자 팬티가 보이고 그리고 가슴이 보이는 한국만화 보면 와 이렇게 그려도 되냐?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그땐 절대로 안되던 것들이라..."라고 씁쓸하게 글도 남긴 바 있습니다. 이 시절을 겪은 만화가들은 참다못해 만화계를 떠난 사람도 허다했으며 당연히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탄하고 그때 당시의 검열제도를 비판하고 증오합니다.
정치적, 개념적 취향이 다름을 시사한 만화가에 대해 독자들이 보이콧하는 것은 당연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그게 단순한 사건을 통해 촉발되어 만화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는 일방적인 반대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작화의 퀄리티 낮은 만화들은 꺼지라는 논리라면 당시 다른 작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화가 떨어지는 강풀 작가는 데뷔도 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폭력 수위를 놓고 왈가왈부가 오고 간다면 일본 만화 '북두의 권'과 '베르세르크'는 수입되기도 힘들었을 겁니다. 선정성에 대해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라면 만화 외에 더 다양한 인터넷 공간에서 더 야한 내용의 콘텐츠가 유통되고 있습니다. 왜 유독 한국 만화만 이렇게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 걸까요?
만화를 자동차와 비교해서 말씀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국뽕몰이에 당해 한국차를 타는 거라며 같은 가격에 더 좋은 외국차가 있는데 왜 한국차를 타냐고 말하면서 한국만화도 마찬가지라고 하더군요. 이미 더 좋은 외국 만화들이 많은데 왜 질 떨어지는 한국만화를 보냐고 말이죠. 이와 같은 논리라면 한국에 존재하는 음악, 영화, 미술 등의 다양한 창작 작업들도 같이 매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한나라의 문화를 대변하는 창작 작업은 자동차와 다릅니다. 독자와 대중들은 단지 국뽕에 취해 그걸 만족하고 즐기는 게 아닙니다.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로서 우리의 현실과 더 많이 공감되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는 것이고 이미 해외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작품들과 콘텐츠이기 때문에 즐기는 겁니다. 또한 국산 자동차가 국가에서 규제되고 철저하게 검열당한 적이 있나요? "내가 지지한 작가들이 나를 매도했으니 그냥 너네 전부다 죽어라!"라고 말하는 논리는 섣부른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결국 규제에 찬성해서 정부에서 규제법이 만들어지면 자신이 지지하는 다른 작가들도 모두 규제받게 됩니다.
5공화국 시절 간첩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반공방첩을 외치며 대중들이 통제되었습니다. 옆집사람이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신고하였는데 우리 집에 있던 아버지도 같이 잡혀가는 일도 있었던 게 그 시절이었습니다. 이번 웹툰 가이드라인이 재정되고 그 효력을 발휘하게 되면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빈대 한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국의 만화는 꼭 법률화 된 규제가 아니어도 여성가족부, YWCA, 여시, 메갈 등의 페미니즘을 대변하는 조직을 통해 검열을 당하고 있고 진짜 이상한 만화의 경우에는 대중들에게 무시당해서 자연도태되고 있으며 폭력성, 선정성이 심한 만화들은 19금이 붙어서 유통되고 있습니다.
50년대 미국에서도 DC를 비롯한 만화책을 유해매체로 보고 불태우는 운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폭력만화에 대해 미국 정부는 만화 규제법을 마련하였고 결국 악당들은 우스꽝스러운 장난감이나 채소를 들고 등장하거나 초등학생들의 수돗물을 젤리로 만드는 등 어처구니없는 만화를 양산하게 됩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아톰의 원작자 '데츠카 오사무'도 대중으로부터 검열을 당해 분노를 표했던 적 있고 폭력과 성애 묘사의 선구자였던 마징가 제트의 원작자 '나가이 고'는 그의 만화를 쓰레기 취급하고 검열하려 한 PTA(학부모단체)와 맞서 끝까지 싸웠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일찍부터 규제를 완화하였고 일본은 국가로부터 심한 규제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어떤가요? 이제 미국은 만화가 다양한 콘텐츠의 기본이 되었고 영화산업으로 넘어오며 더 큰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화가 모든 콘텐츠의 기본이 되어 다양한 미디어 믹스를 통해 대중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다릅니다. 몇 번의 사망선고를 받았음에도 만화가들이 끝까지 피눈물 흘리고 버티며 이뤄낸 성공입니다.
살인이나 강간 등의 범죄가 잘못된 만화를 봤기 때문에 비롯되었다는 논리는 총질하는 겜을 많이 하면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는 논리와 같고 야동을 보기 때문에 성범죄가 늘어난다는 논리와 같습니다. 표절과 잘못을 일삼는 만화가가 성공하던 시절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습니다. 이미 만화를 소비하는 대중이 빅브라더 아닌가요? 그러니 정부 규제를 단지 일부 작가들의 과격함과 무지몽매함에 열 받아 쉽게 찬성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뿌리부터 인성이 잘못된 작가라면 일상생활도 문제가 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겠습니다.
한국 만화는 지금의 규제와 대중 검열만으로도 충분히 족합니다.
제발 만화가가 만화를 표현하고 싶은데로 표현하게 좀 내버려 두십시오. 창작자에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창문이 없는 감옥에 가두고 두팔을 묶은 채 푸른 들판과 하늘을 묘사하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본인 취향에 맞는 다양한 만화를 지지해 주시고 더 좋은 만화가 양산되어 그중에 옥석을 가릴 수 있도록 지켜봤으면 합니다.
그러니 만화 좀 냅둬요! 제발!
메인에 일러스트는 김정기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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