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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ke Kim Jul 03. 2015

ROADKILL

기묘한 이야기

이글은 2010년 7월 10일에 썼던 글이다.

실제 경험을 토대로 했다.


불 꺼진 시골길을 혼자서 달려본 적 있는지? 아니 혼자 드라이브하지 않아도 좋다. 간단한 상상과 실험을 통해 당신은 아무도 없는 시골길의 두려움을 미약하게나마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집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가 모든 불을 끄고 핸드폰만 켠다. 그리고 그 핸드폰을 거울에 비추고 거기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이 당신의 얼굴에 비치면 자신의 모습을 다시 거울에 비추어 보아라. 그럼 거기에 그로테스크한 모습으로 수만 가지 상상을 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혼자 운전하는 불 꺼진 시골길의 두려움은 그 것의 몇 배에 해당하는 공포가 엄습한다. 전조등을 비춘 30m 남짓의 정면은 보이지만 내차가 지나간 뒷모습은 백밀러에 보이지 않는다. 백밀러를 두세 번 보아도 뒤에 보이는 건 컴컴한 어둠뿐이라면 당신은 얼마 되지 않아 백밀러를 볼 수 없게 돼버릴 것이다.


백밀러를 비춘 차 뒷좌석에서 무엇인가 튀어 나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깊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 보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


홀로 떠나는 여행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시간은.. 가로등도 없고 달빛도 비추지 않는 시골길을 달릴 때 어둠에 마비되어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게 되는 바로 그 지겨운 시간이다.


당신이 내가 시킨다고 해봤을지 안 해봤을지 모르는 작은 실험과 잡설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올해 겨울과 봄이 맞닿은 시점에 목포를 거쳐 땅끝마을을 지나는 동안 경험한 기묘한 체험이다. 믿어도 좋고 안 믿어도 좋다. 단지 하나의 진실은 내가 그 것을 경험했고 몸이 허해서 헛것을 보았다고 치부해도 할 말은 없다는 것이다.


공포란 경험할수록 커진다. 아마도 믿지 않는 사람은 그런 기묘한 경험을 하지 못했던 사람일 것이고.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은 지상의 것이 아닌 미지의 존재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믿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공포란 믿고 상상할수록 커진다. 상상할 수 없고 믿을 수 없어서 그 때의 증거를 대라면 댈 수 있다. 여행하는 동안 나와 동반한 바로 지금도 몰고 다니는 내 차인 2005년식 검은색 쎄라토에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 것 역시 내 상상력에서 나온 조작이라 믿는다면 그때 그 장소에서 나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기억엔 공포에 쩔어 덜덜거리며 도로 곁에서 안전등을 깜빡이고 서 있는 내 모습 밖에 기억 못하겠지만....


하여간 이후의 이야기는 그때의 기억을 토대로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 세세히 적어 나갈 예정이다. 당신이 믿던 말던. 난 이미 그 때 두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



1. 로드킬(Roadkill)


덜컹!  


어두운 도로를 지나며 분명히 무엇인가를 보았다.

날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깊게 파인 고양이의 눈.

빤히 나를 보고 있지만 피할 시간이 없었다.

더위에 녹은  초콜릿처럼 이미 죽은 지 오래되어 도로에 몸통의 절반 이상이 붙어 있는 로드킬 당한 고양이.

아마 하루 이상이 지났을 것이다.

그런데 왜 아직 머리는 붙어있는 것일까...?


덜컹!  


보았다고 판단한 순간 나는 로드킬 당한 고양이를 밟고 어두운 시골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단지 내비게이션이 가르키는 대로 길을 달렸을 뿐인데 땅끝마을로 가는 길은 예전에 갔던 방향과 조금 달랐다.  


'내비게이션을 업데이트해서 그런가? 아님 추천 도로가 아닌 차량소통용 도로를 눌러서 그런가?'  


2시간이 넘게 불 꺼진 시골 도로를 홀로 달리다 보니 자꾸만 잡생각이 늘어난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모르는 길로 차를 돌릴 수 도 없는 노릇.

나는 익숙하지 않은 도로를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다.  


무료함과 슬슬 밀려드는 졸음을 달래기 위해 아이폰을 카오디오에 연결해 '김사랑 1집'을 듣기 시작한다.

이제 아저씨가 되어버린 김사랑. 얼마 전 티브이 인터뷰에 나온 그를 보고 나는 시간의 무서움과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다. 어린 천재. 서태지를 뒤 이은 하드코어 뮤직의 등장. 언론의 엄청난 관심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김사랑은 2집 발표 후 군대에 갔고 군대에서 돌아와 3집을 발표하였지만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힌지 오래다. 하지만 음악적인 재능이 어디 갔으랴. 조금은 부드러워졌지만 그가 가진 음악적 재능은 여전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1집이 좋다. 특히나 이렇게 무료한 시간에 듣기에는 그의 1집이 더욱 좋다. 어리기 때문에 치기 어리게 뿜어져 나왔던 그의 무시무시한 에너지는 '4D', 'Go'같은 음악을 들으면 느껴진다.


쿵쿵대는 오디오 사운드를 즐기며 다시 30분 넘게 달리자 이젠 졸음과 함께 피로가 몰려온다. 여행을 출발하기 전날까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며 밤샘 작업을 하다가 왔기에 몇 시간의 운전에도 남아있던 대미지가 슬슬 온몸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한다. 잘못 들어 온 길 때문에 지금 쯤이면 전주에 있어야 하는 나는. 어딘지 알 수 없는 충청도의 어느 시골 도로를 계속 달리고 있었다. 길옆에 차를 세우고 주차하려니 백미러를 통해 암흑뿐인 도로가 보인다. 전조등을 비춘 앞 쪽 역시 간간이 지나가는 트럭만 보일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까 차로 밟고 지나간 로드킬 당한 고양이의 눈빛이 자꾸 뇌리에 선명히 되뇌어진다. 점점 커지는 깨림직함은 아마도 그놈 탓이리라. 슬쩍 무서운 맘에  


"왜 그딴곳에서 죽어있어!"  


하는 말을 자꾸  쓸데없이 큰소리로 소리 내어 말해본다.

어서 고속도로로 휴게소에 들러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적지를 땅끝마을 대신 가까운 고속도로로 잡는다.  


3km.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고속도로가 있었고 시골길을 빠져나가려고 나는 액셀레이터를 밟아 속도를 올린다. 툭... 툭.... 갑자기 굵은 비가 앞유리에 뜨문뜨문 떨어지기 시작한다.  


'젠장. 오늘 세차했는데..'  


세차하면 그날 바로 비가 내리는 징크스는 일기예보 보다 강하다.

어서 이 고양이 뱃속 같은 도로를 빠져나가야 겠다고 생각하며 속도를 더 올린다.


머릿속엔 어렸을 때 보았던 "묘녀(猫女)", "묘곡성(猫哭聲)"같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 자꾸 떠오른다. 싸구려 고양이 분장을 한 여자가 입에는 피에 젖은 쥐를 물고 있는 장면이 자동재생하듯 눈 앞에 펼쳐진다. 5-7살 사이에 보았던 그 영화들은 어릴 때 나에게 충격으로 남았고 그 이후에도 고양이는 호랑이 보다 무서운 동물이 되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었던 시골고양이가 죽은 사람을 먹었다는 괴담은 다 큰 성인이 된 이후로도 고양이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한 요소중 하나였다.  


이제는 백미러를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공포감이 스멀스멀 커져갔다.

후두두두둑... 비는 이제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포감을 배가 시키는 빗소리를 지우기 위해 오디오 레벨을 20까지 크게 올린다.


급하게 내리는 소나기.

며칠 전까지 눈이 내렸는데 오늘은 비가 내린다.

어서 이 도로를 빠져나가야 한다.



2. 이명(Tinnitus)


한산한 시골 휴게소는 10시만 넘어도 불이 꺼진다.

프랜차이즈화 되어가는 고속도로 휴게소들은 휘황찬란한 빛을 내며 나방 같은 손님들을 끌어 들이기에 급급하지만 이미 오래전 만들어져 피곤에 지친 트럭들만 쉬러 들어오는 시골 휴게소는 12시가 넘으면 무덤처럼 조용하다.


갑자기 내렸던 비는 휴게소에 도착할 때쯤 멈추었다.

가뜩이나 깨림직한 생각으로 이곳에 도착한 나는 급히 화장실로 향한다. 싸구려 방향제와 퀘퀘한 냄새가 혼합된 그곳은 살짝 열린 창문과 유리문 사이로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며 조금은 삭막한 느낌이 났다.


찝찝한 마음에 바지 지퍼를 열고 고속도로를 달리며 쌓아두었던 뜨거운 오줌을 배출한다. 여자들은 모르는 작은 떨림을 느끼고 지퍼를 올리려는데 귀에서 조용하게 이명(耳鳴)이 들리기 시작한다.  


"소근소근....스스스스스스"

"스스스스스습...소락소락소락"  


지퍼를 올리다 말고 주변을 돌아본다.

귀에선 계속해서 '스스스스스습..스스' 하는 귓속말이 들린다.

가깝게 들리지는 않았으나 뒤쪽에 닫힌 좌식화장실에서 들리는 소리다.

잘못 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황급히 지퍼를 올리며 화장실에서 빠져나온다.

놀라서 뛰기 시작하는 심장과 갑자기 돋은 닭살을 진정시키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뽑아 차로 돌아온다.  


너무 뜨거워 입이 델 것 같은 커피지만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입김으로 후후 불어 빠르게 목구멍에 넘기기 시작한다. 식도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뜨거운 액체는 바짝 마른 입술을 적시며 식도에서 위로 흘러 넘어간다.


"에이~ 잘못 들은 거겠지?"  


잠시 느낀 공포감을 없애기 위해 소리 내어 말해 본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온 후에 느껴지는 정적감은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더 큰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스습스스스스습..스스'하고 귓속에 들렸던 이명은 화장실에서 멀어지며 들리지 않지만 기억 속에서 소리가 계속해서 울리기 시작한다.  


"피곤하긴 한가보다. 음악... 어떤걸 들어볼까나? 잠깐 눈이라도 붙여야지 안되겠네..."


서둘러 다시 큰 소리로 혼잣말을 하고 아이폰을 오디오에 연결해 'Incognito'의 흥겨운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는다.  하지만 5분이 채 되지 않아 눈을 뜨고 자동차에 시동을 건다.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동안 누군가의 대화 소리라고 생각했던 그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스스스스스' 하는 그 소리는 대화 소리가 아니고 바닥에 무언가 끌려가는 소리였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면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었던 것이다. 생각하기 싫지만 사람이 아닌 무엇인가가 화장실에 같이 있었다는 생각에 다시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바람에 날리는 비닐이나 종이봉투의 소리였을 것이라 스스로 자위하며 볼륨을 높이고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부우우웅~ 소리를 내며 엔진이 다시 과열되기 시작한다.


잠시 정신을 놓고 운전하는 사이 속도는 160km를 넘었다.

아까 내린 비에 사고가 날까 걱정돼 서서히 엑셀레이터를 발에서 떼며 속도를 줄인다.  

순간 고속도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야생동물 출현!'


산골을 넘는 고속도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지판.

정부의 무분별한 도로확장 계획으로 간간이 야생동물들이 고속도로로 넘어온다. 아마 그 동물이 작으면 상관없지만 노루나 멧돼지 같은 덩치가 큰 동물이라면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발생시키는 장애물이 된다.


한 템포 늦게 내비게이션에서도 "야생동물 출현지역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라는 멘트가 나온다. 뜬금없는 멘트에 깜짝 놀라 내비게이션을 쳐다본다. 안내 멘트와 함께 붉은 빛이 점멸하며 500m 앞의 경고 지역을 알려준다.


"야생동물 출현지역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야생동물 출현지역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야생동물 출현지역입니다. 속도를 줄이세요"


몇 번씩 같은 멘트를 반복하며 붉은 빛이 점멸한다.  



3. 괴이(Strange)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눈을 돌려 머리 위로 지나가는 표지판과 주변을 살핀다. 붉게 타오르는 가로등 때문에 시골 도로를 빠져나 올 때 느꼈던 적막함은 없지만 '야생동물 출현! 안전운전!'이라는 경고가 묘하게 느껴진다.

벌써 3개째의 야생동물 출현 조심 표지판을 지났지만 이 주변에 야생동물이 살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카오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Incognito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휴게소에서 느꼈던 소름을 서서히 떨쳐낸다.


6번째? 7번째? 정도의 음악이 나오기 시작할 때 저 멀리 도로 중앙에 무언가가 보인다.

500m 전방? 아니 그것보다 더 멀지 모른다.

사람보다 조금 작은 검은 색 물체가 도로 중앙에 누워있었다.

처음 봤을 땐 동물이라 생각했기에 크기를 작게 생각해서 가깝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것. 은. 분명 어린 소녀정도의 크기였고 점점 다가갈수록 동물이 아닌 인간의 형체였다.

누워있다 생각했던 그. 것. 은.  달팽이처럼 서서히 기어서 도로를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조금 더 가까워 졌을때 그. 것. 이 사람이 아님을 느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지만 사람의 살이라 생각할 수 있는 피부는 보이지 않았고 굵고 거친 털로 뒤덮힌 무.엇. 이었다.


핸들은 잡은 손이 점점 '드드드드'하며 떨리기 시작했다. 손을 떼어 진정하려 하지만 순간접착제로 손을 붙여놓은  것처럼 핸들을 잡은 손은 뜨거워만 질 뿐이다. 마음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500m 300m 점점 그. 것의 실체를 느끼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입에서 욕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어어어어?? 아악! 씨발!!! 아아아 아아!!! 악!!!"  


욕은 점점 비명으로 변했고 손을 통해 시작된 떨림은 머리가 울릴 정도로 전해지기 시작했다.  온몸에 털끝이 곤두서며 몸에 도는 뜨거운 피가 순간 멈춘 것 같았다. 멀리 보이던 무.엇.이 형체도 없는 고개를 돌려 내쪽을 바라본다. 거기에 어둠보다 더 어두운 형체로 깊게 파인 구멍이 보인다. 그리고 무. 엇은 입을 벌려 숨을 쉬듯 검은 배설물들을 내뱉기 시작한다.


끼이이이익!!!!!


급히 밟은 브레이크. 차가 좌우로 술 취한 듯 흔들거린다.

핸들을 급하게 좌우로 돌리며 사고가 나지 않게 균형을 잡는다.


번쩍. 헤드라이트의 불이 불빛이 그. 것. 을 비춘다. 50m? 아니 10m 전방에 그것이 내쪽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한숨 토하듯 내뱉는다. '울컥'하는 덩어리를 내뱉고는 다시 내쪽을 뚫어지게 쳐다 본다. 얼굴이라 생각되는 그놈의 일부가 내쪽을 바라보자 눈이 있어야 하는 두개의 구멍 안쪽이 빛을 반사하며 껌뻑거린다. 덜덜거리는 마른 입에선 끊임없이 쌍욕이 튀어나온다. 아무래도 부딪힐 것이라 포기한 나는 브레이크를 밟았던 발을 놓아 버린다.


순간 눈 앞에 보였던 그 털 뭉치가 사라져 버리고 나는 핸들을 돌려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다. 방금 로드킬 하는 순간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스스스스스습..시치지지즈즈치이이'  


이번엔 티브이에서 들리는 잡음과 같이 그 소리가 났다. 고개를 핸들에 파묻고 아직도 몸의 떨림은 멈추지 않는다.

다리에 힘이 풀린다는 말이 이런 것 이었을 줄이야. 허리 아래의 부분이 움직이지 않았다. 힘을 주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귀에선 계속 헤서 이명과 노이즈가 들린다. 로드킬 하는 순간 바깥에서 들렸던 이명은 이제 차 안에서 들린다.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습...스...스...습...치이..습..치이이...스스스...."


코에서 비릿한 냄새가 난다. 손은 차갑게 식어 덜덜거리며 떨고 있다. 머리는 땀에 범벅이 되어 축쳐졌고 다리는 브레이크를 꽉 밟은 채 떨어지지 않는다. 귀에서 들리던 이명은 이제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크게 들린다. 뒤쪽에서 말이다. 아무도 없는 세라토의 뒷 좌석에서 내 머리를 향해 차갑고 끔찍한 그 소리가 내뱉어지고 있었다.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규칙적인 반복.


'그. 것. 이.. 내 차에 타고 있다.'  


속으로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라 공포는 더해진다. 머리 위의 백미러를 보기로 한다. '분명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분명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용기를 내기 위해 속으로 끝없이 되뇌며 백미러를 슬쩍 본다. 등줄기부터 올라오는 서늘함. 발가락  끝에서부터 소름이 돋아 머리 끝까지 올라온다. 백미러를 통해 힐끔 쳐다보고 있는 내 얼굴 뒤로 뒷좌석의 그. 것. 이 형체를 드러낸다. 긴 머리를 온몸에 늘어뜨리고 피범벅이 되어있는 사람의 얼굴이 언뜻 보인다.


그. 것. 의 입에선 진흙같이 끈적한 토사물이 피와 함께 흐른다.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엔 눈이 있지만 사람의 형체가 아니다.

코가 있어야 할 자리엔 코가 보이지 않고 그르렁 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옷은 보이지 않는다. 몸도 보이지 않는다.

단지 보이는 것은 머리뿐.  


"습...스...스...습...스스스....그르릉..스습"


입을 벌리고 그 것이 날 바라보고 있다.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는 위협으로 느껴진다.


"아.. 아.. 흐... 흑.. 하..."


소리를 지르려고 노력하지만 허파에서 공기가 빠진 듯 큰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코피 때문에 난다 생각했던 비린내는 그. 것. 이 입으로 흘리는 토사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입을 벌려 말하려 할수록 그 끔찍한 냄새가 공기를 통해 후각을 자극한다. 눈을 질끈 감고 어서 이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습...스...스...습...스스스....그르르르르..스습"


점점 소리는 귀가 멀정도로 크게 들린다.

뜨거운 눈물이 감은 눈 사이로 줄줄 흐른다.  


'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한테 왜??? 왜!!?'  


큭큭거리며 소리 나지 않게 울던 나는 방언 터지듯 큰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벌린 입술과 오열사이로 찝지름한 눈물과 콧물이 입으로 들어온다. 큰소리로 울고 있는 사이 지옥 같은 정적이 흐른다. 온통 눈과 코에서 나온 분비물로 얼굴이 뒤덮인 나는 다시 살짝 눈을 뜨고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이번엔 뒤가 아닌 앞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이 떠지지 않는다.  


"키키킥킥킥킥...끄끄끄끅.."


그. 것. 의 웃는 소리가 들린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눈을 뜨고  뒤쪽을 바라본다. 인간의 눈알이 아닌 동물의 눈알을 얼굴에 박은 그놈이 온몸을 바르르르 떨면서 나를 보며 웃고 있다.  


바르르르...바르륵

바르르르...바르륵


인간의 것이 아닌 떨림으로 아니 동물이 보여줄 수 없는 떨림으로 온몸에 털을 곤두세우고 그 것이 떨고 있었다. 아니 위협하고 있었다. 갑자기 놈의 형체가 차 안을 가득 채우고 습한 어둠이 엄습한다. 토할 것 같은 역한 비린내가 코 끝으로 전해진다. 눈 앞이 하얗게, 다시 붉게, 어둡게 변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정신을 잃었다.



4. 노크(Knock)


"똑! 똑! 똑똑똑!!!!"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차 밖에서 누군가 창문을 두드리고 있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핸들에 웅크린 채 나는 미친 듯이 떨고 있었다.


"여봐요! 괜찮아요? 문 좀 열어 봐요!"


40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시 굵은 눈물이 수도꼭지를 틀어 놓은  것처럼 흐른다.

말을 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쿵쿵!!"

"이봐요! 괜찮아요? 왜 그래요?"


심장의 두근거림은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아무 말없이 손가락을 더듬어 문짝에 있는 'Lock'버튼을 눌러 문을 연다. 달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다. 말하려 노력하지만 아직도 입에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쿨적거리는 절재 된 울음만 나올 뿐이다.


도움주러온 아저씨는 차 안으로 손을 넣어 내 몸에 감겨있던 안전벨트를 풀어준다. 다리에 힘이 빠진 나는 옆으로 휘청이며 차 바깥으로 떨어진다.  


"어..? 어어? 이 사람 왜 이래? 이봐요!?"


놀란 아저씨가 진흙탕에 빠진 나를 부축하여 다시 일으켜준다. 다리에 힘이 빠져 부축해 주어도 자꾸 쓰러질 뿐이다. 갓길에 탈진한 날 눕히고 아저씨가 급히 가져온 생수를 얼굴에 뿌리고 입술에 흘려 넣어 준다.  


후~~~~~~~~~~~~~~~~~~~~


깊고 긴 한숨이 허파가 달라 붙을 때까지 나온다. 아저씨는 계속해서 나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지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정신을 차렸을 때 내차를 보았지만 차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단지 바퀴에 진흙이 묻어 있을 뿐....... 잠깐. '진흙?' 얼핏 진흙탕이 묻은 뒷바퀴에 동물의 털 뭉치와 함께 고양이의 파편이 붙어 있었다.  


"뭐라도 봤어요?"


아저씨의 질문에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흐흑... 저기요. 저 다음 휴게소까지만.. 아저씨 차를 따라가면 안될까요? 이상하게 생각되신다면 제 신분증 드릴게요. 흑흑흑..쿨쩍"


아저씨는 황당하단 표정으로 혼자 운전할 수 있겠냐고 물어본다. 나는 조금은 힘이 돌아온 다리를 움직여 후들거리며 다시 내차로 걸어간다. 그리곤 차에 있는 모든 문을 열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한다. 바깥에서 보아도 차 안쪽은 깨끗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부 세차까지 해둔 상태라 차 안은 깨끗하기만 하다. 뒷 쪽의 트렁크를 열어 봐도 가방과 자질구래 한 소품만 보인다.


그. 것. 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 것. 이 토해냈던 토사물도 없고 이제는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음 휴게소까지만 도와달라는 말을 다시 한다.  


"죄송하지만 담배 한대만 피고 가도 될까요?"  


이제 울음은 멈췄고 온몸에 남아있던 소름과 떨림은 멈췄다. 아저씨는 차로 돌아가 담배 피우고 따라오라 말하며 비상등을 끈다. 매캐하지만 달콤한 니코틴이 허파로 들어오자 식은땀과 함께 정신이 돌아옴을 느낀다. 차에 시동을 걸고 아저씨께 인사를 한다. 먼저 출발한 아저씨의 뒤쪽에서 차를 몰며 창문을 내려 모두 연다.


겨울과 봄의 사이.

차가운 바람이 살갗을 파고든다. 뒷바퀴에 붙은 고양이의 시체는 휴게소에 가면 깨끗이 떼어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다음 휴게소에서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때 본 것이 무.엇. 이었는지..

시간이 지난 지금은 나 역시 내 경험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글을 쓰고 있는 내내 나는 불 꺼진 곳에서 글을 쓰지 못했다.


그. 것. 이 무엇 이었냐고?

글쎄? 나도 모르겠다.  


지금 기억을 더듬어 생각나는 것은 위에 서술한 것과 다름없다.

검은색 털 뭉치라는 것밖에.

그리고 그때 보았던 그놈의 눈빛은 아직도 기억에서 꺼내기 괴롭다.

마치 인위적으로 붙여 놓은 박재 된 동물의 눈.

그리고 오래된 부둣가에서도 맡기 힘든 역한 비린내.

피범벅의 얼굴과 동물의 것을 넘어선 떨림.


혹시라도 혼자서 시골 고속도로를 달릴일이 있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잊어 버려라.

어쩌면 그. 놈이 당신 눈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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