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에 숨겨진 메타포와 이스터에그들 해설
놉(NOPE)을 만든 조던 필 감독은 제가 번역 게시판에서 '조동필'이란 가명을 쓸 정도로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 중 하나입니다. 데뷔작인 '겟 아웃(Get Out)과 차기작인 어스(Us), 그리고 TV로 넘어와 '환상특급'의 리메이크까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호러가 섞인 환상문학과 오컬트, SF 장르에 있어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 일어난 기이한 사건을 디테일하게 보여주어 공포감을 유발하게 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과거 많은 사람들이 사랑했던 TV드라마인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는 1950년대 시작한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 시리즈를 너무 좋아해 몇몇 지인분들과 팟캐스트를 2년 가까이 할 정도로 이런 기묘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특히 환상특급의 오리지널 흑백 버전 시리즈는 현재 할리우드에서 보고 있는 모든 호러와 SF, 판타지들이 보여주는 스토리의 시초를 담고 있어서 요즘도 그중 레전드 몇 편은 다시보곤 합니다.
조던 필은 1974년생으로 저와 비슷한 덕질 과정을 겪었을 겁니다. 먼저 1985년 재방영된 환상특급 시리즈를 보며 자랐을 테고 저와 비슷한 시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열광했을 것이며 1990년대 폭발적으로 세계에 알려진 다양한 일본 만화와 콘텐츠를 보고 자랐을 겁니다. 그중 오컬트와 음모론, 환상특급의 세계에서나 벌어질 것 같은 현실 속 미스터리들에 두 눈을 초롱 거리며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는 것이 그가 만든 영화와 TV시리즈들을 보면 뚝뚝 묻어납니다.
많은 분들에게 충격과 새로움을 안겨준 겟 아웃을 보며 다양한 해석과 감상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먼저 생각나는 것은 환상특급의 에피소드였습니다. 1985년 브루스 윌리스가 도플갱어로 등장하는 '파산의 날 (Shatterda)'과 가상공간에서 행복을 찾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또 다른 세계 (Dreams for Sale)', 1960년 오리지널 에피소드로 얼굴을 바꾸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4번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넷은 죽어가고 있습니다(The Four of Us Are Dying)'까지 '겟 아웃'은 오래전 환상특급에나 나올법한 기괴한 내용에 호러, 인종문제, 사회문제를 뛰어난 연출과 음악으로 절묘하게 엮어서 대중들에게 내놓고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차기작인 <어스(Us)>를 보고 느낀 점은 '환상특급'의 짧은 에피소드를 길게 늘여놓은 것 같다는 느낌과 겟 아웃에 비해 참신하지 못한 소재, 은유를 너무 넣는 바람에 떨어진 이야기의 밀도였습니다. 물론 모든 감독들이 매번 명작을 뽑는 것은 아니기에 그 다음작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하다가 보게 된 게 조던 필 버전의 환상특급인데... 이 역시 오리지널 환상특급에 비해선 이야기의 참신함이 많이 떨어지더군요. 아마도 환상특급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를 보여줘서 오는 피로감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미 대중들은 너무 많은 것을 보아왔고 너무 많은 오리지널의 변주를 보아왔기에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엔 거대한 장벽이 생겨버린 탓이겠지요.
그러다가 이번에 공개된 그의 3번째 영화 <놉(NOPE)>을 보게 됐습니다.
결론은 아~ 내가 너무 성급하게 평가했구나. 이 사람은 뼛속까지 덕후고 그 덕질을 펼치는 게 이제 시작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재미부터 은유, 오마주와 패러디를 넘나들며 보여주는 덕심의 폭발, 화면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에너지까지 이빨과 발톱을 감추고 있던 호랑이가 드디어 포효하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비약적이긴 하겠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보여줬던 영화적 재미와 경이로움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아마도 이 영화는 호불호가 크게 나뉠 겁니다.
그 이유는 조던 필이 이 영화 안에 정말 다양한 오마주와 은유를 심어 놓았고 그것들이 모두 과거의 명작 콘텐츠들에 기반하고 있기에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만화, 오컬트, 종교, 인종, 역사 등등 많은 것들을 덕질해온 덕후에겐 종합선물셋트 같을 것이고 그 반대되는 관객에겐 그냥 어느 정도 잘 만든 영화로만 인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영화를 보며 중간에 박수를 칠뻔하고 박장대소하고 마지막엔 경외감마저 들었던 이유는 제가 보았던 다양한 과거의 명작들을 변주한 것이 보였기 때문이고 조던 필 감독이 그 작품들에 찬사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부터는 이 영화를 더 재밌게 보기 위해 어떤 과거 작품들이 인용되었고 변주되었으며 큰 맥락에 있어 어떤 키워드로 은유된 장면이나 스토리를 해석해야 하는지 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관객과 영화, 미디어와 스토킹 같은 관찰자와 피관찰자의 시선에 대해 정리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영화의 중요한 내용이 나온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이 영화를 보며 기묘한 장면이라 인식하는 것 중 하나가 침팬지 고디의 대학살이 있을 때 신발이 바로 서있는 장면이었을 것이라 봅니다. 아마도 이 장면에 뭔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저는 가장 첫 번째 떠오른 것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검은 비석 '모노리스'와 그로 인해 진화한 유인원들이 도구를 사용하며 저지르는 과격한 폭력이었습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이 정체불명의 '모노리스'는 인류를 진화시키는 기적으로, 우주를 여행시키고 차원을 가로지르는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신발을 모노리스와 동일하게 보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만 그 장면 자체에 등장하는 두 가지 요소, '이상하게 일어서 있는 납작한 무엇'과 '유인원(침팬지)의 폭력'은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봤던 첫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놉>에서 전체적인 기조로 흘러가는 질문인 '나쁜 기적이란 무엇일까?'를 대입하자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긴 합니다. 서양 미신 중엔 오래되고 낡은 신발에 악령들이 드나드는 통로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기서 악령이란 악마를 뜻하는 것도 되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영혼도 포함됩니다. 그 시작은 영국에서 광부가 죽었을 때 식탁 위에 그의 신발을 올려두는 풍습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서양에선 오래전부터 신발에 인간의 영력, 또는 마법이 깃든다고 믿어왔습니다.
예를 들자면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 라이먼 프랭크 바움의 <오즈의 마법사>가 그렇습니다. 빨간 구두에선 장례식에 빨간 구두를 신고 간 카렌이 죽을 때까지 춤을 추다가 결국 발을 자른다는 이야기가, 오즈의 마법사에선 도로시가 토네이도에 휩쓸려 마법 대륙 오즈에 떨어졌을 때 얼떨결에 집에 눌려 죽게 된 마녀의 빨간 구두(원작은 은색 구두)가 그렇습니다. 특히 빨간 구두는 이야기 중 카렌의 멈추지 않는 춤을 보여줄 땐 까치발로 발을 세우는 '를르베' 동작을 많이 합니다. 모든 인체의 무게가 발 끝으로 몰리는 상황이 발레리나가 아닌 일반인에게 계속된다면 엄청난 저주가 될 겁니다.
어쩌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상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일,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걸 기적이나 저주로 보았던 것 같습니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차를 우릴 때 뜨거운 물을 찻잔에 부었는데 그 안에 소용돌이치며 찻잎이 일어나는 것을 길조(행운)로 봤습니다. 반대로 서양에선 신발이 매력적으로 보인다거나 있으면 안 되는 공간에 있을 때 유령이나, 정령, 악마들의 장난으로 봤습니다. 그러니 영화에서 신발이 일어선 장면은 기적이긴 하되 불행과 저주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나쁜 기적'인 것이죠.
영화적 상황을 돌아보자면 극 중 아시안인 주프(스티븐 연)가 위기의 상황 보게 된 일어난 신발은 그에게 기이한 장면이었을 것이고 그걸 보았기에 침팬지 구디의 대학살에서 살아났다고 오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화에선 성인이 된 주프가 당시 대학살의 현장에 있던 사물들을 모으고 있고 그중엔 신발도 같이 있었으니 그는 오랫동안 나쁜(잘못된) 기적을 믿고 자신이 선택된 자라 오해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영화의 도입부가 지나면 한가로운 전원풍경에 주인공인 OJ와 그의 아버지가 말목장을 돌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굉음이 잠시 나다가 조용해진 후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그다음 장면에선 눈에 동전이 박혀 사망한 아버지와 엉덩이에 열쇠가 박혀 있는 흰색 말이 보입니다.
여기서 동전과 열쇠는 성경구절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요한계시록 6장 2절을 보면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흰말은 아버지가 타고 있던 '고스트', 말에 탄자가 활을 가졌다는 것은 총을 든 카우보이인 '오티스(아버지)'를 가리킬 겁니다. 성경과 신화에서 흰색 동물은 신성과 순결을 뜻합니다. 또한 양이나 소, 말 등은 신 또는 악마에게 바치는 번제의 제물로 쓰였으니 고스트가 목장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고 승리를 이어왔던 전사(천사)가 죽음을 당했다는 건 나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됐습니다.
이후 요한계시록 8장은 종말의 심판을 담당하는 일곱 천사의 등장, 9장은 그 천사들의 행동과 결과를 보여줍니다. 그중 8장 5절은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큰 소리가 난 후 무언가 땅에 떨어지고 9장 1절을 보면 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여기서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동전', 무저갱의 열쇠는 흰말 엉덩이에 꽂힌 '열쇠'가 될 겁니다. 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의 열쇠를 사탄의 비밀을 아는 지혜, 사망과 지옥의 문을 여는 보물로 봤습니다. 영화에선 이 두 가지 물건이 곧 종말과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키워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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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인 오티스의 눈에 박혀있던 동전의 제조년도는 1974년인데 이는 조던 필 감독이 태어난 해입니다.
이스터에그로 넣은 것이겠죠?
영화에서 주프의 비극을 알리는 상징은 신발, 풍선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만 유심히 봐야 드러나는 상징도 하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오후 6시 13분에 벌어진 두 가지 사건인데 그중 첫 번째 사건은 침팬지 고디의 대학살입니다. 고디의 생일선물로 준 풍선이 터진 게 오후 6시 13분, 주프와 UFO의 만남이 6개월 전 금요일 오후 6시 13분에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프에게 목숨을 살려주었던 고디의 대학살이 같은 시간 다른 장소에서 완료가 되었다는 점은 뭔가 신기하긴 합니다.
그래서 혹시 이것이 성경과 연관이 있을까? 싶어 찾아보니 마태복은 6장 13절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로마서 6장 13절 "또한 너희 자신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라고 나와있습니다. 여기서 마태복음의 말은 주프가 첫 번째 사건을 겪을 때 다만 악(구디의 학살)에서 구원받길 바라는 내용이고, 로마서는 두 번째 대학살을 임하기 전 매일 악의 도구가 되어 탐욕과 명성과 자본에 얽매여 살지 말고 오직 죽음에서 부활한 예수같이 하느님께 모두 바치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죠.
이와 같이 6시 13분은 성경의 6장 13절과 관련이 있고 그 구절에 나온 것을 지키지 않은 주프는 결국 죽음을 당합니다. 주프는 2번이나 행운 또는 기적과 관련된 장소에서 사건을 겪는데 첫 번째는 신발이 일어선 공간, 두 번째는 말발굽 모양으로 만들어진 이벤트 쇼장입니다. 말발굽은 서양에서 "편자를 발견하면 행운이 온다"라는 말이 있어 액운을 막아주고 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상징으로 여겼는데 주프가 저주와 관련된 신발이 있던 곳에선 삶을 얻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말발굽에선 죽음을 얻었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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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은 또 다른 의미로 유대교의 율법인 613 계명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는 긍정 형태의 248개 부정 형태의 365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과연 주프는 무엇을 어겼기에 나쁜 기적이 생긴 것일까요?
613 계명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pedia.org)
아마도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 것이 UFO의 실체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UFO 등장 영화와 드라마를 보아왔지만 대부분이 외계에서 오거나 미래에서 오거나 하는 것이었던 것에 반해 이 영화는 UFO를 살아있는 생명체 자체로 보았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반전과 형태의 새로움이 굉장히 참신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이 UFO의 형태를 보고 크툴루 세계관에서 보았던 압도적인 코즈믹 호러의 재현이다! 외계인이 비행접시를 타고 온 게 아니라 그냥 해파리형 외계 생명체의 모습이다! 하는 의견들이 분분한데 제가 이 모습을 보며 떠오른 건 성경과 일본 애니에서 보았던 천사의 묘사였습니다.
구약 성경에 묘사된 천사의 모습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 달라서 큰 전차의 모습이거나 날개가 여러 개 달린 괴물로 묘사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걸 두 눈으로 보면 눈이 타버리거나 죽어버린다고 묘사합니다. (실제로 OJ의 아버지가 UFO=천사를 보려 하다가 눈이 멀어 죽음을 맞이함) 자신의 모습을 본떠 만든 인간 이전에 창조주가 그전에 만든 미완성 피조물이 바로 천사였기에 천사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굉장히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사를 일컬어 "사람에 비하면 무형이고 비물질적이지만 하느님과 비교했을 때 물질적이고 형체를 가졌다."라고 말했고 에스겔서 1장 16절과 20절, 21절을 보면 “그 바퀴의 모양과 그 구조는 황옥 같이 보이는데 그 넷은 똑같은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니라. 그들이 가면 이들도 가고 그들이 서면 이들도 서고 그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영이 그 바퀴들 가운데에 있음이더라”와 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UFO가 마지막에 거대한 무엇으로 변화하며 나타내고 있는 모습은 크툴루 신화의 코스믹 호러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성경에 묘사된 비인간화된 거대한 천사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가 중반까지 UFO라고 믿는 그것이 하늘을 가로지르며 움직일 때마다 동물이나 사람의 비명소리가 그 내부에서 울려 우뢰와 천둥처럼 소리를 내는데 에스겔서 1장 21절처럼 '영(UFO)이 어떤 쪽으로 가면 생물들도 영이 가려하는 곳으로 간다'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구름 위쪽, 즉 구름 뒤쪽에 숨어 있는 존재. 상상을 초월하는 압도적인 힘과 무정형으로 변화되는 성스럽고 흉폭한 존재는 과거 우리 인류의 상상력과 맞물려 다양한 신화와 전설을 양산했을 것입니다. 이런 압도적인 존재는 하늘 위의 용이나 천사의 모습으로 그려져 모든 인간들이 경외시 했을 것이라 봅니다.
또한 여기에서 보여주는 천사의 모습은 조던 필 감독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라 밝힌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제5 사도 '라미엘', 제10 사도 '사하퀴엘', 제14 사도 '제르엘'을 합쳐놓은 모습과 같습니다.
라미엘은 끝없이 비정형으로 변형하는 모습과 닮았고 사하퀴엘은 둥근 원이었다가 눈을 형상화하는 모습으로 변형하는 모습이 닮았으며 제르엘은 팔 벌리듯 펼쳐지는 몸의 형태가 닮았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에 다층적 이야기 구조와 다양한 메타포(은유)를 넣고 싶었던 조던 필 감독의 오랜 덕질이 여기에 녹아있는 것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OJ와 에메랄드를 도와주는 전자제품 대리점 직원의 이름이 마침 '엔젤'인데 이는 그들이 마주하는 압도적인 존재, 악마인지 천사인지 모를 초월적 존재와 상반되게 남매를 끝까지 도와주는 수호천사의 포지션이 아니었나 합니다. 그가 일하는 곳의 이름이 'Fry's Electronics'인데 이 매장의 입구엔 거대한 우주선이 박혀있고 폭력적인 외계인이 지구에 침공했다는 콘셉트로 매장을 꾸몄으니 이 역시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의 시작에서 나훔서 3장 6절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가 되게 하리니"를 언급한 것은 조던 필 감독이 이야기한 대로 미디어의 폐해를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극을 위해 생산되는 다양한 SNS 게시물들 그리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개개인의 사생활까지 파헤치는 뉴스 언론들의 무자비함, 그리고 그 자극적인 게시물을 즐기는 대중들의 연쇄 고리는 현대 우리 사회에서 가지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문제이자 가장 자극적인 놀이거리, 볼거리가 된 지 오래입니다.
조던 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서 그런 미디어의 폐해를 반문합니다.
UFO를 퇴치하는 게 아니라 촬영하여 한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거꾸로 계속 감시당하고 있었고 카메라로 UFO를 찍으려는 욕망은 계속 감시자에서 관찰자로 다시 피관찰자가 됐다가 마지막엔 관찰자로 변경되는 것은 어쩌면 서로가 보여주고 감시하고를 반복하는 미디어들과 비슷한 구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며 마치 스너프 필름 같다고 생각한 것은 영화의 중후반 촬영감독이 보고 있는 다큐멘터리(?) 필름이 굉장히 거칠고 원초적인 욕구와 폭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스너프 필름은 사람이 자살하거나 살해, 처형되는 장면, 시체를 훼손하거나 살아있는 사람을 강간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등 보기만 해도 쇼크가 올 것 같은 장면들을 담고 있는데 홀스트가 보는 동물의 왕국 영상이나 이 영화의 구조는 그 피식자와 포식자의 구조를 인간이 아닌 동물, UFO로 변경한 것과 같습니다.
만약 홀스트가 보고 있는 포식자들의 공격 영상이 인간으로 변경되었다면 이는 인육을 먹는 장면이 되었을 것이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UFO가 호랑이나 사자 같은 동물로 변경되었거나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인간이었다면 과연 영화의 분위기는 어땠을까요? 아마도 앞서 이야기한 스너프 필름과 다름이 없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걸 보는 관객은 그런 신체 훼손이나 살해, 처형 장면을 단지 영화라는 이유 하나로 즐기고 환호하는 것을 보면 스너프 필름과 자극적인 호러영화들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에 대한 더 정확한 증거를 들자면 에메랄드가 홀스트에게 영화를 만드니 도와달라고 전화했을 때는 시큰둥하던 홀스트가 '다큐멘터리'같은 촬영이라고 하자 바로 마음을 바꿉니다. 영화의 발전과 더불어 블루스크린 앞에서 모션 캡처를 위한 촬영을 했던 홀스트에게 그 답답함을 달래주던 건 포식자가 피식자를 잡아먹는 오래된 필름뿐이었습니다. 가짜가 아닌 진짜를 찍을 수 있다는 것에 마음을 바꾼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홀스트는 왜 그렇게 카메라로 압도적인 무언가를 담고 싶어 했던 것일까요?
이는 만물의 영장이자 먹이사슬의 최고로 군림하는 인간의 오만함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홀스트가 보던 포식자 영상도 결국은 인간이 촬영한 것입니다. 위험천만한 극한의 상황에서의 촬영한 것들은 인간을 다른 의미로 고양시키고 정복 욕구를 채워줍니다. 앞서 이야기한 스너프 필름과 마찬가지로 스너프 필름을 촬영하고 보는 사람들의 심리 역시 이런 포식자이자 지배자의 심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물론 성도착증이나 변태성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다른 의미를 두겠지만 말이죠...
홀스트는 가짜를 지배(촬영)해봤자 그 역시 가짜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진짜를 아날로그 필름으로 찍음으로써 지배적인 쾌감을 얻고 싶어 했을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엔 스스로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 버리지만 이 역시도 포식자에게 먹힘으로써 자신을 증명하는 오만함이 아니었나 합니다. 남들이 찍지 못한 장면을 찍고 자신은 죽더라도 결국 그 모든 장면을 찍은 카메라는 배설될 것이고 그걸 발견한 누군가에게는 인정을 받게 될 테니 말이죠. 신화 속의 많은 영웅들이 여행을 떠나고 목숨을 걸어도 아쉬워하지 않은 것은 이 알량한 명예욕과 지배욕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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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가 마지막에 UFO를 촬영하는 장소는 쥬프의 테마파크에 있는 우물인데 그걸 공중에서 찍어 마치 동물의 눈처럼 나오게 합니다. 카메라 렌즈 = 동물의 눈 = UFO의 눈 = 우물의 모양으로 연결되는 기막힌 장면인 것!
이영화가 개봉하기 전 조던 필은 자신이 참조한 영화에 '오즈의 마법사'를 언급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와 오즈의 마법사를 연관 안 지을 수 없는데 우선 이야기의 주인공인 OJ와 그의 동생 에메랄드를 보더라도 에메랄드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마법도시 에메랄드 시티에서 따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시종일관 오빠의 옷색과 반대되는 녹색 옷을 입고 있으며 온갖 우여곡절에도 끝까지 살아남는 마법 같은 생명력을 가졌습니다.
마지막에 목장에서 UFO를 촬영하고자 하는 인물이 4명이었다는 것도 눈여겨 볼만 합니다.
희망을 상징하는 도로시는 에메랄드, 끝까지 용기있고자 했던 겁쟁이 사자는 OJ, 그 둘을 뒤에서 전문적인 지식으로 도왔던 엔젤은 허수아비, 두근거리는 마음을 갖고 싶어 했던 기계인간 양철 나무꾼은 홀스트로 대치해서 보면 각자의 욕망과 능력이 어디에 기반했는지 보입니다.
또한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건 에메랄드와 엔젤(생존 불명이긴 함)인데 에메랄드가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던 건 그녀가 차고 있었던 팔찌와 반지의 힘일 수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착용한 팔찌는 하얀색 눈이 있는 파란색 구슬인데 이는 튀르키에(터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자르 본주(Nazar Boncuğu)' 즉 '악마의 눈'을 의미합니다. 튀르키에 사람들은 악마의 눈이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었는데 마지막에 나쁜 기적이 아닌 행운을 맞이한 건 오직 에메랄드 하나뿐이었죠. 또한 중간에 반지가 클로즈업되는 장면에선 호박이 박혀있는 반지를 끼고 있었는데 호박은 보호의 마력을 지닌다고 믿어져 부적으로 최초로 사용한 보석입니다. 그녀에겐 2중으로 마법의 보호가 있었던 것이지요. 도로시가 우연히 신게 된 구두가 마법구두였고 그것으로 인해 죽음을 면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 역시도 오즈의 마법사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이 영화엔 도로시를 캔자스에서 오즈로 날려버린 회오리바람(토네이도)과 판자로 만든 낡은 집이 지속적으로 나옵니다. 과연 우연일까요?
저는 이영화를 보는 내내 조던 필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 보내는 헌사와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적인 서스펜스의 구조는 스필버그 감독의 초기 대표작 <죠스>에서 가져왔고 초반에 등장하는 구디와 쥬프의 주먹 맞춤은 <ET>에서 가져왔으며 이야기의 기묘함은 <환상특급>에서 얻었고 중간에 엔젤, OJ, 에메랄드가 식사를 하는 장면은 <구니스>에서 변주했고 압도적인 존재와 지연 속에서 인간의 보잘 것 없음과 미숙함은 <쥬라기 공원>, UFO와 만나는 장면은 <미지와의 조우(제3종 근접 조우)>, 싸우는 장면은 <우주 전쟁>에서 변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티븐 스필버그는 알려진 외계인, UFO 덕후입니다. 그가 참여하거나 감독한 작품만 보더라도 <미지와의 조우>, <ET>, <8번가의 기적>, <맨 인 블랙>, < A.I.>, <우주전쟁>, <트랜스포머>, <인디아나 존스 :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 등 총 9 작품에 이르며 TV시리즈로는 <테이큰>이란 작품이 있는데 이 작품은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실험대상이 되어온 키스 가족과 외계인의 기술을 역으로 이용해 권력을 얻으려는 크로포트 가족, 외계인의 피를 이어받은 클라크 가족의 4대에 걸친 50년 동안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스필버그 감독은 누가 뭐래도 전 세계에서 외계 문명과 생명체에 관심을 가져왔던 감독이고 환상특급과 어메이징 스토리까지 연출한 유일한 사람이니 이 분야에선 최고 권위자라 할 수 있겠지요. 저 역시 스필버그가 만든 이러한 영화들을 흥미진진하게 즐겨왔으니 조던 필이야 오죽했을까요?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영화 역사상 가장 대중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여줘 왔던 스필버그를 존경해 왔던 덕력과 덕심이 이 영화에서 폭발하는 것이 보여서 기분 좋았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프의 풍선이 UFO의 내부에 들어가 폭발하는 장면을 보고 뭔가 김 빠지고 시시하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저는 이 장면이 스필버그의 초기작 <죠스>에서 주인공인 브로디가 거대한 백상아리의 입에 산소통을 던진 후 총으로 쏴 터트려서 이기는 장면이 있는데 <놉>은 <죠스>의 결말을 그대로 오마주한 것이 눈에 보이더군요. 원작을 안다면 박수를 칠 수밖에 없는 장면이지만 <죠스>를 모른다면 '어라? 허무하게 이게 뭐야??' 할 수밖에 없는 장면인 것이죠.
<놉>에는 이밖에도 <죠스>에 대한 오마주가 다양하게 숨어 있습니다. 바다를 하늘로 바꾸고 보면 수면 아래가 아닌 구름 속에 초월적인 포식자가 숨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을 물어뜯어 피로 물든 바다가 피로 물든 폭우로 쏟아지고 UFO가 주인공들을 집어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쫓아오는 장면 등은 <죠스>에서 보았던 압도적인 백상아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더군다나 UFO를 터트리는 주프의 풍선은 헬륨가스로 가득 차 있는데 주프(Jupe)는 목성을 뜻하는 주피터(Jupiter)의 약자입니다. 목성은 가스로 가득 차 있는 행성인데 주프가 날아가 가스로 터트린다? 초반 장면에서 풍선이 터져서 구디의 나쁜 기적이 시작됐던 걸 생각한다면 풍선이 터져서 대미를 장식하는 이 장면은 수미쌍관이 맞는 구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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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O의 공격에서 엔젤이 살아남을 때 철조망이 뜯겨 나가는 장면에서 나는 소리는 그 유명한 <미지와의 조우> 테마곡을 변주해서 썼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조던 필이 지향하는 감독의 위치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아닐까? 하는 데 이번 영화에서 제 예상이 그대로 드러나서 기분 좋았습니다. 원히트 원더, 즉 단 한작품만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감독은 많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대중에게 사랑받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드뭅니다. 특히 장르를 뛰어넘는 이야기 꾼으로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원대한 꿈은 어쩌면 허황될 수 있겠으나 헐리웃에는 이런 감독들이 많고 그 정점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으니 조던 필의 목표는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더군다나 이 세상 어느 누가, 이전과 다른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하며 그 안에 자신이 덕질했던 감독의 다양한 작품을 녹여낼 생각을 하겠습니까? <아키라>부터 <에반게리온>, <킹콩> 등등 자신이 좋아해서 덕질했던 마이너 콘텐츠마져 모두 녹여내는 그의 능력을 보며 저는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이러한 시도와 노력이 그를 더 발전시켰을 것이고 앞으로 나올 영화를 더 기대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야기드렸듯 이 영화는 저같이 다양한 분야에 덕질을 하는 덕후에겐 종합선물셋트 같은 영화였습니다. 예전에 곡성인 사바하 같이 오컬트와 관련된 이야기라면 한정된 사람들만 즐길 수 있어서 아쉬웠는데 이번 조던 필 감독의 영화 <놉>은 기존에 그가 다루던 호러 쪽 보단 좀 더 미스터리를 강조하고 있고 많은 대중적 작품을 그 안에 녹여내 대중성을 더 염두해뒀기에 많은 분들이 보고 즐겼으면 합니다.
더 쓰고 싶긴 하지만 아마 많은 분들이 더 좋은 분석과 해석을 하실 것이고 관련된 트라비아나 해설을 찾아보시면 더 많은 정보를 아실 수 있을 것이기에 이 정도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언급하지 않는 재미난 해설이 더 생각나면 나중에 더 덧붙이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