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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an 22. 2024

씽코페이티드 클락

추억의 짹짹이 시계

우리 집에는 고장 난 벽시계가 있다.

십 여년 전, 집 근처 인테리어 소품 매장을 재미삼아 둘러 보다 그 특별한 시계를 발견했다. 세로로 긴 하늘색 상자에 시계침이 붙어 있고 상자 위쪽에는 하얀 새 한 마리가 짹짹거리는 듯 초침에 맞춰 부리와 다리, 꼬리를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벽걸이로도, 탁상용으로도 이용 가능한 실용성과 아름다움, 위트에 반해 한참을 들여다보며 나중에 나만의 집이 생기면 꼭 데려가리라 다짐하고 시계의 브랜드를 살핀 후 내 노트북 즐겨찾기 살 것 목록에 추가해두었다.


 어딘가에 얹혀살다 독립해 본 사람은 알게 된다. 세간살이가 전혀 없는 공간을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는 환경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꽤나 많은 물건이 필요하다는 것을. 오랫동안 질리지 않을 물건으로 하나하나 신중히 고르다보면, 쇼핑은 즐거운 놀이가 아닌, 과중한 업무가 되기도 한다. 신혼집에 필요한 가구와 주방기구, 청소 용품 등 끝없는 물품 구입 목록에서 다만, 짹짹이 시계를 고를 때의 자신감과 즐거움이란! 여러분, 내 취향을 스스로 알고 기록해 두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짹짹이 시계는 내 것이 되어 신혼부부의 다툼과 꽁냥거림과 출산과 육아를 지켜보았다.

 몇 번의 이사 후에도 늘 우리 집 거실 한 켠에 붙어 있던 짹짹이 시계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오던 날, 정리되지 않은 선반 위에 놓여있다 떨어져 그만, 분 침이 부러져 버렸다. 십 년 가까이 쓴 낡은 시계지만 여전히 세차게 움직이는 짹짹이를 보니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 시계를 만든 회사에 전화해보았다. 오래 전 모델이라 단종되어 부속이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 마지막 시도라 생각하며 제주에서 실력 좋다는 시계방을 일부러 알아보고 찾아가서 목숨만 부지하게 해주십사 부탁하였다. 적당한 부속이 없을 것 같다고 고개를 갸웃하던 사장님은 그날 오후 수리가 가능할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전화로 알려주었고 그렇게 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뀐 시계 침을 야무지게 돌리며, 짹짹이 시계는 되 살아나 우리 곁에 남았다.

 주인을 잘(못) 만난 시계의 시련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으니, 다음 해 여름, 임시 가족으로 천방지축 초등 냥이 두 마리가 오게 된 것이다. 6개월 미만의 냥이들은 기질을 떠난 공통점을 갖고 있는데, 못 말리는 호기심쟁이들이라 입질, 솜방망이질을 가리지 않고 마구 해대며 세상의 물질과 규칙을 알아간다는 것이다. 집사들은 단호한 “안돼” 와 의도된 무관심 등 다양한 방법으로 행동의 결과를 가르치지만, 이또한 인내심이 필요한 일. 당분간은 떨어지면 망가질 물건을 모두 치우고, 그렇지 못할 물건에 대해서는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거실 벽 한 켠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계침과 짹짹이를 호시탐탐 노리던 치즈와 앙꼬. 선반도 없이 높이 걸린 시계라 녀석들, 그림의 떡이겠구나 하던 어느 날, 짹짹이 시계는 분침과 시침이 모두 덜렁거리며 6을 가리킨 채로 발견된다. 이 후, 녀석들의 돌격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는데 우다다 달려와서 작은 만큼 날랜 몸으로 못 믿을 만큼 높이 점프하여 시계 침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이었다. 더 높은 장소에 다시 못을 박는 대신 시계를 향한 고양이들의 흥미가 없어지길 기다리는 동안 짹짹이는 몇 번이나 더 사냥을 당했고, 언젠가부터는 시계를 바로 맞춰 놓아도 몇 시에선가 자기끼리 다리가 엉켜 늘 엉뚱한 시간을 가리키는 모양새가 되었다.


  세상의 시각과 속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방식으로 꿋꿋이 움직이는 짹짹이 시계. 출근 시간, 아이들 하원 시간,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이 다가오는 초조함에 동동거리다 문득 그 시계를 보면 나는 잠시나마 웃으며 크게 숨을 쉴 수 있다. 시계가 가진 기능 따위 아랑곳없이 명랑하게 움직이며,

“꼬이고 틀리면 뭐 어때? 난 여전히 실용적이고 아름답고 위트있는 걸!”

 당당한 네가 기특하고 애틋하다. 한때 나의 작은 꿈이었다가, 변화가 많은 바쁜 시기의 조력자였다가, 이제는 순간의 소중함을 환기하는 창문이 된 너.


 너에게서 배운다. 수면 아래, 백조의 발처럼 자신의 리듬으로 움직이며, 우아하고도 즐겁게 일상을 누리는 뻔뻔한 용기와 씩씩한 바지런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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