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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바다를 찾아

마젤란, 두 제국 사이의 바다를 건넌 사람 01

by 마싸

Portugal, Português! 포르투갈, 포르투게스!

낯선 장소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맛보고 생경한 풍경에 감탄하는 것은 여행자의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제일 생생한 것은 역시나 사람들의 이야기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게 된다면, 경험은 더 풍부해지고 시야는 다양해질 수 있습니다.

한국과는 서로 유라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한 먼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에 대한 '한 꺼풀 더'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역사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토리텔링식으로 전합니다.



리스본 궁정의 회랑은 언제나 바닷바람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인도와 아프리카에서 들어온 향신료, 새로운 땅에서 온 금과 은, 그리고 바다에서 돌아온 사내들의 피와 땀 냄새까지 뒤섞여 있었다. 그 속에서 젊은 장교 마젤란은 (본명 : 페르나웅 드 마가랴이스 Fernão de Magalhães) 초조하게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의 다리엔 오래된 상처가 남아 있었다. 원정과 전투에서 입은 부상이었다. 그는 포르투갈 해군에서 복무했다. 아프리카 해안, 인도 항로 탐험, 모로코 전투 등, 목숨을 걸고 싸웠고, 충성을 다했지만, 돌아온 건 훈장이나 보상이 아닌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내 길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바다에서 다시 열리는 것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마젤란은 국왕 마누엘 1세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ferdinand-magellan-885d60.jpg Ferdinand Magellan — Public domain portrait painting


포르투갈 왕의 냉대

“폐하, 서쪽으로 향한다면, 우리는 몰루카 제도에 닿을 수 있습니다. 포르투갈이 지배하는 동쪽 길 말고, 또 다른 새로운 바다로!”


왕은 눈살을 찌푸렸다.

'서쪽 항로로 몰루카(Spice Islands)에 간다'는 제안은 탐탁지 않았다.

포르투갈은 이미 희망봉을 경유, 동방항로를 통해 인도·몰루카와의 무역망을 확립한 상태가 아닌가. 서쪽으로 가는 새 프로젝트는 포르투갈의 전략·상업적 이해와 맞지 않았다. 궁정 입장에서는 큰 비용이 드는 서향 항해가 ‘당장 돌아오는 이익’이 불확실해 보였다.

1494년의 토르데시야스(또는 분할선) 규정은 또 어떻고? 몰루카가 스페인 혹은 포르투갈 어디에 속하는지는 민감한 문제다. 굳이 스페인과의 외교적 마찰이나 토지 분쟁·군사적 충돌로 이어질 위험을 무릅쓸 필요는 없다. 게다가 마젤란은 모로코 현지에서 불법 거래 의혹이나 허가 없는 활동으로 비난받은 전력이 있는 인물이다.


왕은 긴 침묵을 깨고 단호히 말했다.

“그대는 상처 입은 장교일 뿐이오. 바다는 이미 나누어졌소. 그대의 제안은 필요 없소.”


그 순간, 마젤란은 알았다. 포르투갈에서 자신의 바다는 이미 끝났다는 것을.


포르투갈이 안 되면 스페인

1517년, 그는 세비야 강가에 도착했다. 낯선 타국의 거리, 그러나 그의 눈빛은 오히려 더 빛났다. 스페인 관리와 학자들을 상대로 조약의 경계선 문제, 즉 토르데시야스 선이 몰루카를 스페인 쪽에 속하게 만든다는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동료 파르텔로도 함께였다. 단순한 모험시도가 아니라 국제법적·지리적 계산을 담은 '정치적 제안'을 해 보일 터였다. 그는 카를로스 1세 (후일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의 조정을 찾아갔다. 젊은 왕은 세계에 도전할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폐하, 저는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제 길은 스페인에 있습니다. 서쪽으로 나아가 몰루카에 이르는 길을 개척하겠습니다.”


카를로스 역시 길게 침묵했다.

머리는 온갖 가능성을 점치느라 바삐 돌아갔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우리는 포르투갈과 세계를 분할했지. 그러나 실제로는 포르투갈이 동쪽(아프리카–인도–몰루카)을 장악하지 않았나! 향신료 무역에서 포르투갈은 압도적인 우위를 가졌어. 콜럼버스 이후 우리가 신대륙은 확보했지만, 향신료 무역에서는 소외되고 있지.

포르투갈이 통제하는 동방 항로를 피해 독자적 접근로를 확보한다면...

우리 스페인 제국에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어. 포르투갈의 독점에 균열을 낼 기회가 찾아온 것일지도 모르겠군.'


왕은 마침내 입꼬리를 올렸다.

“좋다. 포르투갈이 동쪽의 길을 차지했다면, 우리는 서쪽의 길을 열 것이다. 그대의 배에 스페인의 깃발을 달라.”


1518년 3월, 카를로스 1세는 마젤란과 파르텔로에게 '왕실 후원 계약Capitulación de Valladolid'을 부여한다. 서쪽 항로로 몰루카에 도달할 경우 총독·총사령관 지위, 영토와 무역에서의 이익 분배, 귀족 작위 등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map-of-ferdinand-magellans-circumnavigation-14247.png Map of Ferdinand Magellan’s Circumnavigation, by Sémhur & Uxbona/CC BY-SA World History Encyclopedia
마젤란의 세계일주 항로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지도에 출발지, 마젤란 해협, 태평양 횡단, 필리핀 피날레 등이 나타나 있네요. 내비게이션도 GPS도 없던 시절의 망망대해 바다는 첫 항해자들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미지의 바다로

1519년 9월. 세비야 항구에는 다섯 척의 배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함대의 이름은 ‘아르마다 드 몰루카’Armada de Molucca. 목표는 서쪽 항로를 통해 몰루카로 가는 것!

270명의 사내가 함께였다. 북소리가 울리고, 함대가 서서히 강을 따라 미지의 바다로 나아갔다. 3년 후 단 한 척의 배와 단 18명만이 살아 돌아오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 턱이 없었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역사 속에서


토르데시야스 조약 (1494), 스페인과 포르투갈, 그들만의 땅따먹기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하자,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신세계 땅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다퉜습니다. 결국 교황의 중재 아래, '서경 46도 37분(후에 수정된 경도선)'을 기준으로 세계를 동서로 딱 갈라서 나눴어요. 동쪽은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아시아 향신료 무역로 확보), 서쪽은 스페인 (아메리카 대부분 확보)이 차지하기로 한 것이죠.

쉽게 말해 지도에 선 하나 그어서, 왼쪽은 네 땅(스페인), 오른쪽은 내 땅(포르투갈)인 셈이죠. (자기네들끼리! 누구 맘대로!)


그러다 마젤란의 함대가 서쪽으로 돌아 몰루카 제도(인도네시아 동부 향신료 섬)에 도착하자 문제가 생겼습니다. 몰루카 제도가 과연 스페인 쪽(서쪽)인지, 포르투갈 쪽(동쪽)인지가 불분명했던 거지요. 지구 둘레 측정이 정확하지 않았던 당시에, “저 선을 태평양 건너편까지 이어가면 어디쯤?”이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두 나라는 또 협상했습니다. (사라고사 조약)

이번에는 태평양(동양) 쪽에서 다시 선을 그어 경계선을 정했죠. 협상 결과, 몰루카 제도는 포르투갈 영역으로 확정됩니다. 대신 스페인은 포르투갈로부터 보상금(35만 두카트)을 받고, 필리핀 등 다른 지역 탐사에 집중하게 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1494년 토르데시야스 조약은 당시 가장 강력한 두 해양 세력(스페인·포르투갈)만 있었기에, 실제로 16세기 초반까지는 꽤 잘 지켜졌습니다. 포르투갈이 인도·동남아·브라질(경계선 동쪽이라 가능)을 차지하고,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 대부분을 가져간 것도 이 조약의 직접적 결과였지요. 그러나 16세기 후반이 되면, 새로운 강대국들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이 해상무역과 식민지 경쟁에 뛰어듭니다.

네덜란드는 17세기 초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해 몰루카 제도와 향신료 무역을 장악하면서 포르투갈을 밀어냈습니다. 영국은 동인도회사(EIC)를 세우고 인도·말레이시아·홍콩 등으로 영향을 확장하고, 프랑스는 카리브해, 캐나다, 인도 일부에서 세력을 키웁니다.

이렇게 되면서, 토르데시야스와 사라고사는 사실상 종이 위의 약속으로만 남고, 국제 현실에서는 무의미해졌습니다.

참조. Encyclopaedia Britannica, > Treaty of Tordesillas, Treaty of Zaragoza



본문 참조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Ferdinand-Magellan

https://www.biography.com/history-culture/ferdinand-magellan

https://en.wikipedia.org/wiki/Ferdinand_Magellan

https://pmc.ncbi.nlm.nih.gov/articles/PMC9262276/

https://revistes.ub.edu/index.php/Abriu/article/view/abriu20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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