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가 피었답니다

by 노준성

나는 오늘도 피었답니다

밤새 내린 먼지와 소음의 잔해 속에서도

한 줄기 햇살이 어깨에 걸리자

잊혔던 숨결이 다시 열렸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지나가며

바라보지 않지만

담장 너머에서도 도로 갓길에도

피어 있답니다 분명히 나의 이름으로


옛날 내 이름을 불러주던 시절이 있었어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노래가 끝나면 아이들은 멈추고

바람도 숨을 죽였습니다.

짧은 정적 속에서

세상은 얼마나 순수했던가요


긴 시간이 어느 날부터

노래는 다른 의미로 변했습니다

총성과 함께 울려 퍼지는 명령

움직이면 쓰러지는 사람들

꽃은 피었는데 웃음은 사라졌습니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의 흙이 얼마나 많은 눈물로 젖었는지

봄마다 새로운 피가 스며들어

내 뿌리를 적시곤 했지요.

그래서 나는 쉽게 지지 않았습니다

내 이름이 무궁(無窮)이니까요

끝이 없다는 것은

아픔조차 끝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때로는 존재가 묻습니다

너는 왜 아직도 피고 있니

나는 대답합니다

누군가는 나를 보고 다시 일어나야 하니까요


조선의 처마 아래서 피던 날에도

전쟁의 연기 속에서도

도시의 시멘트 틈에서도

나는 늘 같은 말로 인사했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꽃잎은 수천 번 져도 다시 열립니다.

아이들의 노래가 잊혀져도

부족의 상징이 바래져도

한 줄기 희망처럼 나는 피어납니다


당신의 발자국이 멈춘 자리마다

한 송이씩, 조용히 남겨두고 싶습니다

시간의 틈새, 삶의 균열 속에서

다시금 피어나는 사랑과 생명의 약속을


그래서 오늘도

무궁화가 피었답니다

당신의 마음이 너무 시들었기에

나는 더 붉게 더 환하게

이 땅 위에 피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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