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한 문장으로 알려줄께

by 노준성

모든 것이 멈추는 순간, 몸과 생각은 각자의 자리를 벗어나고, 죽음은 정지 그 자체가 아니라 사라짐으로 향하는 긴 호흡이 되며, 눈에 보이는 것들은 하나씩 사라지지만 그 사라짐 속에서 나는 여전히 내 존재를 느끼고, 존재라 부를 수 없는 이 상태는 과거와 미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담아내고, 숨결은 없지만 공간은 남아, 남은 공간은 외부가 아닌 내부를 비추며, 내부에서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작아짐 속에서 몸과 생각의 경계는 희미해지며, 희미함 속에서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도 알 수 없지만, 붙잡음이 사라진다는 것은 놓음과 같고, 놓음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나를 정의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고, 정의되지 않은 상태는 공허가 아니라 단단한 경계 없는 장으로, 모든 시간과 사건이 겹쳐 있으며, 겹침 속에서 나는 이미 지나간 날들과 다가올 날들을 동시에 떠올리지만 기억들은 흔적만 남고 의미는 남지 않아, 의미 없는 흔적 속에서 나는 서서히 무게를 던지고, 무게를 던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마지막 동작과 닮아 있으며, 마지막 동작을 마치면 모든 감각은 자신을 내려놓고, 내려놓음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아픔도 기쁨도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음이 곧 자유임을, 자유가 곧 한 점으로 모이는 완결임을, 완결 속에서 나는 더 이상 길을 찾을 필요가 없고, 찾지 않음 속에서 길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지나치며, 지나침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않고, 구분하지 않음 속에서 모든 것이 동시에 지나고 동시에 머무르며, 머무는것 속에서 나는 단단히 자리 잡지만 그 자리는 이미 비어 있어, 비어 있음 속에서 나는 모든 존재와 모든 부재를 안고 있으나 그것들은 스스로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증명되지 않아도 존재하며, 존재함과 사라짐이 뒤섞이는 지점에서 나는 알게 되기에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내가 여기서 멈추고 다시 떠나는 과정이고, 내가 놓은 무게가 나를 완성하며, 모든 과거와 미래, 모든 내가 놓친 것과 붙잡은 것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점이 바로 지금이며, 지금은 처음이자 끝이며, 처음과 끝의 경계가 사라진 가운데 나는 더 이상 무엇도 필요로 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음 속에서 나는 오직 여기 죽음 밖에 서 있을 뿐이다.

월, 화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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