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뱉던 펜촉이
마지막으로 굳어버린 날 이후
향수가 잉크의 자리를 차지한 거리에서
문학이라 이름 붙인 시체를 업고
떼 지어 몰려드는 이들을 보라
그들은 스스로를 가객이라 부르며
답사의 그림자를 끌고
유락의 행렬을 이룬다
한 줄기 가난이 남겨둔 터전
흙내음 서린 뜰에
번쩍이는 가죽 구두 소리가
오후처럼 스며든다
비석에 새겨진 절규는
배경으로 퇴색하고
폰렌즈는 상표와 포즈의 허영만을
탐식한다
화려한 햇살이
카페 대리석 탁자에 물들면
읽지 않는 문예지는
훈장처럼 펼쳐지고
그들의 입술에서는
오염된 포말이 튀어
설탕처럼 달콤한
권력의 이야기가 흐른다
심사의 그늘, 회장의 자리
차와 가방의 가격이
웃음 속에서 갈려
삼켜지는 소리
원고지의 칸들은
이제 명예의 감옥이 되었고
두레박은 사교의 잔으로
순간 전락했다
밤새 단어와 싸우던 손가락은
진주 목걸이 아래 묻히고
진실을 찌르던 칼날은
죽은 권위를 핥는
혀밑으로 휘어진다
보라,
글쟁이라는 가면을 쓴 무리들
영혼의 가난을
옷깃으로 가리려 애쓰지만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종이가 썩는 냄새만이 남는다
시를 죽이며 시인이라 부르고
문장을 모독하며 문학을 외치는 자들
가짜 훈장을 주고받는
허울뿐인 성 안에서
그들 발아래
주인 잃은 시(詩)들은
묘비처럼 식어간다
아무도 읽지 않는 비문(碑文)이 되어
종이 위에 남은 흔적들은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재가 되고
마침내 텅 빈 잔 속으로
모두 가라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