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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29. 2020

[DAY112(4)] 지하 와인창고에서 듣는 파두

지수 일상 in Porto


7시가 다 되어갈 때 즈음, 나와 동행은 드디어 파두 공연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사실 이 공연장은 굉장히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어 공연장 앞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한 번에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건물 밖에 있는 입간판과 달리 한 가게의 안쪽에 위치해 입구조차 너무나 작고 구석에 있어 가게에 들어가 멀뚱멀뚱 서서 눈알을 굴리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공연장 입구를 찾는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으니 한 할머니 한분이 비밀창고인 것처럼 입구를 알려주셨다. 그런데 입구라고 해서 들어갔더니 나타나는 건 다름 아닌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가 아닌가. 조심스럽게 들어가 보니 한국으로 따지면 김치나 젓갈을 보관할만한 동굴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20명이 조금 덜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니 조금 울릴 정도로 공간은 굉장히 협소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티켓 확인과 함께 와인 한잔을 내어 주었다. 그리고 7시가 되니 티켓 확인을 하고 와인을 내어 주었던 분이 앞으로 나가 Welcome이라며 사회자가 되어 파두 공연의 시작을 알렸다. 지하 와인 창고 같은 곳에서 듣는 파두 공연이라니? 파두를 듣기도 전에 벌써부터 분위기는 고조되는 것 같다.



정말 포르투 길거리에서 보면 동네 아저씨구나 하고 지나칠법한 인상인 아저씨들의 기타 연주를 먼저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타 실력은 정말 남달라서 입을 떠억 벌리고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떻게 악보를 보지도 않고 저렇게 긴 음악을 둘이서 오차도 없이 연주를 하는 걸까? 이게 그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합을 맞춰온 노하우라는 걸까? 오른쪽에 앉아 셔츠를 입고 기타를 치는 아저씨는 기타뿐만 아니라 노래도 잘 불러 눈길이 갔는데 언뜻 보면 조지 클루니처럼 생겨서 정말 신기했다.



한국의 판소리처럼 한이 담긴 것 같은 파두.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서 포르투에 왔는데 이렇게 운이 좋게도 당일에 예약해서 이렇게나 멋진 공연을 보게 되어 정말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타 솔로로 연주하는 사람의 손가락에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기타 연주와 함께 파두는 아니지만 그래도 감미로운 목소리로 듣는 음악,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한 여자 가수 한 분이 나와 빠른 템포, 느린 템포 등 다양한 파두의 세계를 맛볼 수 있게 열창을 해준 것까지. 약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와인을 마시는 것조차 잊을 만큼 흠뻑 파두에 빠졌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고조될 때 즈음, 여자 가수가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의 출신 나라들을 물어보는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는 나와 다른 관객들의 말을 듣고는 뜬금없이 눈을 찢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때 다른 관객들은 어떤 기분이었을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은 정말 모두 정색을 하고 그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태도가 최선인가 정말? 공연을 잘 보고 있다가 갑자기 동양인 비하를 당한 나는 기분이 급 상했다. (이럴 때마다 고민되는 것 같다. 분명 이제까지는 괜찮았던 분위기에서 정색을 하고 그녀에게 잘못을 지적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참고 앉아있는 게 맞을까. 지금까지 유럽에 살면서 나는 인종차별을 당해본적이 없어서 인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도 고민된다.)



한두 가지 빼고는 다 좋았던 파두 공연을 무사히 보고 나온 우리는 저녁을 먹기로 했다. 동행이 가고 싶다고 했던 레스토랑이 근처라 곧장 발걸음을 옮겼고 도착하자마자 예약했냐는 소리를 듣고 퇴짜를 맞았다. 그렇다 이곳은 미슐랭 원 스타를 받은 곳이라 예약 없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해맑게 들어가서 예약도 안 했다고 하니 얼마나 웃겼을까? 차선책으로 꼽은 레스토랑 두세 군데를 들어가 봤지만 이미 예약이 다 찬 관계로 자리가 없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팠던 터라 곧장 포기하고 근처에 있는 Wok to walk으로 갔다. 하지만 여행에 왔으면 한 끼를 제대로 먹어야 한다는 주의였던 동행은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서라도 맛있는 걸 먹어야겠다며 나에게 작별을 고했다.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여러 가지 야채와 볶은 팟타이와 그린티를 주문했는데 그럭저럭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7시부터 파두 공연 한 시간 반 정도를 보고 나와서 저녁을 먹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혼자서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찾은 강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하늘은 이렇게나 밝다니? 아마 이때가 9시가 넘은 시각이었는데 말이다. 동행과 따로 밥을 먹고 난 후, 동행과 다시 만나 동 루이스 다리를 건너가 야경을 보기로 약속했었다. 그래서 강 가인 1층에서 2층으로 넘어가기 위해 한참 동안 계단을 올라갔는데 동행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함께 가지 못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럴 거였으면 나는 계단을 그렇게나 많이 안 올라가도 되는 건데 말이다(엉엉). 후들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오늘도 다리를 건너가 야경을 보기는 글렀다며 숙소로 돌아갔다.



너무 많이 걸은 탓일까(사실 너무나 많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서 다리가 부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어두워지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게들과는 달리 환하게 불을 비추는 가게 하나가 눈에 띄었다. 바로 마제스틱 카페(Majestic Cafe). J.K. 롤링이 해리포터를 집필할 때 자주 갔다고 하는데 이 조차도 썰이라 믿거나 말거나인 것 같다. (렐루 서점도 해리포터와 매우 관계있는 곳인 것 같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이곳의 존재조차 모르니 말이다) 지금 당장은 너무나도 피곤해 카페에 들어가 커피 한 잔조차 마실 수 없는 정신이지만 나중에 한 번쯤 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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