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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05. 2021

[DAY115(2)] 집에 얼른 보내주세요

지수 일상 in Doha


밀 키트를 받아 카페테리아에 앉아 있었지만 사람들도 너무 많고 입맛이 없었던 터라 대부분의 음식을 남기고 간단하게 먹을 과자와 물을 챙겨 나왔다. 공항 노숙이 처음은 아니지만(대학교 2학년 시절 미국으로 해외연수를 떠난 적이 있음. 하지만 당시 교수님의 시간 착각으로 인해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바로 호텔로 가지 못하고 새벽 내내 공항에서 노숙을 했음) 이미 오랜 시간 비행을 하기도 했고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로 환승하기 위해(연착된 줄은 생각도 못하고) 슬리퍼를 신고 공항의 끝에서 끝까지 뛰어서 힘이 쪼옥 빠져 버려서 그 어느 때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새로 잡힌 스케줄을 확인하니 새벽 4시가 넘어서 보딩이 시작되기 때문에 주야장천 대기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조금씩 흘렀고 조용하던 게이트 앞은 어느새 한국으로 갈 비행기를 타는 승객들로 북적북적해졌다. 다들 한국 가시는 거예요? 엄청나게 긴 줄을 보고 너무나도 놀라기도 했는데 나를 더욱더 놀라게 한건 따로 있었다. 내가 타고 가는 카타르 항공을 이용하는 승객만 있는 게 아니라 한국행 아시아나 항공도 같은 비행기로 간다는 것이다. 즉 두 개의 비행이 하나의 비행으로 합쳐져서 티켓 자체를 현장에서 새로 발급해야 한다는 것! 이 길고도 긴 줄이 바로 보딩 하기 위해 기다리는 줄이 아니라 티켓을 새로 발급하기 위한 줄이라는 것이다. 정말 정신이 아득해진 나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마냥 의자에 앉아서 사람들이 줄어들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또 게이트 번호가 정말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어 사이다 탄산이 빠지는 듯한 웃음이 픽-하고 새어 나왔다. 

 


줄을 서던 사람들이 조금씩 줄어들자 나도 슬슬 짐을 챙겨 줄을 서기 위해 끄트머리로 향했다. 물론 티켓을 재발급해주는 직원들은 모두 외국인이었는데 정말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통로 쪽으로 자리를 주면 안 될까요? 부탁할게요. 제발요"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굳이 애절한 표정과 말을 하지 않아도 나의 꼴을 보고는 배려를 해줬을 것 같은데) 다행히 직원은 뒤쪽 자리이긴 하지만 통로 쪽으로 자리를 배정해주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여유롭였던 좌석 간의 간격이었는데 비행기를 타보니 한 칸의 빈자리도 없이 꽉꽉 채워 가는 것 같았다. 카타르 너네 돈 많잖아? 왜 이렇게 앞뒤 간격이 좁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이렇게 닭장처럼 태워 가는 거야(엉엉) 계속되는 기내식과 쪽잠을 자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한국! 이렇게나 오기 힘든 곳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 무렵, 짐을 다 찾고 세관을 지나 밖으로 나가니 엄마와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4개월 동안 영상통화나 목소리만 들리는 통화만 줄곧 해와서 그런가 실제로 얼굴을 보니 (나만) 조금은 어색했다. 연예인을 보는 것처럼 살짝 실감 안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연착이 된 탓에 늦은 시간까지 공항에서 기다렸어야 했는데 엄마는 오히려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 드디어 집에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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