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역사교사, 은열

역사교사로 살아내기

by 은열

"선생님, 이번 시간에야말로 역사 시간에 학교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을 배운 느낌이에요."


교사, 역사교사로서 힘든 순간마다 마음에 꽁꽁 넣어두었다가 슬며시 꺼내 보는 감동의 한 마디이다. 그날의 분위기, 그날의 공기, 그날의 감정의 파도가 아직도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진다.


그 해는 거꾸로 교실을 시작하던 첫 해였다. 재미있는 역사수업, 성인이 되어도 부담 없이 역사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는 수업, 그래서 '역사' 자체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남길 수 있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던 나는 1년 내내 게이미피케이션과 흥미 위주의 수업에 올인하고 있었다. 재미있어하는 아이들을 보면 몸속에서 흥분이 치솟았다. "그래, 이 맛에 교사하는 거지!"라고 외치면서 더 새로운 수업, 더 짜릿한 수업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가끔은 그게 역사 수업이야? 의미가 있어?'라는 날이 선 시선을 받기도 했다. 내용을 충분히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뭘 알아야 토론이든 게임이든 할 게 아니냐, 그럼 진도는 언제 나가냐, 어차피 재밌고 나면 다 까먹는 거 아니냐는 비판에 일일이 대응하면서 상처받지 않는 것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


어쩌면 내 안의 자격지심과 드러나지 않은 갈증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수업이 재미만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도 충분히 있다는 설득력을 보여야 했다. 하지만 그때까지의 나는,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나에게 돌려야 했다.


"나는, 여기서, 왜 교사를, 그것도 역사교사를 하고 있나?"


나는 학생들이 부당함을 당하지 않는 삶, 자신을 긍정하는 삶,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계획하게 만드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다. 자기의 삶을 충분히 살아내는, 그러면서 소외된 사람도 돌아볼 수 있는, 시민을 키워내고 싶었다. 그런 삶을 위해서, 과거의 역사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1987년을 보고, 5.18 민주화운동을 보고, 한국전쟁을 보고, 제주 4.3을 보고, 일제강점기를 보고, 더 과거로 돌아가 조선시대, 고려시대, 삼국시대를 공부하면서 우리 삶의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고 여겼다.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통찰하고 평가하면서.


그즈음 1정 연수를 들었다. 육아휴직 때문에 한참이나 뒤로 미뤄졌던 1정 연수는 어려움을 느끼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경기도의 우현주 선생님께서 해 주셨던 독서교육의 수업 사례를 보면서,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과학고라서 잘하는 것만은 아니야, 수업 디자인이 훌륭한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연수가 끝나자마자,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를 구입해서 읽고, 2학기를 고민했다. 아직은 내가 계획하고 디자인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아, 우현주 선생님의 사례를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결심했다.


바로 그날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단편소설집의 일부를 발췌해서 읽히고, 한국전쟁의 과정만을 건조하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행위였다는 것을 강조했던 그 수업. 딱딱하고 젠 체하는 글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글로 진짜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보자고. 그게 역사라고.

첫 시간에 책을 읽히고 독서 활동지를 쓰고, 다음 시간에 읽었던 글의 한 장면이나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자고 했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인간, 삶이 파괴되어 가는 전쟁에서 인간의 면면은 어떻게 드러날 수 있는가를 생각하자고 했다. 그린 그림을 칠판에 모두 붙이고 같이 공유하고, 수업을 마무리한 시점에 조용히 수업에 참여하던 친구가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이번 시간에야말로 역사 시간에 학교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을 배운 느낌이에요."라고 한 마디를 던져준 순간 떠오르던 벅찬 마음과 눈물이 차올랐던 그 감정의 파도를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림을 그리고 칠판에 붙여 공유하는 활동 중이다.

지금 와서 보면 조금 서투른 수업이었다. 책 대화를 더 넣었어야 했고, 토론 수업을 마지막에 넣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 년에 단 한 번만이라도, 단 한 명에게라도, 내 수업의 의도가 잘 전달되고 마음에 박히는 수업을 만들어 준 것이라면, 나는 그 해에 성공한 것이라고 여긴다.



지금은 수업이 조금 더 다듬어졌다. 재미를 더 추구하는 수업은 아이들에게 텐션 업이 필요할 때, 어려운 개념을 머릿속에 넣어야 할 때 조금씩 활용하는 편이다. 1년의 학기별 흐름을 고려하여 어디에 프로젝트를 배치할지, 어디에 가벼운 수업을 배치할지를 따로 정한다. 모름지기 수업엔 학생의 컨디션도 중요한 법이기 때문에 무작정 무거운 수업을 때려 넣었다가는 학생들이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재미와 의미를 함께 찾는 수업이란 참 어렵지만, 최대한 역사적 의미를 생각하고 "너는 어떻게 생각해?"를 강조하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꿈꾸는 역사수업, 꿈꾸는 교육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거꾸로 캠퍼스에서.

은근히 열정적으로, 거꾸로 캠퍼스에서 근무하는 나의 별명 '은열'처럼.

조금씩 힘을 내는 교사생활을 꿈꾼다. 나도, 학생들도, 우리 모두 지치지 않도록.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