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인권, 학살
때때로 뉴스에서 핵위기, 미사일, 안보와 같은 단어들이 나오면 나 같은 겁 많은 소시민들은 두려움에 떤다.
물론 전쟁이 쉽게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전쟁이 어떤 무분별하거나 혹은 즉흥적인 판단으로 일어날 수도 있음을 역사를 공부하면서 배웠던 까닭이다. 지난해에 이동기 선생님의 <현대사 몽타주>(2018)를 읽고 나서, 전쟁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상흔을 남겼는가, 그래서 역사란 결국 무엇인가, 나는 역사교사로서 어떤 스탠스를 취하고 현대사를 가르쳐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더랬다. 책에서는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라는 평화의 준칙을 강조했다.
독일이 평화학자 디터 젱하스Dieter Senghaas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면서 독재를 준비할 수 없는 것처럼, 평화를 원한다면서 전쟁을 준비할 수는 없으며, 평화를 가능케 하는 요인들을 찾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하고 안정적인 평화는 '원평비전(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의 악순환이 아니라 '원평비평(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의 건설적인 평화문화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이동기, 2018, 현대사 몽타주, 255쪽)
분명히 이상적인 말임에는 분명하지만, 역사교사로서의 내가 가져야 할 스탠스는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만들어갈 사회의 이상적인 형태를 요구하고 가르쳐야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타협점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그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동기 선생님의 말씀처럼 '평화는 갈등과 분쟁이 사라진 이상적 상태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분쟁을 예방하고 적대를 해결하는 과정'이어야 하고, 따라서 교육에서 필요한 부분은 적대적 갈등과 폭력 대결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따라서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20세기의 전쟁을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전례 없는 인류의 희생과 학살, 혐오의 역사가 엉켜 있다. 하지만 교과서의 서술은 건조하기 짝이 없으니, 교과서만으로 아이들이 이 시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가늠이라도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었다. (사실 전쟁사에서의 건조한 서술은 전근대사에서 더욱 심한 편이다. 2차 세계대전은 그나마 낫다. 워낙 큰 제노사이드가 있었기 때문에 이 부분을 크게 짚고 넘어가는 편이긴 하다. 하지만 대체로 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해서만 써 놓을 뿐. 우리가 전투의 연도를 외고 사실관계만 파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을 읽히고 싶었다.
내가 꼽은 책은, <나치의 병사들>(죙케 나이첼, 2015), <나치시대의 일상사>(데틀레프 포이케르트, 2003),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015),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한스 페터 리히터, 2005)였다. 모든 책을 다 읽힐 수는 없었기 때문에, 내가 꼭 읽히고 싶은 부분만 발췌했다. <나치의 병사들>에서는, 독일병들이 얼마나 잔혹해져 갔는가를 다룬 녹취록을. <나치시대의 일상사>에서는, 어떻게 독일인들이 히틀러에게 열광해갈 수 있었는가를 다룬 설명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는, 참전한 여군들의 인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고 그 후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증언을.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에서는, 유대인 소년 프리드리히가 어떻게 사회에서 배제되어 가고 결국 마지막을 맞이하는가의 몇 가지 일화들을.
책을 읽히기 전에 전체적인 전쟁의 흐름을 파악할 필요는 있었기 때문에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학생들이 전쟁의 주요 전투나 인물을 직접 조사하고 서로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미드웨이 해전이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대해 다루기도 하고, 아돌프 아이히만이나 쉰들러 혹은 백장미단과 같은 인물에 대해서 다루기도 했다.
전쟁의 전개과정에 대해 다루고 난 후에, 위에서 발췌한 책을 읽었다. 모둠원이 모두 같은 책을 선정해서 다 같이 읽고 느낌을 나눈 친구들도 있었고, 모둠원이 각자 다른 책을 읽은 다음에 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느낌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 같은 책의 발췌문을 읽을지, 다른 책의 발췌문들을 읽고 서로 나눌지는 모둠에서 결정하게 했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특히 <나치의 병사들>이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은 친구들이 전쟁에 병사로 참전한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드는지, 그것이 전쟁 후에 얼마나 개인의 일상과 감각을 파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질문을 던지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렇다면, 결국 전쟁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죄는 누가 얼마나 져야 하는가. 우리는 또 얼마만큼의 책임을 가져야 하는가.
교과서로만 하지 못하는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조금 더 말랑하고, 조금 더 인간적인 텍스트는 역사가 인간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려준다. 나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는 우리의 이야기이고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이 수업으로 학생들이 전쟁을 그냥 옛날에 있었던 일, 나와는 먼 이야기라고 느끼지 않고, 전쟁이 얼마나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는 참혹한 일인가를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갈등과 혐오가 얼마나 인간을 폭력적인 상태로 몰아갈 수 있는가를 알게 해 주고 싶었다. 이것으로 얼마만큼 역사적 사고를 증진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다만, 전쟁의 위험성과 평화의 중요성만은 분명히 인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기대한다. 그것이 우리가 사회를 만들어갈 미래의 주역들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