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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Feb 22. 2023

필리핀 이모님에게 생일 파티 초대받기

나의 홍콩 친구, 필리핀 이모들

홍콩에서 인사하는 사람의 90%는 필리핀 이모님들이다. 아내가 신기해하며 누구냐고 묻는다.


“아 저기는 와카(짱구의 유치원 친구) 이모님이야”


“아 저기는 오스틴(짱구와 킥보드 같이 타는 친구) 이모님이야”


“아 저기는 이름은 모르지만 짱구랑 몇 번 놀이터에서 놀던 친구 이모님이야”


아내는 회사 동료들과, 짱구는 유치원 친구들과 네트워킹 하는 동안, 나는 필리핀 이모님들과 네트워킹을 했다.




홍콩은 대부분의 맞벌이집에 외국인 가사도우미가 있다. 홍콩의 살인적인 물가에 비해 가사도우미 월급(2020년 기준 월 평균 74만원)이 저렴하다 보니, 가사도우미가 없는 게 이상할 정도이다.


대부분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 왔다. 평균 연령은 30대 전후로, 아이들 못지않은 에너지와 체력을 과시하였다. 스캇 이모는 스캇이 킥보드를 탈 때 운동 겸 같이 뛰었고, 와카 이모는 와카를 들었다가 메쳤다가 정신 못 차리게 놀아주었다.


핸드폰만 보는 이모들도 종종 있었지만, 대부분은 프로페셔널하게 아이들을 돌보았다. 이모님들끼리 수다 떨면서도 아이가 어디서 뭘 하는지 꿰뚫고 있었다. 짱구가 보이지 않아 두리번거리면, 근처에 있는 이모님이 짱구가 있는 곳을 넌지시 가리켰다.


한 번은 짱구가 킥보드를 타다가 갓 2살짜리 여자아이 옆을 빠르게 지나가자, 그 아이 이모가 짱구에게 위험하다고 단호하게 얘기하였다. 짱구는 모르는 사람한테 혼났다고 울었지만, 나는 자기 아이를 제대로 지키는 이모님 모습이 듬직해서 좋았다.




같은 국가 출신이 많다 보니, 이모님들끼리 유대관계도 돈독해 보였다. 늘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헤쳐 모였다. 아이도 10여 명, 이모님도 10여 명 한꺼번에 모여 회포를 풀었다. 박장대소하며 웃는 모양새가 각자 집주인들을 잘근잘근 씹는 중인 듯했다.


근무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이고, 일요일은 휴무이다. 법적으로 일요일은 근무를 시킬 수 없다고 되어 있단다. 자유시간을 얻은 이모님들은 길거리나 해변가에서 노래를 틀고 춤을 췄다. 여럿이 같이 있으니 외로워 보이지 않았고, 한풀이하듯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모습이 건강해 보였다.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는데 뒤에서 지코(Zico)의 아무노래가 흘러나왔다. 이모님들의 바이브가 심상치 않아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특히 짱구 하원시간에는 유치원 앞 넓은 공원에서 다들 모였다. 이모님들은 청일점인 내가 신기했는지 불쌍했는지 참 잘해주었다. 인사도 먼저 해주고, 이모님들끼리 먹으려고 가져온 간식을 건네주기도 했다. 장난감을 샀는데 한국말이 나오는 거라면서 짱구 주라고 챙겨 오신 이모님도 있었다. 절정은 생일파티 초대였다. 엘리엇(맨날 공룡 따라 하는 짱구 유치원 친구) 이모가 다가오더니, 주말에 엘리엇 생일인데 시간 되면 오라는 거였다. 이모님들 세계에서도 인정받은 느낌이었다(뿌듯).


초대받은 장소에 다다르자 아내와 짱구는 쭈뼛했다. 나는 당당하게 먼저 들어가서 다른 이모님들과 찡긋 눈인사를 나눴다. 주변에 사는 모든 이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것 같았다. 이모님들이 장식을 하고, 파티도 진행하고, 음식도 준비했다. 이모님들의 왁자지껄 소리가 풍악을 울렸다. 누가 보면 이모님 생일인 줄! 저 뒤에 멀뚱히 서있는 사람이 엘리엇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홍콩의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처우가 미흡하다는 얘기도 많다. 그 좁은 집 안에서 이모님들의 주거공간은 주방 옆, 탁자 등이라고 한다. 일요일에는 고가도로 밑에 줄줄이 텐트를 치고 숙박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늘 밝게 보이는 건, 함께 얘기를 나누고 정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이 많아서일까? 가족도 쪼개지며 모래알처럼 살아가는 마당에, 나의 삶을 공유하는 이들로부터 느끼는 연대감이 힘이 될 수도 있겠다. 그들이 이모님이든, 홍살카페(홍콩에서 살기 네이버카페) 회원이든, 브런치 글에 라이크를 눌러주는 작가들이든.


홍콩을 떠나기 전, 나의 홍콩 친구인 이모님들에게 따듯한 감사 인사를 건네야겠다. 다른 의견도 있겠으나, 우리나라도 외국인 가사도우미 정책에 대한 전향적인 변화가 있으면 어떨까 한다(한국은 F4 재외동포가 아니면 가사도우미 체류자격을 취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홍콩을 떠나기 전 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 씨터넷에 들어가 씨터 프로필을 찬찬히 훑어보고 내 채용광고에 들어간다.



19년생 남자아이 짱구의 하원 도우미를 구합니다.

사랑과 헌신으로 아이를 돌봐주실 책임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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