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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Mar 03. 2023

(팩차기의) 추억은 힘이 세다

홍콩의 놀이문화 제기차기(Jianzi)

짱구가 유치원 등원하는 길에는 넓은 공원이 있다. 이곳에 아침부터 홍콩 어르신들이 모여 제기를 찬다. 우리가 설 명절에 찬다고 배웠던 그 민속놀이 맞다. 대략 50대부터 70대까지 남녀 고루 섞여서 여섯일곱 명 정도가 큰 원을 만들어 제기를 찬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옛 놀이인데, 여기서는 탁구나 배드민턴 같은 국민 스포츠로 여겨진다. 아이들은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새 깃털을 이용하여 알록달록 제기를 만들어온다.


대부분은 그냥 지나쳤을 홍콩의 일상 풍경. 하지만 나는 옆에 앉아 한참을 구경했다.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현란한 발기술을 보면 속으로 탄성도 내지르면서.


거짓말 아니고, 정말 잘 찬다.




법대 건물 뒷문 쪽에 커피 자판기가 있었다. 일반커피가 200원, 프리미엄커피가 300원 하던 시절이다. 법대생, 특히 (남자) 고시생들은 식사 후에 늘 입가심으로 자판기 커피를 마셨다. 지갑이 얇은 그들은 학생식당에서 끼니를 때운 다음, 자판기 주변으로 모였다.


달달한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들고 모인 사람들은 대개 세 부류였다. 노가리를 까는 팀, 담배를 피우는 팀, 그리고 우리처럼 종이컵을 접어 팩을 차는 팀.


팩 차기의 설명은 나무위키에 나온 것으로 대신한다. “서울대학교의 옛 전통놀이로서, 우유팩(주로 커피우유) 3~4개를 잘 겹쳐서 직육면체를 만든 후, 사람 여럿이 원형으로 둘러서서 제기차기하듯 서로 차 넘기는 놀이로, 떨어뜨리지 않고 오래 차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보통 일반커피를 마셨고, 좀 여유롭다 할 때는 프리미엄커피를 마셨다. 일반과 프리미엄은 종이컵 재질도 달랐는데, 우리는 빳빳한 종이컵이 나오는 프리미엄커피를 선호했다. 그래야 팩이 금방 풀리지 않고 오랫동안 찰 수 있었다.


빨리 팩을 차고 싶어서 그 뜨거운 커피를 후루룩 마셔버린 다음, 유독 팩을 튼튼하게 접는 동쓰형이 장인 정신으로 팩을 만드는 동안, 나머지는 최대한 넓게 원을 만들어서 자리를 잡았다.


“마이!! 마이!!” (내 볼!! 내 볼!!)

“뒤로 뒤로!!”

“나이쓰으!!!”


팩을 떨어뜨린 사람은 벌칙으로 동전을 원 중앙에 던졌다. 횟수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흥분했고, 팩을 떨어뜨린 사람을 손가락질했다. 나이 많은 형님들은 반경 30cm 내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쏭반장이나 나 같이 막내들은 거의 날아다녔다. 해가 떨어져서 주변이 어두워지면 가로수 밑으로 자리를 옮겼다. 팩이 보이지 않아 헛발질할 정도로 깜깜해져야 비로소 팩 차기를 멈추고, 도서관에서 대신 공부하고 있던 가방을 가지고 나왔다. 원 중앙에 있던 동전을 모아모아 다 같이 야식을 먹었다.


그렇게 우리는 장수생의 길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어느 더운 여름날, 팩 차기 멤버인 윤군이 신문기사를 가져왔다. 유명 과자회사인 프링글스에서 주최하는 대회인데, 프링글스 통을 오래 차는 팀에게 상금과 해외여행권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행님, 이건 완전 우리를 위한 대회 아입니까”


https://m.gamemeca.com/view.php?gid=59912

단체전 1위는 상금 1천만원과 함께 영국 축구 캠프를 갈 수 있었다. 실제로 이런 대회가 있었고, 우리는 저 로고 위에서 프링글스 통을 찼다.


시험은 겨울이라 아직 남아있었다. 대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시간에 공부를   같지 않았다. 모교에서 열린 대구 지역예선을 가뿐하게 통과하고(지역예선까지 있었으니  사이즈가  대회였다), 의기양양하게 전국대회를 위해 상경했다. 서울  별거 있나?  씹어먹겠다는 마음이었다. 대회 현장에 도착하니 당시 유명한 케이블 게임 채널에서 방송을 한다고 카메라도 많았다.


“통을 차다가 손으로 잡으면 바로 실격입니다”


심판의 유의사항을 듣고 순서를 뽑았는데 우리 팀이 1번이었다. 좀 불길했지만 바로 시작했다. 총 2번의 기회가 있는데 첫 번째는 긴장한 나머지 몇 개 못 찼다. 서로를 다독이는 눈빛을 보낸 뒤 두 번째를 시도했는데..


“덥석”


팀장을 맡은 형님이 통을 손으로 잡아버렸다. 갑자기 옆으로 날아가니 반사적으로 손이 나갔나 보다. 가차 없이 실격 처리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 멍하니 앉아있었던 거 같다. 대구에서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허무했다. 갑자기 서울이 낯설게 느껴졌다.


의미 없이 대회장에서 시간을 보낸 후, 마침 서울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내 여동생을 만나 신촌 등지에서 백반을 먹고(고시생과 대학 초년생 모두 가난했다) 오픈 행사로 나눠주는 도넛 빵을 줄 서서 두 번이나 먹은 다음(나중에 보니 크리스피크림 도넛이었다), 저녁 기차를 타고 내려왔다.


다음날, 우리는 실수를 복기하고 팀장 형을 비난하며 법대 뒷마당에서 종이컵을 접어 팩을 찼다.




작가 김영하는 ‘여행의 이유’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홍콩 어르신들의 제기차기를 보며, 공부는 싫고 미래는 불안한 상황을 형들과 팩차기 하면서 잊으려 한 나를 떠올렸다. 아내 덕분에 홍콩까지 날아와서 육아와 자유를 넘나드는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되어 짠했다.


15년 전과 지금의 간극이 너무 커서 어떤 인생이 펼쳐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난 그때도 팩차기에 진심이었고, 지금도 아내와 짱구에게 제기차기를 알려주는데 진심이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팩을 직접 만들었다. 자판기 종이컵이 아닌 스타벅스 종이컵으로. 짱구에게 팩 차기 훈련을 시켰다.


프링글스 통 차기 대회는 그 이후로 열리지 않았다. 우리가 출전했던 1회 대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솔직히 인기가 있을 리가? 하지만 우리는 이후에도 팩을 찼고, 멤버들이 대구에서 삼척, 울산, 수원, 서울로 흩어져있는 지금도 1년에 두어 번 캠핑을 가서 팩을 찬다.


더 이상 대회는 열리지 않지만, 팩차기의 추억은 힘이 세다.


팩을 차던 멤버 9명이 A9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계모임을 한다. A9는 다들 성공해서 아우디9 자동차를 타자는 의미인데, 아직 아우디 근처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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