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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클 노 Feb 06. 2021

적정기술이라는 허상

그들은 그들이 원하는 기술을 취한다.

   한때 개발 NGO영역에서 Hot했던 키워드가 있었다. '적정기술'. 하기야 무언가 색다른 것을 시도해 보려고 개발 NGO를 거쳐갔던 키워드야 많았지만 얼마 전 개발 NGO와의 미팅 때 느꼈던 것들이 떠올라 글을 써보려고 한다. 이 바닥을 아는 사람이라면 굿네이버스의 '쿡스토브'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 때는 현장에 적용 가능한 대단히 실용적인 기술이라고 필자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재 해당 키워드를 검색창에 넣어서 검색해 본다면 '아... 뭔가 잘 안되고 있구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는 해당 내용의 기사나 포스팅이 거의 없거나 예전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역시 문제가 있었다. 문제는 '가격'이었다. 그동안 KOICA 프로젝트나 몽골 지자체의 보조금으로 제작 및 판매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런 자금이 끊기니 가격이 올라가고 현지인들이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가지 가까운 예를 들었지만 지금까지 성공한 적정기술이 있다고 듣지는 못했던 것 같다. 언뜻 들었던 적정기술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태양열 조리기, 플레이 펌프 등등. '적정'하다고 이름 붙여졌던 것들이 '적정'하지 않다고 판단되어서 버려지고 폐기되었다. '라이프 스트로우'도 적정기술로 나오기도 하는데 적정기술의 사전적 정의 '제3세계의 지역적 조건에 맞는 기술. 제삼 세계로 직수입된 근대 과학 기술이 그 나라의 근대화에 기여하기보다 인적ㆍ물적 환경을 파괴한 데 대한 반성에서, 새로이 자립 경제의 관점에서 모색된 기술 개념이다.'에 부합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억지로 껴넣은 적정기술들이 있기는 한데 사전적 정의에 비추어 보아 이 카테고리에 넣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시도는 많았으나 안탑깝게도 그 의의를 다한 기술들은 아직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케냐에 짧은 1년 남짓을 살았던 것을 가지고 어떤 사안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수준의 판단 일수는 있겠으나 '기술'과 관련되어 가장 강력하게 느꼈던 것은, 어떤 것이 '적정'한지는 '그들'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연히 현지인이다. 그렇게 느꼈던 배경에는 케냐의 가상화폐 M-Pesa가 있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케냐는 가상화폐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M-Pesa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마트에 가면 신용카드, 현금, M-Pesa 등 수단을 모두 사용할 수 있고 조금 더 큰 Mall은 미국 달러화까지 사용이 가능하다. Carrefour에 가면 그 날의 달러 환율을 적어놓고 있어 지불이 가능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다. 여기서 가상화폐라고 하니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데, 그냥 실물화폐를 핸드폰 속 가상의 지갑에 '충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카카오페이'나 '스타벅스카드'를 충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가상화폐가 발달하게 된 배경에 대해 조금 생각해 봤는데 결국은 현지인들이 그 기술이 생활에 '적합'하다고 판정을 내렸고 받아들여지게 되었다는 결론이 자연스럽다. 물론 여기에는 케냐 정부나 우리나라의 SKT와 같은 위치에 있는 케냐의 Safaricom의 역할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앞의 적정기술이란 이름의 것들이 실패한 것만 봐도 정부나 대기업이 아무리 마케팅을 해도 실생활에 유용하지 않다면 버려진 기술이 될 뿐이다.

   참고로 M-Pesa가 발달하게 된 이유를 나름대로 간략하게 설명해 본다면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은행의 접근성과 편리성이 낮아서이다. 은행의 수가 적었던 것은 아니고 지점이 생각했던 것 보다 적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작은 Mall에는 작은 부스처럼 은행업무를 처리해 주는 시설도 있고 은행 예치, 송금만 대행해주는 Kava라는 업체도 있다. 그러나 은행거래가 많지 않은 빈민층이나 저소득층이 굳이 계좌를 만들일이 없을 것 같고, 설령 계좌를 만든다 하더라도 은행업무가 빨리 처리되는 것도 아니다. 지점이 생각보다 많다고는 했지만 지방으로 갈수록 그 접근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고액권이 없다. 최고액권은 1,000실링이고 그 이상의 고액권은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천 실링 이상의 금액을 거래할 일이 잘 없어서 고액권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실상 겪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일반 서민들은 모르겠지만 기업 같은 경우에는 심한 경우(나의 경우) 가방에 천 실링을 몇 뭉치를 싸들고 다녀야 하는 고충이 있었다. 현장에서 일을 할에는 ‘왜 더 고액권을 만들지 않는지’ 의문을 가졌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리고 지폐를 정렬하다 발견한 것인데 크기가 일정하지 않았다. 아마도 조폐기술 또는 인쇄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탓으로 화폐의 원료 수입 및 생산비용의 애로사항이 있으리라고 짐작할 따름이다. 따라서 현금을 들고 다니는 불편함이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셋째, 입출금의 편리성이다. 아무리 가상화폐라고는 하지만 현실의 실물화폐를 기반으로 한다. 당연히 가상화폐를 충전할 충전소가 필요하다. 케냐에는 통신사 대리점, 작은 가게 등 거리 곳곳에 M-Pesa 로고가 박혀있는 상점이면 어느 곳에서든지 충전(입금)이나 화폐 교환(출금)이 가능하다. 다만, 작은 가게들은 하루 처리할 수 있는 거래량이 제한되어 있어 가끔 원활하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가까운 다음 가게에서 거래를 하면 되는 일이다. 세계 어느 곳이든 화폐를 써야 할 일이 꼭 생기기 마련이고, 그리고 M-Pesa로 조금 큰 금액을 송금하려면 적은 금액이지만 수수료가 붙는 것도 있기 때문에 입출금이 가능한 점은 정말 매력적이 요소라고 생각했었다. 이렇듯 현지에 적용 가능한 기술은 현지인들이 받아들일 때만 가능한 것이다.

   지금도 적정기술을 연구하고 보급하려는 분들이 계시고 그들을 의도와 노력과 존중하지만 사무실 방 안에서 생각해서 만든 기술을 현장에 이식을 하려는 노력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무언가 만들려는 시간에 알리바바에 들어가 가장 현장에 적합한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해서 보급하는 노력을 하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현장에서 묵묵히 그들과 함께하시고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존경의 마음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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