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드에서 쓸려 날아가면 안 됩니다 :-)
얼마 전, 비즈니스를 하면서 알게 된 동생이 이직 소식을 알려왔다. 사회적기업에서 일하는 친구였는데 퇴사를 하고 남은 학업을 마친 후 대기업의 개발자로 입사를 했다. 실력도 인성도 갖춘 친구였기 때문에 이러한 인재를 회사 안팎으로 두서없이 돌리기만 한, 전 직장의 대표이사의 안목을 비판하며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건넸다.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회사, 조직, 동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때를 제일 조심해”라고 꼰대나 할 법한 말을 해 버렸다. "축하한다."는 말만으로도 충분할 터인데 오지랖을 부리고서는 괜시리 미안한 맘이 들었다. 아끼는 동생이라고 애써 합리화 해보지만 그래도 꼰대는 꼰대다.
보통 3년 정도가 지나면, 큰 말썽을 부리지 않고 회사생활에 잘 적응하면 회사나 조직이나 동료들의 상호관계와 현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신입으로 입사했다면 주임에서 대리로 넘어가는 구간(회사마다 다르지만 우리회사는 그렇다)이겠다. 신입이라 자신만의 업무 스타일이 없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업무 스타일은 선임이 누구냐부터 시작해서, 성향, 가치관 등 다양한 요인들로 만들어진다. 나의 업무 스타일은 회사에서의 아이덴티티 아닌가. 물론 입사 초기에는 그걸 신경쓸 겨를이 없다. 시킨 것 하기, 적응하기 바쁘다.
내가 맡은 업무가 손에 익고, 새로 주어지는 업무들도 곧잘 수행하면서 칭찬도 듣고 꾸지람도 듣게 되면서 차츰 회사와 동료들로부터 마음이 안정화(=익숙해짐)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들이 올라온다. 그리고는 ‘왜’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 내 업무 범위 내에서 변화를 주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가끔(자주는 아니다. 보통 업무의 프로세스에는 타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업무개선으로 이어지면서 좋은 결과를 내기도 한다.
이 뿌듯함을 한번 맛보면 과거부터 비효율적인 업무들이 지속되어 왔고, 내 능력으로 인해 내가 일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이 업무의 효율성이 극대화 되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 성과가 내가 입사하기 이전의 시간들이 바탕이 되었음을, 조직 내 동료와의 상호작용으로 비롯되어 경험과 고민의 누적 분이었음을 깨닫지 못한다.
작은 성과에서 시작한 착각은 차츰 동료와 조직, 회사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우리 팀 과장님은' '우리 팀 팀장님은' '우리 회사 사장님은' 급기야 '우리 회사는'으로 시작하는 자신의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어느 순간부터인가 비판인지 비난인지의 경계선도 무너져버리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게 되어 버린다.
회사라는 조직은 내가 일하기 편한 프로세스로 되어있지 않을 뿐더러 내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 돈을 내고 다니는 대학교도 내 마음대로 안되는데 돈을 받고 다니는 회사에서 오죽할까. 그렇다고 대학교와 같이 같이 어울리지 않거나 마음 맞는 동료들끼리만 과제를 할 수 없는 노릇이다. 회사의 업무는 생각보다 다양한 내외부의 팀과 사람들로 얽혀있다.
늦가을 무렵 떨어진 낙엽이 거추장스러울 때는 그것을 보고 있을 때가 아니라 누군가가 그 위를 걷고 있을 때이다. 회사에서 회사동료가 나에 대해 관찰자에서 관여자로 변할 때가 오는데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다. 회사의 불만들과 나의 생각이 결합되면서 발생하는 업무의 비효율은 결과 뿐만아니라 과정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
업무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결과이기에 감정적인 요소가 존재하며, 이는 말과 행동 등의 태도에 영향을 받는다. "김대리랑 같이 일해봤는데 일하기 어렵더라고.."라는 말들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치명적인 부분이다. 누구나 함께 일하고 싶은(= 협업에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롱런할 수 있다.
만약 위와 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누군가가 당신을 떨어진 낙엽처럼 쓸어내려고 한다면 젖은 낙엽처럼 몸을 필드에 바짝 숙이길 바란다. 젖은 낙엽처럼 몸을 숙여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굽신거리거나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 필드를 빠져나올 생각보다는 어떻게든 그 필드에 머무르면서 조직과 업무의 유기적인 연결점을 더 관찰할 시간을 확보하라는 말이다. 조직이든 사람이든 겉으로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만약 “이 회사는 나와 맞지 않다”라는 생각으로 그 필드를 떠나면 앞서 이야기한 과정을 또 거쳐야 한다. 나에게 꼭 맞는 회사와 조직과 동료는 이 세상에 없다. 어느 필드에서든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면 지금있는 필드에서 겪는 것이 당신에게 제일 효율적이다. 필드는 그 이후에 옮겨도 늦지 않을 것이다.
회사는 비워짐과 채워짐이 끊임없이 반복되지만 회사가 존재하는 목적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인내심을 가지고 관찰하게되면 결국 그 본질을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될 것이다. 또 다른 필드의 즉시전력감이 되고 싶다면 말이다.
작성하고 보니, 회사에 불만이 있더라도 꾹 참고 일하라는 말 같아 보인다. 그렇다. 꾹 참고 버티면서 관찰해야 한다. 이 필드에서 뛸 것인가 말것인가를 신중히 판단할 수 있도록 현상말고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간의 시작은 신입사원이 아닌 회사에 익숙해졌을 때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