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확신의 공존

영화 '가타카'

by wanderer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에 대해서 확신할 수 없다. 가능성은 모든 변수들을 의미한다. 이 영화 속 미래에선 여러 가지 요인들을 결정한 채로 태어날 수 있다. 때문에 부모가 원한다면 아이는 최고의 신체적 조건을 갖고 태어난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좋지 않다고 여기는 유전적인 요소들을 모조리 배제한 채,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태어나는 아이들은 자라나기 이전에 비만 인자를 제거하는 등 유전적인 질환 없이 살아간다. 말 그대로 예측할 수 있는 장애물을 모두 없앤 최적의 조건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이 '최적의 조건'은 영화 속 사회에서 한 가지의 기준이다. 그 조건으로 태어난 사람의 피 한 방울에는 이 사람이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음을 증명하는 모든 정보가 담겨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이면 이 사람의 신체 정보는 낱낱이 공개된다.

빈센트는 그런 유전적인 조작 없이 태어난 아이다.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사랑으로 얻은 자식이었다. 빈센트는 신경계 질병 60%, 집중력 장애 89%, 심장 질환 99%의 확률을 갖고 태어났다. 그의 기대수명은 30살이었고 부모는 그를 조심스럽게 키웠다. 그게 마음처럼 되지는 않아서 빈센트는 신체조건이 우수해야 할 수 있는 우주 비행사를 꿈꿨다. 하지만, 그가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그 확률이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아무리 체력을 기르고 지식을 쌓는다 해도 혈액 검사를 통과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마음 먹는다.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서 그의 DNA를 얻는 것이다. 제롬은 그를 위한 완벽한 조건의 후보였고, 빈센트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의 정체성을 버린다.


제롬은 출발선에 제대로 서 있었다. 튼튼한 심장과 건강한 몸을 타고난 그는 장래가 유망한 수영선수였다. 그가 비극적인 사고로 다리를 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제롬은 그 사실에 좌절했다. 그의 자부심은 타고난 것에서 오는 것이었다. 빈센트에게 네가 내 이름을 사용하면서 이 만큼 잘할 수 있겠냐고 묻는 이유는 바로 그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제롬은 완벽한 조건 속에서 태어났다. 그 조건에 부합하기 위해서 제롬은 끊임없이 노력했다. 은메달로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은메달을 두고서 겨우 '2등'밖에 못했다 말하는 그에게 있어서 사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그 부담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을까. 결국에 빈센트가 꿈을 이뤄내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우주로 떠나는 그에게 본인의 머리카락이 담긴 봉투를 건넨다. 제롬이 단순히 이름과 DNA를 빌려주는 것을 떠나서 그를 인정한다는 그만의 표현이었다. 그는 떠나려는 빈센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난 몸만 빌려줬지만, 넌 내게 꿈을 줬어'라고.

영화는 개봉한지 무려 18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사회에 의미있는 물음을 던지고 있었다. 빈센트는 끝내 꿈을 이뤄냈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이뤄낸 것은 아니다. 노력이 의미 없는 구조,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 눈길, 이는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영화는 노력을 통해서 태생적인 한계를 이겨낸 개인의 성공 신화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돌아올 힘도 없이 노력해서 꿈을 이루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빈센트는 본인의 신분을 바꾸지 않고서는 도전조차 할 수 없었다. 정체를 들켰다면 아무런 소용없을 일이었다. 제롬도 그렇다.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내린 결론은 그를 결과적으로 절망으로 끌고 가지 않았던가. 이 구조가 올바른 것인지 묻고 있다.

빈센트: 물론, 차별 대우는 불법이다. 그러나, 그 법을 그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면, 악수에서도 샘플을 채취할 수 있다. 이력서 봉투에 붙은 침으로도, 회사에서 당신의 미래를 알 수 있다.

취업을 위해 공부를 하다보면 항상 미래에 대한 불안과 해온 일에 대한 확신이 반복된다. 내 자신의 가능성을 점쳐보는 일은 그것이 현실적인 숫자로 다가오기에 서글프다. 서글프지만 숫자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걸려있다. 빈센트는 본인의 모든 것을 다해서 꿈을 이뤘다. 돌아올 힘을 남겨두지 않고 도전한다는 말은 좋지만 왠지 모르게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영화를 볼 때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영화가 끝나고 내가 처한 현실은 정말 돌아올 힘도 전부 써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자신 없었다. 가다 물 속에 빠지진 않을까. 끊임없이 준비를 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 일들이 내 꿈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논리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다른 누군가와 비교해보면 그나마도 없던 자신감은 턱없이 쪼그라들어 자학하는 길에 빠지게 되겠지만 그래도 하고 있다. 만약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한 채로 다른 길에 눈을 돌릴 때에 과연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은 무슨 의미일까. 그저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들어간 비용을 감내해야 하는 것일까.


슬픈 일이다. 영화의 상황들이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노력의 총량을 비교해보는 부질없는 생각이나 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진 출처: 다음 영화 '가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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