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Q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anderer Jan 19. 2022

I am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글쓰기 책을 보면 글을 쓰고 나서 한 번은 직접 소리를 내어 읽어보라고 한다. 읽어보면서 글의 순서나, 문장이 어색한지 보라는 건데 이게 생각보다 습관이 잘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손끝이 야무지진 못한 것 같다. 기세로 글을 쓰고 적당히 만족하며 내뺀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런 내 성격과는 별개로 저 팁 자체는 굉장히 유용하다. 실제로 잘 쓴 글을 보면 눈이 문장을 훑어가면서도 '탁'하고 걸리는 게 없다. 걸리는 게 없는 글은 읽어보면 자연스럽다. 정확하게 쓴 글이 최고라고 치면, 자연스러운 글은 바로 다음이다. 자연스럽게 쓴 글은 시간을 뛰어넘는다. 사용하는 단어나 상황, 분위기에 관계없이 삶에 맞닿는다. 심지어는 교과서에 실린 글을 볼 때도 그런 감상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쓰인 글에서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 영화를 보면 그 반대도 성립하는 걸 볼 수 있다. 프레드 햄프턴의 연설을 들어보면 그가 어떤 글을 썼을지가 궁금해진다.


 FBI 국장인 에드가 후버가 미국 내 반체제 세력인 흑표당의 '블랙 메시아' 프레드 햄프턴을 주목한다. 프레드 햄프턴은 엄청난 카리스마로 지역 사회를 장악한다. 분열을 규합하고 연대와 결속으로 경계를 넘어 집단을 통합한다. 한편 윌리엄 오닐은 FBI를 사칭하다 붙잡히게 되고 그들에 의해 흑표당에 스파이로 심어진다. 혐의를 기각하는 대신 첩자 노릇을 하며 정보를 가져오는 것이 임무였다. 무장한 반사회적 집단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합류한 윌리엄 오닐은 그곳에서 조금 다른 모습을 본다. 과격 단체의 우두머리인 프레드 햄프턴의 말과 행동은 FBI의 설명과는 달랐다.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고 오닐은 차츰 그의 이야기에 감화된다.


 영화 내내 프레드 햄프턴은 제목 속의 자신을 증명해낸다. 확고부동한 블랙 메시아의 존재로 본인을 각인시킨다. 그의 카리스마는 위압적이지 않았지만 울림이 있었다. 프레드 햄프턴의 목적의식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목소리는 낮게 스며들어 좌중을 장악한다. 그는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정확하게 본인이 필요한 말만 던진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언성을 높이거나 위협적으로 행동하는 그 이면의 모습을 알았다. 마이크를 잡고 해야 하는 말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공동의 목표가 있음을 설파했고 지역의 리더들은 그 말뜻을 이해했다. 익명의 대중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지는 말들은 출처가 없어 명언은 아니지만, 책 속에 박제되지 않아 생명력을 갖는다. 글이 아닌 말로써 리듬을 갖게 되니까 메시지에 힘이 있다.


 프레드 햄프턴이 인종을 가리지 않고 동료들을 모으는 동안 윌리엄 오닐은 본인의 처지를 만끽한다. 흑표당 조직에서의 인정을 받아 경비대장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이중 첩자가 등장하는 영화들을 보면 두 세계 사이에서의 고뇌를 더 부각하기 위해서 인물을 감정적으로 흔드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느낌은 적었다. 오닐은 벗어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인의 위치를 만끽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무간도에서 진영인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의 만족스러운 얼굴은 스테이크를 썰고 흑인 종업원을 부르는 장면에서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오닐은 FBI의 스파이 역할을 했지만 그 집단에 속할 수는 없었다. FBI 수사관인 로이 미첼은 그를 동료가 아니라 정보원으로서 대했다. 그가 오닐을 보는 시선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떤 정보를 가져오든 어떤 역할을 하든 상관없었다. 처음부터 오닐은 범죄자였고 하나의 장기말처럼 활용되었다. 어설프게 만든 위조 배지 자체는 아무런 힘도 없다. 가품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겁을 먹고 두려워하는 건 얼굴 없는 권위다. 배지 자체보다 배지를 드러내는 행동이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트렌치코트에 중절모를 쓴 사람은 회사원도 될 수 있고 FBI도 될 수 있다. 선택을 내린 오닐은 무엇이 되었나?


 비극은 예정되어 있다. 우리는 영화 제목처럼 유다가 메시아를 팔아넘길 것이란 걸 잘 알고 있다. 결말을 안다면 중요한 건 과정이다. 예정된 결말을 잊어버릴 정도로 매력적인 과정이 필요하다. 흡입력 있는 이야기는 그 지점에서 빠져나갈 틈을 만들어두지 않는다. 개인의 능력과 별개로 급변하는 정세는 이야기에 속도를 더한다. 오닐은 어쨌거나 본인의 안위가 중요했던 사람이었고 프레드 햄프턴은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연설하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나면 더 여운에 젖는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낙차는 상당하다.


 결국 블랙 메시아의 연설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특유의 액션과 말투, 톤이 주는 카리스마도 있지만 그보다도 메시지다. 그는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이냐'라고 묻는다. 혐오의 상징을 마주하고서도 대의를 묻는다. 공동의 목표를 명확하게 주지 시킨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조직한 그 모임의 이름이 무지개 연합이라는 점도 인상 깊었다. 갈등과 혐오로 반목하는 시대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까. 그의 접근법이 100%라고 할 수는 없어도 나름의 해답과 그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연대와 결속을 외치는 이들의 속내는 보통 그 집단 밖의 이들과의 분리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 내부의 결속과 연대를 위해 외부의 적을 상정하고 메시지에 함몰되어 수단 또한 변질된다. 프레드 햄프턴은 달랐다.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기에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부족하긴 해도 그 시도는 분명 남달랐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