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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Sep 20. 2022

잘 쓴 이야기의 여정

영화 '베스트셀러'

 올해 초에 출판 편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편집 실무에 대한 전반적인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우리는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는데 다른 것보다도 관점이 선명해서 흥미로웠다. 저마다 쉽게 대답할 수는 있지만 정답을 가늠하기란 어려운 그런 문제였다. 읽기 위해 구매하는 것이니 책의 내용을 사는 것일까? 그렇다면 책을 다 읽고 그 책을 팔면 기억이 사라지는가? 책이 더 이상 우리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우린 그 내용을 알고 있다. 여타의 상품이라면 그럴 수 없다. 라면 한 봉지, 러닝머신, 양키캔들이나 책가방까지도 수중에서 사라지면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은 팔더라도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뭐 유별난 차이인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로는 그 얇고 세밀한 틈이 책의 지향점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저작물이다. 저작권이 발생하는 저작물. 사상이나 감정, 아이디어와 같은 메시지를 일정한 표현 형식에 담으면 저작권이 발생한다. 그러니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이 발생하지 않는다. 일정한 형태로 그 생각을 담아내야 한다. 저작물은 작가와 불가분의 관계이다. 책은 저자의 생각과 인격을 담아낸 저작물이다 보니 이를 편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조심스러운 과정이다.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 미묘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함께 책을 만들어간다는 마음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책을 쓰고 편집하는 과정은 훨씬 어려워진다. 문장을 바꿔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전하고자 하는 말뜻이 온전히 전달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렇지만 꼭 작가 혼자만의 힘으로 책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편집자의 시선에서 비로소 더 정확해질 수 있으니까. 책을 만든다는 건 그런 점에서 파트너십이 필요한 일이다.


 기묘한 협업 관계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야 많지만 루시와 해리스의 관계만 한 상황이 또 있을까. 루시는 가업으로 물려받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에 냈던 신간은 혹독한 평가를 들었고 경영난에 회사를 팔아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까지 몰려있다. 다시금 좋은 작가를 찾아 신간을 만들어 반등의 기회를 만들고자 하는데 마침 발견한 작가가 해리스 쇼였다. 아버지 대에 이미 계약금을 지불했고, 계약에 따라 책을 한 권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 한 권만 내고 50년째 신간 소식이 없었지만 유일한 기회기에 희망을 걸어야 했다. 다만 계약 조건이 있었다. 작가가 제출한 초고를 편집하거나 수정할 수 없다. 대신 작가는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책을 홍보해야 한다.


 편집은 불가, 북투어는 가능. 인물들의 이유가 부딪히면서 상황은 흥미롭게 흘러간다. 아내 사별 후로 세상에 어떤 미련도 남지 않은 냉소적인 작가 해리스와의 북투어 과정은 험난했다. 글이 세상에 나올 수 있던 이유가 사라졌으니 그의 입장에선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당장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압류되어 빼앗길 위치에 놓인 집과 50년 전의 계약이었다. 노작가의 귀환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고 세상은 너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해리스는 그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을 뿐인 루시의 실력을 의심하고, 루시는 해리스의 상태를 못 미더워한다. 여하튼 신간은 나왔으니 어떻게든 책은 팔려야 한다.


 그동안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는 다양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일을 하면서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이 유독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드는 건 '이건 일이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공동의 목표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의견을 아끼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으니까. 두 사람의 전사가 밝혀지는 과정은 그래서인지 여러모로 감동적이었다. 서로를 신뢰하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여정이 성실하게 묘사되니까. 신뢰라는 것이 그렇다. 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눈에 번해야 믿는다. 보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 신뢰에는 샛길이 없다. 빠르게 가로지를 방법도 없다. 관계에는 정독만이 존재한다.


 영화는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과정도 과정이지만 신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이 무척 흥미로웠다. 루시가 책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택한 방법도 재밌었다. 상황에서 파생되는 곁다리 주제들이지만 이런 질문들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현재의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 책이라는 물건을 소비하고 있는가? 어떤 인상 깊은 구절 몇 갈래로 책을 소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책에서 출발한 감상은 더 이상 글로 남지 않고 한 장의 사진이나 인증글로 끝맺는다. 책이 저작물로서 작가의 사상을 전달하는 도구라고 한다면 책이 팔리지 않는 상황은 그 생각이 싫은 걸까? 아니면 책이라는 그릇이 싫은 걸까?


 지금 내 책장에도 해진 책들은 별로 없다. 누렇게 변하거나 물먹어 울룩불룩한 책도 없다. 함께 나이 든 책보다는 그때그때의 충동적인 선택으로 들여오게 된 책들이 있다. 나이 든다고 내놓진 않을 테니 언젠간 같이 나이 들어가겠으나 지금 당장은 아직 서로 알아가는 단계인 셈이다. 사는 책들이 그렇다면 파는 책들은 어떤가? 서점에는 빳빳하거나 맨질맨질한 종이로 만든 적당한 크기의 튀지 않는 책들이 가판대에 올라선다. 튀어야 팔릴 것 같지만 튀지 않아야 진열될 수 있다. 규격은 다를 수 있어도 정해진 사이즈의 책들이 더 잘 팔린다. 비규격의 책들은 프레임 안으로 들어서기가 훨씬 어렵다.


 그렇다면 우린 책의 무엇을 구매하는 것일까? 그때 들었던 답은 책을 '읽을 권리'를 산다는 것이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구매해 '들을 권리'를 사는 것처럼 말이다. 음원과 책의 비교가 적절한 예시인지는 모르겠으나 저작권이 발생하는 상품들은 서로 비슷한 형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비영리 출판물을 제작하는 일에 훨씬 더 마음이 쓰인다. 언제 어디서든 충분히 무언가를 읽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나 언제나 정보에는 격차가 존재한다. 특히나 목소리를 전하기 어려운 환경과 상황에서 그랬다. 매스미디어에 도달하기에는 미미한 이야기가 존재했다. 미디어에 오르기엔 소소하고 사라지기엔 너무 거대한 위치의 이야기는 보존되어야 한다. 이야기를 담기 때문에 책을 사는 시대가 아니라면, 책에 들어가야 마땅한 이야기는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되는 밤이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베스트셀러(2021)', '미스터 모건스 라스트 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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