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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젊은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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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anderer Jun 10. 2024

소외된 모두 왼발을 한 보 앞으로

영화 '8 마일'

 래빗은 디트로이트에서 자랐다. 낙후된 동네에서 희망을 찾지 못했고, 그래서 떠났다. 여차저차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고 보니 친구들도 집도 그대로였다. 기댈 곳은 트레일러 한 칸짜리 엄마 집.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 공장에서 푼돈을 벌면서 희망을 품는 건 랩배틀이다. 고된 출퇴근길 속에서도 노트와 연필을 놓지 못한다. 랩이 유일한 해방구이자 돌파구다. 가사를 적을 종이와 펜, 기억할 머리만 있으면 어디서나 뱉을 수 있다. 랩배틀이 좋은 건 배틀 상금도 있다는 거다. '언젠가는 이걸로 뜨겠지' 하는 기대는 크지 않지만 그럼에도 랩을 하는 건 일상을 토해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X같은 내 인생."이라고 어떻게든 뱉어내야 속이라도 풀린다.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은 함정이다. 성공을 위한 길에는 왕도가 없다. 방법보다 중요한 게 마음가짐이다. 디트로이트 길거리엔 사람들도 없다. 폐허가 된 건물들과 담벼락에 낙서들 뿐이다. 래빗은 버스를 타고 동네를 지나 공장으로 간다. 출퇴근길에서 보이는 건 이런 모습들 뿐이다. 낙후된 환경 속에서 마주하는 순간들은 입안에서 거칠게 씹힌다. 씹어 삼키기에 무거워 토해내는 수밖에는 없다. 래빗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종이에 쓰고 또 쓴다. 글자는 겹쳐져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써내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 풀릴지는 몰라도 래빗은 안주하려 들지 않는다. 트레일러 집조차 안식처가 되어주지 못한다. 래빗은 안다.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란 걸. 그렇지만 버텨야 한다. 가진 재능을 믿고 깡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힙합은 소외된 자들의 것]

 래빗이 일하는 뉴 디트로이트 공장은 전과자나 복지 받는 사람이나 일하는 곳이라고 엄마의 남자친구가 말한다. 불안정한 직장에 트레일러 집, 냉장고에 우유도 떨어진 이 삶은 하루하루가 사투다. 모두의 관심 밖에서 일상을 채우는 건 음악뿐. 후드를 뒤집어쓰고 비트로 세계를 채운다. 칼럼니스트 김태훈 평론가는 한 영상에서 힙합을 기성세대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음악으로 이야기를 했다. 그 말처럼 당시의 힙합은 소외된 이들의 무기였다.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공고한 바깥 어딘가를 떠도는 이들의 문화였다. 별다른 장비 없어도 할 수 있었기에 유행처럼 퍼져나갈 수 있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힙합은 소외된 이들의 무기였다.


[디트로이트 지역번호, 313]

 디트로이트 사람들은 313을 연호한다. 폐허 같은 이 동네의 지역번호. 떠나고 싶은 곳이지만 동시에 자란 터전이기도 하다. 이곳을 무력하게 밀려나서 떠나서는 안 된다. 이 지옥 같은 동네가 내가 자란 곳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모든 이들이 그 동네를 부정해도 말이다. 부정당하는 건 출신뿐만이 아니다. '백인의 랩' 또한 부정의 대상이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나눈다. 압박감 속에서 래빗은 자신의 것이라 생각했던 무대에서도 밀려난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마음을 다잡게 되는 건 능력의 여부가 아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만 좋아하는 걸 하겠다는 의지는 추진력이 되어준다. 래빗은 무대로 향하는 게 아니라 무대로 이끌린다.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건 수많은 관중이 바라보는 스테이지가 아닌 주차장이었고,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던 공터였다. 쌓아 올린 실력이 어디 도망가진 않는다. 실력을 믿고 마이크를 들어야 한다.


[일보 전진에서 일동 전진으로]

 일대일로 붙는 랩배틀의 묘미는 결투라는 점에 있다. 나의 우위를 드러내고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규칙에 맞춰서 가사를 써야 한다. 정해진 규칙 아래에서 두 결투자의 위치는 동등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결투는 일종의 게임이기도 하다. 랩 게임에서 의미 있는 원투 펀치는 무엇일까? 비트가 시작되면 온갖 인신공격 가사들이 쑤셔온다. 정신을 빼놓는 가사들은 그저 눈속임용이다. 증명해야 하는 실력은 상대를 까내리는 내용 자체보다 그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숨겨진 의미에 있다. 래빗의 랩 게임에서 그의 실력에 더해졌던 마지막 한 조각은 진정성이었다. 피부색으로 의심을 받던 진정성은 그가 겪은 삶의 곡절을 가사로 담아내어 인정받는다. 자신의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가짜들과 다르게 진짜의 삶을 살았노라 선언한다.


 래빗의 랩이 궁상맞은 하소연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얻어맞고 쓰러져도, 눈에 멍이 들어도 끝내 무대 위로 올라와서 마이크를 붙잡기 때문이다. 눈에 독기를 품고 마이크를 붙잡고 무대 위에서 상대를 노려보는 모습은 더 때려보라는 식이다. 무너져도 일어날 테니 무너뜨릴 수 없다고 말한다. 그 태도가 힙합이다. 인정하고 한 걸음 더, 다음 단계에서도 인정하고 한 걸음 더. 이 영화가 얼마나 독한 영화냐면 래빗의 각오가 엔딩 시퀀스까지 이어진다. 무대 위에서의 시간과는 별개로 래빗은 현실을 감당해야 한다. 해피엔딩과는 별개로 잔업이 남아있다. 스튜디오가 아닌 공장으로 발길을 돌리게 된다. 이 랩 게임은 시궁창 같은 현실 속 소박한 승리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치열하게 일궈낸 소박한 승리는 무엇보다 값지다. 누구에게나 그런 기억이 있다. 토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버텨내야 하는 상황에 시시때때로 부닥친다. 한 순간의 변화로 인생의 궤도가 극적으로 틀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흔치 않다. 우리들 또한 래빗처럼 승리를 거두고도 다시금 공장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생긴다. 실은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시간 그런 시간이다. 당장의 공과금, 밀린 월세, 할부를 갚아나가기 위해서는 소박한 승리로는 부족하다. 완주를 위해서는 임 승리 너머의 생활까지 고려해야 한다. 진절머리 나는 삶이라도 말이다. 한스럽지 않게 뱉어낸다. Rap It. 래빗은 삶을 뱉어냈다.


사진 출처 : TMDB '8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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