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함과 꼼꼼함의 사이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다. 성격이 어떻다고 표현하는 방식이야 제각각일 텐데, 요즘은 단연 MBTI가 대세다. 딱히 해보지 않다가 작년에 회사 행사 때문에 테스트를 해보니 ENTJ다. 바로 통솔자형.
분위기나 상황에 따라왔다 갔다 하지만 나서는 걸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니다. 또 무엇보다 일이나 프로젝트 또는 계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 같고, 답답하게 느껴지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리하고 제안해야 하는 타입이다.
용의 꼬리가 되느니 뱀의 머리가 되는 것이 더 체질에 맞아했고, 실제로도 리더십이 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으며 살아왔다. 뭐... 바넘효과*의 영향이 전혀 없다 할 수 없다만, 통솔자라는 MBTI의 결과와 해석이 꽤 잘 맞는 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리딩의 기질이 몸 어딘가에 장착되어 있다 보니, 회사에서도 일복이 많은 편이다. 어떤 형태로든 일에 많이 관여를 하게 되면, 장점도 많지만 때로는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사회 초년병 시절에는 나서는 성격을 좀 고쳐볼까 했었지만, 나이가 차곡차곡 들면서 성격도 조금 유해지고 장점을 살리는 게 더 쉽다는 걸 체득했다. 다만, 경험이 쌓이니 너무 즉흥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상대나 상황을 이해하는 유연함도 제법 생겨났다.
사실, 옛날 옛적...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학생 시절부터 직장 초기 인 주니어 때까지만 해도 나는 비교적 까칠했다.
'기열이 형, 옛날에 엄청 까칠했어~' D가 말했던 대로 말이다.
남들이 좀 꺼려하는 말들을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합리적인 이야기나 맞는 말인데도 보통 듣는 사람이 불편해할까 봐 혹은 관계가 애매하게 될까봐 하지 못하는 말을 남들에 비해 잘했다. 어디까지나 비교급이다. 막무가내로 막말을 한 건 아니다. 훗!
어쨌든, 까칠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야위거나 메말라 살갗이나 털이 윤기가 없고 조금 거칠다'라는 의미다. 우리가 평소에 쓰는 말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인다. 명확하게는 사전적으로는 성격에 빚대에 말하기에 적절한 단어는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할 때는 거칠다 또는 까다롭다의 뜻을 담고 있으나 어감상 거칠다 보다는 좀 더 여린 어감으로 까칠이라 말하는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까칠하다. 거칠다. 까다롭다 그 무엇이든 항상 이면이 있다. 본질적 의미가 있고 또 다른 성향이 숨어 있다. 성격으로 보자면 따지고 드는 면도 있지만, 반대로 기준이 명확하다면 그것을 지켜야 한다 생각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기준을 논하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논리적이어야 한다. 논리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리고 과정은 체계적이고, 동시에 꼼꼼함은 필수조건이다. 다시 말해 빈틈이 없고 계획과 실행을 중요시 여긴다. 살짝 포장을 더 해보면 호전적이고 하고 싶은 일에는 적극적이다 할 수 있다. 어쩌면, 까칠하다는 것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다.
디짐의 모임이 시작되고 회원이 매월 한 두 명씩 꾸준히 늘어갔다. 매월 4번째 목요일 모임이 디짐의 정례적인 모임이 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사람이 늘어나니 관장을 맡고 있는 D는 항상 모임 고지에 뒤풀이하고 나면 정산까지, 혼자 해야 할 것이 많았다. 애쓰고 있는 D를 보면서 성격이 슬슬 발동하기 시작했다.
D에게 어느 날 카톡으로 물었다.
"디짐 모임은 이제 뭐랄까? 좀 안정화가 돼 가는 것 같은데, 정식 모임인 거지?"
"??... "
"아직 정식이 아닌가요?"
D는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내 질문의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당시 저런 질문을 했던 이유는 국제로터리 클럽과 같은 모임이 되기를 바라는 관장의 원대한 꿈을 지지하기 위해서라도 공식적이자 정식적인 선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디짐을 만들어낸 그의 생각을 재 확인하고 슬그머니 회칙을 내밀었다.
본격적으로 총무를 해볼까라는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바로 디짐의 회칙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디짐의 총무가 되었다.
작년 말, 디짐의 1년을 기념하는 송년회가 있었다. 총무였던 나는 가장 바빴다. 먼저 파티장소를 대여하고 행사를 계획하고 식순에 따른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한 해 땀 흘리며 같이 운동했던 회원들의 사진들을 모아 영상을 만들고 모두를 위한 시상과 상품들을 함께 준비했다.
조금 일찍이 도착해 핑거푸드를 같이 준비하고, 사전에 주문해 놓은 음식을 회원들이 픽업해 주면서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알찬 송년회가 되었다 자부한다.
그날 D가 내게 했던 말은 이랬다.
"형님 아무래도 앞으로도 계속 총무는 형님이 하셔야 할 것 같아요. 따라올 사람이 없어요!"
"회칙에는 총무의 임기는 1년이야, 물론 연장은 가능하지만..."이라고 얼버무렸지만, 고맙게도 그날 D를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들었다.
인간이란,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는 상대에게 또 더 많은 에너지를 얻기 마련이다. 방전이 되지 않고 다시 충전되어 전력을 다 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달까? 모두와 신나고 재밌고 활력 있는 하루하루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짜릿한가. 이런 즐거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지.
그래. 총무는 당분간 까.칠.한. 내가 할게! :)
*바넘효과: 바넘 효과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진 성격이나 심리적 특징을 자신만의 특성으로 여기는 심리적 경향. 점을 보거나 심리테스트를 하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것인데도 자신에게 딱 들어맞는다 착각하는 것을 지칭한다.
Appendix - 23년 초기 디짐 회칙의 시작은 이랬다.
1장. 총칙
본 회는 'D-GYM' (이하 "디짐") 운동 모임으로 칭한다.
디짐은 상호 간의 친목과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2장. 회원
디짐의 회원 분류는 아래와 같이 정한다.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