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날의 위로
여행을 가면 으레 바라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날씨다. 어딘가로 떠날 때마다 날이 맑기를 바라고, 덜 춥고 덜 더워서 편하게 다니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딩크족으로 살아오다 보니 여행을 위한 시간 내기가 대체로 자유롭다. 그 덕에 매년 여행을 가고, 그때마다 날씨 운이 따랐던 편이다. 실제로 우비나 우산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챙겨갔지만 제대로 사용했던 적은 거의 없다. 비를 만나더라도 차를 타고 이동하거나 실내에 있을 때 스쳐 지나듯 만났던 적이 대부분이다.
특히, 같은 곳을 두 번 오기 쉽지 않은 해외여행에서는 날씨가 좋기를 더 간절히 바라게 되는데, 터키의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전날부터 불던 바람과 빗방울이 새벽을 지나 극적으로 잔잔해져 애드벌룬을 탔고, 몇 개의 나라에서는 이동 중에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지만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그치며 무지개를 보는 행운도 있었다. 아침은 흐린날로 시작했지만 정보부터 날이 좋아져 사진찍기 좋았던 날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대부분 여행지에서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씨가 아니라 맑은 하늘을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날씨 복(福)을 갖고 있는 것 같다며 감탄하듯 아내가 말했고, 난 그런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음에 감사해했다. 그리고 간혹 흐린 날을 만나더라도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로 위로했다.
날씨가 흐리니 덥지도 않고 돌아다니기 딱 좋네...
그리고 몇 년 전,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날씨에 관한 위로의 말이 하나 더 늘었다. 대략 열흘 정도를 크로아티아 일주를 했었는데 늦은밤에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덕분에, 시차에 적응이 되지 않아 새벽 5시부터 일어나 아내와 광장을 누비며 자그레브를 골목 곳곳을 걸었다.
날이 밝아 오긴 했지만 날이 흐렸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지만 구름이 가득한 하늘이었다. 이른 아침 공기가 선선해 돌아다니기 좋다고 위로하려 했지만, 다소 쌀쌀했고 아내와 난 또 다른 위로의 말이 필요했다.
흐린 날에 사진을 찍으니 하늘이며 도시가 너무 운치 있게 찍히네...
자그레브에 있는 이틀 내내 하늘은 흐렸다. 다음날 차량을 렌트해 플라트비체로 가는 길까지 흐린 하늘의 연속이었다. 맑은 하늘은 아니었지만, 청회색의 하늘은 틀에 박혀있지 않은 컬러풀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 내릴 듯한 날씨였지만 눈에 펼쳐진 풍경으로는 청아하기까지 했다.
살아가면서 나에 대한, 상대에 대한 위로의 말이 하나둘씩 늘어간다. 매일 날이 맑으면 사막이 된다는 말처럼 가끔은 궂은 날씨도 필요한 법이다. 낯선 여행에서 만난 그 어떤 날씨도 그곳의 일상임을 받아 드릴 만한 여유가 생겼다. 그곳도 반복되는 일상에서 가끔 흐린 날이 필요하고, 어쩌면 흐린 날이 가끔 위로가 되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