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브런치에 넣을 사진을 구글 드라이브에서 찾곤 한다. 며칠 전에도 구글 드라이브에서 필요한 사진을 찾다 본래 목적은 잊은 채 여행 사진을 감상하며 추억에 빠져들었다. 드라이브에는 모든 사진이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행만 돌아보면 꽤 많은 나라를 다녔다.
대학생 때 갔던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발길이 닿았던 나라는 대략 30개국. 그저 반나절만 머물렀던 도시도 있었고 한 나라를 열흘 이상을 여행한 적도 있었다. 언제, 누구와 갔었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게 여행인데, 코로나 19로 여행을 떠나기 어려운 요즘이다 보니 일상의 일탈이 더욱 그리워진다. 사진을 보다 색(色)으로 대표될만한 여행지가 있기에 그때 그곳의 색을 들춰 본다.
Blue. 파랑. 靑 - 푸른 동굴 (이탈리아 그리고 크로아티아)
유럽 배낭여행 때, 이탈리아 카프리의 푸른 동굴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섰다. 당시 배낭여행 친구들은 10명이 넘었는데 푸른 동굴로 같이 코스를 잡은 친구들은 4명 정도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다른 코스로 흩어졌다.
어쨌든 당시는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일단 나폴리로 가봐야 푸른 동굴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었다. 새벽부터 나폴리로 향했다. 그곳에서 카프리로 들어가는 배를 타고 카프리 섬에서 푸른 동굴 초입까지 이동을 해야 했는데, 다행히도 그날은 날씨가 좋아 푸른 동굴을 들어갈 수 있었다.
푸른 동굴 입구 쪽을 찍은 사진 - 당시는 디카가 없어 필름 카메라로 찍었다 (필터 적용)
아~!! 와!!!
밧줄을 타고 아슬아슬하게 들어간 푸른 동굴을 들어서 바다 빛을 보자 우리는 모두 감탄의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본 투명하면서도 찬란한 일렁이는 푸른빛. 그때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배에 앉아 자신의 손을 바닷속에 넣어 마치 그 빛을 어루만지는 착각은 마치 손에 쥔 푸른 신기루와 같았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당장이라도 물속으로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빛에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았다.
세월이 지나 아내와 크로아티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크로아티아에도 푸른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느끼고도 싶었고 또 그 환희의 순간을 아내와 같이 즐기고 싶었다. 그렇게 스플리트에 도착해 현지 투어를 예약하고 푸른 동굴을 보게 되었다. 이탈리아와 다르게 밧줄을 당겨 움직이는 배가 아니라 비교적 큰 보트를 타고 들어간 푸른 동굴의 빛은 더 크고 방대했고 빛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은 많이 흘렀고 훌쩍 커버린 나였기에 이탈리아에서 느꼈던 감정을 다시 만날 수는 없었다. 불혹을 조금 넘은 나이여서 푸른빛의 유혹을 느끼기에는 나이가 많아진 걸까?
blue&Green. 비취색. 翡翠 - 구채구 (중국)
비교적 가까운 나라인 중국. 그럼에도 다녀온 나라 중에는 후순위에 가깝다. 그리고 수많은 중국 관광지 중에 처음 방문한 곳이 바로 구채구와 황룡이었다. 중국 내 많이 가는 관광지는 아니지만 영롱한 색만 본다면 꼭 한번 가길 추천한다. 색만 본다면이라고 단서를 단 것은 당시 구채구 입장을 위한 구름 떼와 같은 중국 사람들의 혼돈에 가까운 무질서함과 담배연기, 시끄러움 등등 은 정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마치 모두 다 아수라가 된 것만 같았다.
어쨌든, 그 신비롭게 물의 빛을 보며 든 생각은 초록색에 푸른빛이 스며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이 색을 나중에 잘 기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앞에 있지만 적어도 색만큼은 실체가 없는 허상과 같이 처음 느껴보는 아름다움이었다.
중국 구채구 - 오채지(五彩池 )
이곳의 여행은 정말 전쟁과도 같았다. 중국의 대도시로의 여행이 아니기에 패키지를 선택했었는데도, 그동안 경험했던 자유 여행, 호텔팩, 세미패키지, 패키지 등등 모든 해외여행을 통틀어 구채구&황룡 여행이 가장 힘들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고산병으로 인해 아내는 무척 힘들어했고 나 역시도 두통 등 컨디션 조절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차로 이동하는 중간에 쪽잠을 잔다고 해도 밤 12시가 다되어 호텔에 입성한 후 그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이 며칠간 이어졌다. 가히 살인적인 이동 및 일정은 보통의 여행 피로와 차원이 달랐다. 무엇보다 가는 곳마다의 상상 이상의 무질서함으로 아내와 내 멘탈은 수시로 가출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만들어 낸 물에 청초하게 스며든 영롱한 비취색만큼은 일생에 한 번 꼭 두 눈으로 봐야 한다고 단언한다. 소위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아름다움이라 할 만하다. (최근에 지진 피해를 복구하여 다시 공원을 부분 개방했다고 하니 참고하시길...)
구채구의 물 빛 및 수중 분경의 모습 (좌, 중앙) / 황룡 협곡의 사진 (우)
Black. 검정. 黑 - 밤하늘 (몽골)
별이 보고 싶었다. 도시로 떠난 휴가도 좋지만 나이가 늘어가면서 자연을 보고 그 속을 걷는 것이 일상과 이격 된 듯하여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별이 뜬 까만 밤하늘로 유명한 여행지의 대부분 거리가 멀었고 시간과 예산 등을 고려할 때 몽골이 가장 이상적인 여행지였다. 여행 가기로 맘을 먹고 정보를 수집하고 현지 투어를 위한 투어 상품을 보다 보니, 이미 몽골은 몇 년 전부터 대학생들에게는 핫한 여행지였다.
여행을 위해서는 현지에서 같이 여행할 팀을 이뤄야 하고 푸르공(개조 차량)을 타고 다니며 게르에서 같이 칭기즈칸(술)을 마시는 저녁 술자리를 통해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아가며 썸을 타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이국의 대 자연 속에서 피어오르는 청춘의 썸이라니.
대학생들과 팀을 이루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걱정했지만, 비교적 쉽게 나와 아내는 직장을 다니는 두 명의 여성분들과 팀을 구성해 몽골 여행을 떠났다.
몽골의 여행은 오래된 푸르 공을 타고 덜컹거리는 비포장 도로를 매일 달려야 했다. 게르의 침대는 내 키 기준으로는 작아서 다리를 끝까지 뻗을 수 없었다. 매일 씻을 수 없었고 화장실은 가끔씩 상상할 수 없는 도전이 필요했다. 먹는 것도 타 여행에 비해 간단하고 소박하고 조촐했다.
힘든 여행이었지만, 서울이라는 도시에 가려진 자연의 모습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민낯을 보여줬다. 비가 온 뒤 무지개를 살포시 내보이고, 푸른 평원과 하늘을 만끽케 하고, 밤마다 은하수와 별똥별을 하루의 보상으로 내줬다.
그렇게, 검은 밤하늘 속에 별은 총총 빛났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했던 사진, 자연을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의 색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곳이 몽골이다. 자연의 색을 보기 위해서는 여행 자체가 여러 가지로 힘들 수밖에 없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모든 것 하나하나가 불편함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곳을 떠날 때마다 흔쾌히 동의해주는 아내에게 늘 감사하며, 또 아름다움 자연의 색(色)을 함께 볼 수 있음에 다음 여행을 기대해 본다.
이제 겨우 30개국, 그마저도 머물렀다기보다는 스쳐 지나갔던 곳들이 대부분...
아직도 가보고 싶은 여행지, 그리고 다시 한번 더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너무나 많다.
P.S. 몽골의 아름다운 별 사진은 여행을 동행했던 여성 두 분 중 한 명이 여러 시도 끝에 찍어준 사진이다. 자연의 색을 멋지게 담아준 여행 파트너 분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